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주 노동계에 충격적이 일이 잇따랐다. 여당은 "노사의 개별합의만으론 부족하다"며 공공부문 노동자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또 구차하게 학회의 이름을 빌려 100만 공무원 노동자들의 연금을 깎겠다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노동자 정책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공공부문과 공무원 노동자들 앞에 한판 큰 싸움이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울한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노동사건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사법부의 판결이 나왔다. 하나는 "현대차는 사내에서 사용하는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고, 다른 하나는 "전교조는 고등법원의 본안 판결시까지 노동조합으로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다.

명쾌한 법논리로 재판부를 설득한 대리인들과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견딘 조합원들께 감사와 축하를 보내고 싶다. 부디 두 사건이 판결대로 마무리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렇지 않다. "법원의 판결대로면 사실상 경영을 할 수 없다"며 현대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했다. 전교조 사건 정부측 대리를 맡은 변호사들은 "기존 법원 해석에 반하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의 표시로 집단 사임했다.

이른바 현대차 불법파견·위장도급 문제는 두 번에 걸친 최병승씨 사건에서 대법원이 확고한 기준을 제시한 상태다. 수사기관에서도 잠정적으로는 현대차의 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 현대차 스스로 조합원 특별고용에 합의까지 하지 않았나.

전교조에 관한 주장은 더더욱 근거가 미약하다. 법원은 산별노조의 경우라면 반드시 종속적 고용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판결해 왔다. 국제적 기준과 비교하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9명의 해직자를 핑계로 6만 조합원 전체를 불법으로 내몬 것은 극도의 행정편의일 뿐이다.

참말로 답답한 현실이다. 누구는 최근 노동상황을 사법과잉이라고 표현한다. 노동문제를 사법화하지 말고 노사자치를 기본으로 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21세기 들어 주요한 노동 쟁점이 대부분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통상임금 문제부터 위장도급까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노동사건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소송에 나서지 않고 마냥 기다릴 것인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그저 자신보다 누가 먼저 제기한 사건의 결과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가. 이런 상태라면 현대차 사건과 전교조 문제도 대법원, 그것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지 않으면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유리하면 환영하고 불리하면 정치적 판결이라고 욕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핵심 중의 핵심은 입법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재의 모습은 사법과잉이 아니라 제도부재라 할 만하다. 도무지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적용할 법이 없다. 예를 들어 위장된 사내하도급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분쟁이 끝난다.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자격에는 종속관계를 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 모든 노동의 대가는 원칙적으로 통상임금이라고 법에 담아야 한다. 무능하고 게으른 입법부는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자에게 절대 환영받지 못한다.

나머지는 행정부의 제자리 찾기다. 법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공평한 법 집행이면 더할 나위 없다. 정부는 불법파견 행위가 10년 가까이 계속됐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고작 1심 판결이 선고됐을 뿐인데 다음날부터 파견 교사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어느 누가 이러한 법집행을 신뢰하겠는가. 이 같은 정부가 노동자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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