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일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이사장

1. 지난 16일 울산에서 간담회가 있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당사자들과 정규직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비정규직 투쟁 현황과 과제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모두 18~19일로 예정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다시 연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기화된 소송에 지친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와 정규직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합의에 따른 압박 속에서 회사가 요구하는 특별고용(소송 취하를 전제로 한 신규채용)에 응하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나머지 노동자들도 이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년 넘게 앞장서 온 한 활동가는 또 한 번 ‘극한투쟁’의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그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이번 싸움을 더 크고 더 길게 보고 가자고 말했지만, 그게 무슨 답이 될지 나로서도 답답했다.



2. 18일과 19일, 서울 중앙지법은 예상을 깨고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내용도 예상을 넘어섰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모든 공정에서 불법파견이 있었고, 2~3차 도급업체를 포함한 모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정규직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소송을 취하하고 특별고용에 응한 노동자들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어 25일 기아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의 소송에 대해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현대차에 대한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으로부터 10년, 최병승씨의 대법원 승소와 그에 뒤이은 집단소송으로부터 무려 4년이 지난 뒤에, 그리고 “제발 판결을 내려 달라”고 당사자들이 법원 앞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판결이다.

그런가, 이제 이 판결로 노동자들의 젊은 목숨까지 앗아 간 길고 고통스런 싸움은 마감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현대·기아차는 물론 한국지엠·쌍용차, 포스코와 하이스코, 삼성전자서비스·SK브로드밴드 등 다른 업체와 산업에까지 긍정적인 여파를 미칠 수 있게 된 것인가.



3. 현대차가, 나아가 한국의 총자본이 그리 호락할 리 없다. 현대차는 당장 “사내하도급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말아야 할 제도라는 것이냐”고 반박하고 “이번 판결은 우리 산업계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것이며, 따라서 추가 법적 절차를 거쳐 이 부분을 따져 보겠다”고 밝혔다.

한국경총 역시 “사내하도급 활용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생존전략의 일환”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판결은 1심 결과이며 (이미) 합의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합의 정신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결국 현대차는 24일 항소를 결정했다. 같은날 울산지검은 현대차 하청노조 전직 간부와 활동가를 포함해 노동자 52명에게 도합 69년의 징역과 벌금을 구형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판결은 판결, 현실은 현실”인 셈이다. 10년을 싸워 겨우 승소한 하청노동자들은 다시 또 10년이 걸릴지 모를 긴 싸움을 강요당하는 처지가 됐다.

지치고 실망한 노동자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떻든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싸움이고 무엇을 얻자는 싸움인가.



4. 현대차는 지난해에만 87조원 매출에 9조원의 이익을 냈다. 기아차도 3조9천억원의 이익을 냈다. 두 회사의 현금(유동성) 보유액은 23조원에 이른다. 모든 하청노동자를 정규직화해도 추가 비용은 순이익의 1~2%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정몽구 회장은 ‘통 큰’ 결단으로 10조5천500억원짜리 땅을 사들였다. 수십 조원을 투입해 독일의 폭스바겐을 흉내 낸 '자동차도시(Autostadt)'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폭스바겐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노동자 해고를 막기 위해 주 4일 노동제에 합의한 것을 배워야 한다. 노조의 이사회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적 지배구조를 배워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조와 싸우기보다는 협력을 구하고,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좋은 기업을 만들어 가는 경영기법, 그 바탕의 철학을 먼저 배워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항소를 포기하고 판결을 수용하면 된다. 그래서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면 된다. ‘통 큰’ 결단이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