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주 서울중앙지법이 현대자동차가 생산공정에 사용하는 모든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데 대해 현대차가 항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2004년 9월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10년 동안 검찰을 제외하고는 노동부·노동위원회·하급심 법원·대법원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현대차 생산공정에 투입된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임을 확인해 왔지만 법령이 실현된 것은 없었다.

현대차는 ‘합법적’인 소송 진행을 통해 10년간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외면해 왔고, 정부는 “소송을 제기한 개인에게 국한되는 판결” 혹은 “최종심이 아닌 판결”이라는 명목으로 현대차의 불법·부당노동행위를 비호했다.

지난 10년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이들로 조직된 비정규직노조(지회)들은 어떤 일을 겪어야 했는가.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과 대법원의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근거로 현대차에 정규직화를 요구하다 수백 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다. 이들 대부분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또 '현대차 업무를 방해한 죄'로 구속되고, 수백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로 조합원들까지 임금을 가압류당했다. 그 와중에 두 명의 청년노동자가 목숨을 던졌고 한 명은 자신의 몸에 불을 댕겼다.

법적 판단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현대차가 압박을 받을 때면, 사측은 ‘선별적 채용’ 카드를 들고나와 노동자들을 분열하게 만들곤 했다. 안타깝게도 정규직노조는 이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보다는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와 투쟁 수준을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가 최고의 압박을 받을 때마다 원·하청노조가 참여하는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열렸지만 이 역시 정규직·비정규직 간 연대 강화가 아니라 통제와 분열로 귀결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지난주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직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생산하도급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현대차와의 직접교섭을 촉구했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 아니라 ‘도급’이라고 본 간접고용의 경우에도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 벌써 2010년 3월의 일이다. 하물며 ‘현대차의 근로자’로 거듭 인정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조가 자신의 사용자인 현대차와 직접교섭을 할 권리가 있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하다. 현대차는 즉각 비정규직지회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

정규직노조 역시 더 이상 비정규직노조와의 ‘1사 1조직’ 건설을 미룰 이유가 없다. 사실 10년 전에 이뤄졌어야 할 과제지만,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보수적인 법원마저도 거듭 현대차의 근로자임을 인정했는데 노동조합이 이들을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내하도급업체의 직원’으로 대한다면, 사측의 책임회피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이번 법원의 판결을 간접고용 노동자가 ‘진짜 사장’인 원청을 상대로 직접교섭을 하고 파업할 권리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판결이 상대적으로 여력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신분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파견·용역·하청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는 싸움을 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그것이 십수 년간 법적 싸움을 할 엄두를 못 내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도록 돕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