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보 전교조 정책교섭국장

공무원연금이 도마에 올랐다. 당·정·청은 공무원연금 기여율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대신 퇴직수당을 늘리는 내용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기국회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공무원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소속 당사자들의 기고를 통해 정부 방침의 문제점을 살펴본다.<편집자>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개혁은 좋은 쪽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부가 말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과연 누구에게 좋은 쪽일가. 공무원에게는 좋지 않은 방향이다. 그래서 공무원에게는 개악이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좋은 것인가. 소위 혈세론에서 공무원연금 보전금을 세금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세금이 낭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미 삭감됐고, 공무원연금을 삭감한 후에는 다시 국민연금도 공무원연금처럼 삭감하게 된다. 국민에게도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정부는 이익을 남기는 곳이 아니다. 세금으로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도 공무원연금 삭감으로 이득을 보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이득을 보는 것일까. 바로 금융자본이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이 삭감되면 우리의 노후가 불안해진다. 불안한 마음에 저축을 하거나 사적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노후불안을 예방하기 위해 모인 돈은 금융자본으로 흘러 들어간다. 정부는 이것을 금융산업 발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누군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 손해를 보게 된다. 바로 국민은 손해를 보고 금융자본은 그 손해를 가지고 수입을 올린다. 그렇다면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최대 수혜자는 금융자본이다. 공무원과 국민들에게는 연금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사적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수입이 있는 사람들이다. 공적연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적연금에도 가입할 수 없고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으로 살 수밖에 없는 노인들은 연금이 유일한 소득이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로 만들어 사실상 최저생계비 이하로 낮춰 놓았다. 2010년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부동의 1위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멕시코 노인보다 가난하다는 뜻이다. OECD 평균(12.8%)에 비해 4배 더 가난하다는 말이다.

이런 노후의 고단한 삶은 결국 노인 자살로 이어진다. 2010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만명당 자살인구는 80.3명으로 OECD 평균 20.9명과 비교하면 4배 더 많다.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OECD 평균보다 4배 차이가 나는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인 자살은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이 개악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타살이다. 이 정도면 공적연금 개악을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삭감하지 않으면 국가 재정이 거덜 난다고 말한다. 재정이 거덜 나면 나라가 망하거나 정부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것처럼 겁을 주고 있다.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다. 수돗물에 유해 성분이 많다고 겁을 주면 정수기 판매가 느는 것처럼 공적연금에 재정이 투입되면 재정이 거덜 나기 때문에 사적연금에 가입하라고 하는 공포 마케팅이다.

과연 연금 때문에 재정이 거덜 날까. 그렇지 않다. 현재 OECD 국가 중 2010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GDP 대비 14.6%, 오스트리아는 14.1%를 연금에 사용하고 있다. OECD 국가들은 평균 9.3%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OECD 국가들이 연금 때문에 재정이 파탄났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2050년에 노인인구 비중이 38.2%가 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GDP 대비 9.8%를 지출할 것으로 추정한다. 2050년이 돼도 공적연금 때문에 재정이 파탄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공적연금 때문에 재정이 거덜 난다면 OECD 국가들은 대부분 재정이 거덜 난 상태여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의 논리는 혈세 낭비다. 공무원같이 안정적인 철밥통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연금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기 위해 혈세를 낭비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국민연금을 개악할 당시에도 정부는 재정악화로 세금이 더 많이 들어가 결국 삭감해야 한다는 논리를 댔다. 이대로라면 정부는 연금수급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2044년 이전에 한 차례 더 국민연금 삭감을 시도할 것이다. 개악이 개악을 부르는 것이다.

혈세는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 노후의 삶을 보장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혈세의 목적이며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재정적자라는 말은 복지에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재정적자를 복지에 포함시키는 순간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노인·장애인·경제적 약자들을 죽음으로 내몰린다.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아야 한다. 돈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공무원을 비롯해 특수직역연금자들이 함께 나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부 재정을 줄이고 복지를 축소하는 신자유주의는 노인 살인자이자 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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