▲ 국회가 정상화되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노동시간단축과 차별개선, 노동시장정책과 고용률 향상과 관련한 논의가 주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진은 국회 환노위가 올해 4월 초 공청회를 열고 노동시간단축과 통상임금, 노정관계 개선에 관한 노사정의 의견을 듣고 있는 장면. 정기훈 기자

 

휴일 양극화, 반쪽짜리 차별휴가, 휴가 귀족과 난민, 상대적 박탈감….

지난 10일 첫 대체공휴일이 남긴 여파는 컸다. 대체공휴일이 불러온 상흔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잇따랐다. 불만여론이 거세지면서 새누리당을 제외한 야당들은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가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단지 쉬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서울지역 한 어린이집에서는 대체공휴일 시행을 앞둔 이달 1일 학부모 총투표가 열렸다. 어린이집측이 관련기관에 문의하니 “반드시 쉬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체 결정으로 쉴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애매했다. 부모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투표 끝에 휴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어린이집 학부모 ㄱ(36)씨는 “부부 모두가 쉬지 못해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대체공휴일 휴원에 반대했다”며 “그런데 상당수 가정이 쉬는 분위기여서 끝까지 반대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친정에 아이를 맡기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대체휴가 도입에 반대했던 우리 가족만, 우리 아이만 뭔가 다르고 문제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매우 씁쓸했다”고 말했다. 대체공휴일이 가족과 주변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국민 절반만 쉰 대체공휴일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10일, 그날은 대체공휴일 첫 시행일이자 대한민국 국민을 쉬는 자와 쉬지 못한 자로 갈라놓은 날이기도 했다. 추석 하루 만을 쉰 사람은 '추석 난민', 대체공휴일까지 쉰 사람은 '평민', 여기에 연차휴가를 추가로 붙여 쓴 사람은 '귀족'이라는 표현까지 생겼다.

특히 귀족이라 불린 이들은 공무원·대기업 등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나은 사람들이었다. 반면 난민은 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는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차별 확대, 휴가 양극화라는 말이 뒤따랐다.

대체공휴일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쉬었는지 정확히 추산하긴 어렵다. 다만 대체공휴일 시행을 앞두고 중소기업중앙회가 회원사 902곳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14%만이,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국내 기업 1천115곳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50.5%가 대체공휴일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첫 대체공휴일에 논평을 내고 “대체공휴일제가 공무원과 공공기관, 일부 대기업에 국한해 적용되면서 휴식권에도 차별이 생겼다”며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 역시 “법률 제정이나 개정을 통해 온 국민이 대체공휴일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올해 달력 9월10일. 빨간색 숫자와 함께 대체휴일(대체공휴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혔다. 그러나 달력과는 다르게 현실에서의 9월10일은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의 설움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김봉석 기자

법·제도가 불러온 예고된 차별

올해 대체공휴일이 처음 시행되면서 이런 사실이 크게 부각되긴 했지만 공휴일에 차별이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실 국민에게 '쉬는 날'은 그냥 쉬는 날일 뿐이다. 민족 대명절인 설날과 추석은 당연히 쉬는 날이고, 광복절과 같은 주요 국경일과 크리스마스(성탄절)·석가탄신일도 쉬는 날이다. 주5일제 사업장에서는 보통 토요일과 일요일을 쉰다.

똑같이 쉬는 날이지만 법률상 의미와 효력은 전혀 다르다. 명절·국경일을 휴일로 정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은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이다. 적용 대상도 공무원·공기업·학교와 같은 관공서에 한정돼 있다. 법률 효력만 따지면 민간기업 종사자에게 공휴일은 휴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민간기업은 노조가 있는 곳은 단체협약을 통해, 그렇지 않은 곳은 취업규칙을 통해 공휴일에 쉰다. 이런 약정휴일은 노사자치협약이라는 측면에서 법률적 효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과 같이 상대적으로 조건이 나은 기업과 노동자에게 혜택이 집중돼 있는 실정이다.

반면 기업규모나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반드시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제55조)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사용자가 2년 이하의 징역을 받거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는 강제규정이다. 이런 법정휴일은 주휴일과 근로자의 날(5월1일)밖에 없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공휴일을 모법에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휴일에 관한 각종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노동시간단축과 휴식권 차별 해소를 위해서라도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한정애 “공휴일을 근로기준법으로”

법률적 한계를 보완하려는 국회의 움직임도 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2일과 15일에 각각 근로개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개정안 모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담긴 공휴일과 대체공휴일을 근기법상 유급휴일로 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공휴일을 주휴일과 같은 법정휴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한정애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대체공휴일이 처음 시행됐지만 공무원을 포함만 일부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면서 중소기업과 영세업체 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해졌다”며 “근기법상 공휴일과 대체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해 차별 없는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태 의원도 “같은 공휴일에 어떤 근로자는 쉴 수 있고, 어떤 근로자는 쉬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법정휴일화를 추진해 명절을 비롯한 모든 공휴일에 근로자들이 차별 없이 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같은 당 김경협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김성태 의원 개정안에는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 등 26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대체공휴일이 지난 10일 처음 시행됐고, 그 후 5일 만에 국회의원 36명이 공휴일을 근기법에 담는 내용에 찬성한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대체공휴일 시행 직후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너무 높아 여야 모두가 신속하게 개정안을 낸 것 아니겠냐”며 “여론이 뒷받침되고 있는 만큼 찬성 의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작부터 꽉 막힌 법안 논의, 근기법 개정될까

그럼에도 법안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은 당내 반발에 부딪혔고, 정부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22일 고용노동부와의 당정협의에서 “대체공휴일을 전면 시행할 경우 중소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근기법 개정안은) 당의 뜻과도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여당 간사가 대체공휴일 관련 근기법 개정안에 부정적인 뜻을 밝히면서 환노위에서 개정 논의 자체가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 된 것이다.

정부 역시 난색을 표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당정협의에서 “대체공휴일 문제는 국회 환노위가 아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이라며 “공휴일을 법률로 정해 일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사 스스로 결정했던 휴일을 법률로 일괄 적용했을 때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대체공휴일이 올해 처음 시행된 만큼 앞으로 2~3년 더 시행해 보고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특히 인건비 증가를 우려하는 경영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태·한정애 의원의 개정안은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이다. 경영계로서는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현재 15일 안팎인 공휴일에도 직원들에게 임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김영배 한국경총 회장 직무대행은 25일 열린 경총포럼에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의무화해서 법적으로 확대하자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는 주휴일과 같은 유급휴가가 많고, 휴가를 만들면 임금이 더 지급되는 구조라서 영세·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법정휴가 확대보다는 연차휴가 사용 활성화와 초과근로 유인책 완화, 근로관행 개선 등을 통해 근로자의 휴식시간을 늘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입장이다.

“공휴일을 국민의 휴일로, 차별 해소해야”

반면 노동계는 노동시간단축과 차별 없는 휴식권 보장을 위해서는 근기법을 개정하거나 공휴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에서는 일본의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과 같이 공휴일이라는 단어를 아예 국민의 휴일로 바꿔서 온 국민이 쉬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이와 비슷하게 공휴일을 법제화하고 대체공휴일을 도입하는 내용의 국경일 및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가 안행위 전체회의를 넘지 못하고 무산되기도 했다.

결국 여당과 정부는 그해 11월 법률 제정이 아닌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설날·추석·어린이날에 한해서만 대체공휴일을 도입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노사정이 2010년 노동시간단축이라는 큰 뜻에 합의하고도 경영계의 국회 로비와 정부 반대로 공휴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지 못했다”며 “첫 대체공휴일 시행 이후 차별을 해소하고 온 국민이 다 같이 쉬자는 여론이 높은 만큼 정부와 국회 모두 근기법 개정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 휴일제 119년 전 도입
공휴일은 처음부터 대통령령으로 제정·시행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휴일이 도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895년이다. 우리나라 <관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주휴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날짜를 일주일로 나누는 기독교 문화에서 비롯된 서양식 휴일이 들어온 것이다.

공휴일은 처음부터 법령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1949년 6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이라는 명칭으로 제정·시행된 대통령령이 지난해 11월 대체공휴일 도입까지 15번에 걸쳐 개정되면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이어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공휴일이 법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것은 정부가 법·제도를 통해 노동관계 일반을 규율하기보다는 선도 혹은 안내하면서 노사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하는 사적자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삼국시대·고려시대부터 내려왔던 우리나라 고유 명절과 국가가 정한 국경일인 공휴일에는 온 국민이 함께 쉬면서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법률로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다. 2010년 이후에는 장시간 노동 해결을 위한 노동시간단축 방안의 하나로, 헌법상 국민의 행복권 보장을 위해 휴식권과 평등권을 지원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공휴일 법제화가 논의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