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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11] 숨어 지내다 해방 맞은 소선, 살아 꽃피다
▲ 전태일이 태어난 터 대구 계산 오거리 로터리. 이곳을 찾은 전태삼씨가 생가 터를 가리키고 있다. 이 길 거너편에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생가가 있다. 민종덕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소선아!”

“작은 선아!”

먼 곳에서 아까부터 어렴풋이 들리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산울림이 천파만파 퍼지도록 큰소리가 났다.

'도망쳐야 하나, 죽은 듯이 엎드려 있어야 하나. 여기서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저 소리는 저승사자의 소리란 말인가! 내 이름을 이런 대낮에 저렇게 크게 부른다니. 내가 여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순사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소선은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이제 잡혀서 맞아 죽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옛날 자신한테 글을 가르쳐 줬던 전문학교 다니는 그 오빠도 보고 싶었다. 뿐만 아니다. 그가 살던 집, 구석구석 동네 골목들, 정들었던 것들 하나하나가 뇌리를 스치면서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그의 곁에 없다. 이런 것이 외로움인가!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소선을 부르는 목소리는 어머니와 올케의 목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일본놈 순사가 찾아내라고 하도 볶아대니까 내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해방이 됐대요, 해방이”

“소선아, 소선아. 너 이제 고개 들고 콩잎 따도 된다.”

분명 어머니 목소리다.

‘내가 시집가라고 해도 안 가고, 고모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고집 피우고 안 가니까 미워서 일러 줘 버린 것은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들기도 했다.

“애기씨, 애기씨. 해방이 됐대요. 해방이!”

이번에는 올케 목소리다.

‘해방? 해방이라는 것이 뭔가?’

소선은 꼼짝도 않고 ‘해방’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어머니와 올케는 바로 소선 가까이로 왔다.

“애기씨, 일본 사람들이 물러간대요.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대요.”

“소선아, 이제는 여기에서 숨어 있지 않아도 된다. 집에 가서 살아도 된다.”

어머니는 소선을 붙잡고 펑펑 우셨다. 소선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나 집에 가도 된다는 말에 그저 한없이 좋아서 어머니를 붙잡고 울었다. 그동안 집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어머니한테 꼬집히고,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고모한테 꼬집혀서 온몸이 멍들었다. 사방이 자신을 죽인다고 옥좼는데 이제 그것에서 풀린다니 얼마나 좋은가! 해방이라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소선은 이제 마음대로 집에서 살 수 있다. 해방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 소선은 이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해방이 되자 좋아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슬픈 사람들도 많았다. 징용에 끌려간 사람들, 정신대로 잡혀간 사람들이 있는 식구들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세월이 더 흘러도 돌아오지 않는 부모형제를 둔 가족들의 슬픔은 오죽하랴. 어떤 이는 죽었다는 통보와 함께 손톱이나 머리카락만 돌아와서 그 집안 식구들이 통곡으로 나날을 보냈다.

소선과 함께 정신대에 잡혀갔던 친구 6명 중에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소선과 시남이 둘뿐이었다. 그것도 시남이는 일하다가 실수해서 손가락이 잘린 상태로 돌아왔다.

해방이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살기가 비참해져 갔다. 반면 일본놈들이 있을 때 일본놈들과 친하게 지냈거나 그들 밑에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은 일본놈들이 놓고 간 재산을 차지해 잘살게 됐다. 그 지긋지긋하던 공출은 일본놈 대신 미국놈들에게 해야 했다. 미국놈들이 쌀을 공출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래서 대구에서는 사람들이 경찰서에 몰려가 데모를 하고 경찰들이 데모대한테 총을 쏴 사람들이 여럿 죽었다는 소문이 났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소선의 동네에서 전문학교도 다니고 똑똑하다는 청년 몇몇이 객지에 나가서 죽기도 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알 수 없기도 하다는 말도 떠돌았다.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좌익을 해시 그랬다는 비밀스러운 말들이 오갔다. 소선은 좌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어른들의 세상은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몹시 시끄러웠다. 어른들 세상의 시끄러움과는 달리 이팔청춘 처녀의 세상은 풋풋했다.

여름날이었다. 소선은 아침나절 내내 들일을 했다. 한낮에 점심을 먹고 더위를 잠시 식히기 위해 어머니와 집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계십니까?"

해방 직후 혼란에도 이팔청춘 소선의 풋풋한 세상

대문 밖에서 사람을 찾는 남자 소리가 났다. 그러나 남녀가 유별한지라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어느 누가 날름 대답할 처지가 못 됐다.

“계십니까? 목이 하도 마려워서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시려고 왔습니다.”

여러 번을 불러도 도대체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그러던 중 소선이 대문 밖을 빼꼼히 내다봤다. 내다보니 웬 멀쩡한 총각이 어디서 흙일을 하다가 온 모양이다.

“무슨 일 때문에 부르시오?”

“예, 나는 저기 사방공사 십장인데 목이 하도 마려워 물 한 바가지만 얻어먹으려고 왔소.”

소선은 내외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목이 타 저렇게 물을 찾는데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서 두레박을 가지고 나와 샘물을 한 두레박 떠서 총각에게 건네줬다. 총각은 물을 벌컥벌컥 달게 들이마시고는 소선한테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훤칠하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남자가 대처 물도 조금은 먹은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남자는 이웃동네에 사는 사람으로 학교도 중학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날 그 일이 인연이 돼 남자는 소선을 좋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쩌다가 마주치면 따사로운 눈빛과 친절한 말을 잠깐씩 건네곤 했다. 소선 역시 그 사람이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집에서 중신아비를 넣어 소선의 집에 청혼을 했다. 그 남자가 청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선은 부끄렀다. 그런데 가슴이 떨린다고 할까, 설렌다고 할까, 하여튼 알 수 없는 파문에 가슴이 일렁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선의 집안에서는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자의 집안이 양반이 아니라 상놈 집안이었기 때문에 혼인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소선은 옳지 않은 처사라고 생각했다.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그 남자하고 혼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야단만 쳤다.

사방공사장 십장과 결혼을 못하게 해서 속상해 있는 터에 시집을 보낸다는 얘기가 나왔다. 소선은 무조건 시집을 안 가겠다고 했다.

소선에게는 배다른 작은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가 결혼을 해서 대구에 살고 있었는데 오빠의 부인이 중매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소선의 어머니와 작은올케는 어쨌든 시부모가 있는 집으로 시집을 보내야 한다면서 대구에 괜찮은 집안의 총각 얘기를 꺼냈다. 시부모도 계시고 형제도 많을뿐더러 총각이 옷 만드는 기술이 좋으니 중매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한번 보지.”

소선의 어머니가 선뜻 나섰다. 어머니는 어떻게든지 빨리 시집을 보내 버리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전에 얘기가 나왔던 그 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치워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는가.

꽃 피고 새 우는 어느 춘삼월. 그날도 소선은 밭일을 가기 전에 소죽을 끓여서 여물통에 풀고 있었다.

“오늘은 밭일 하러 나가지 맡고 방에 들어가서 바느질이나 하고 있어라.”

어머니가 소선을 붙들었다. 소선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집에 있었다. 얼마쯤 있으니까 처음 보는 할머니와 젊은 여자, 소선의 올케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젊은 여자는 총각의 이종사촌 동생으로, 중매를 한 사람이었다. 소선의 올케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할머니는 총각의 어머니였다. 소선이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손님으로 온 할머니가 소선이 일하는 방문을 열고 들여다봤다.

“처녀, 이 방으로 온나. 나 물 한 그릇만 떠다 주게.”

소선은 건넌방으로 물 한 그릇을 떠 가지고 갔다. 그때서야 선을 보러 왔구나 하고 짐작했다.

물을 떠다 달라고 한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며느리가 될 처녀를 선봤는데 방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 너무도 얌전해서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그 처녀는 다리가 불구였다. 그런 일 때문에 처녀를 선보러 갈 때 일부러 걷는 모습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할머니는 소선을 이리저리 뜯어봤다.

“참 귀가 복이 있게 생겼어. 말년에는 좋게 생겼어.”

그 사람들은 많은 얘기를 나누고 점심 대접까지 받고 갔다. 며칠이 지나자 회색 두루마기를 곱게 입고 고급 구두를 신은 부잣집 할아버지가 다녀갔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사성을 보내왔다.

사성이 오면 색시 집에서 날짜를 받아야 한다. 어머니가 날을 받았다. 날은 구월 스무날이었다.

혼인 날짜가 잡히고 준비를 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런데 정작 소선은 너무 싫었다. 어디로 도망가서 죽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요즘 시대 같으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어머니 아닌 다른 사람한테 불만을 말할 수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니 혼자서 낑낑거리기만 했다. 중매한 올케한테 “언니야, 나 시집 안 갈란다”라고 말하면 언니는 부끄러워서 공연히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럭저럭 날짜가 가까워졌다. 어떻게 하면 시집을 안 갈까 생각한 끝에 소선은 굶기 시작했다. 소선이 굶어도 식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인준비를 계속했다.

시집을 가야 할 날짜가 닥쳐왔다. 며칠을 굶어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인데 억지로 소선을 일으켜서 결혼식을 한다고 머리를 빗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날이 밝아오자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바깥을 내다보니 온 집안을 흰 천으로 깔아 놓고 차일을 쳐 놓았다. 벌써부터 큼지막한 상을 놓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없이 그 집으로 시집을 가는구나. 그렇게 안 가려고 내색도 하고 싫다고도 했는데 억지로라도 가야 한다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닥치는 대로 하고 시집에 갈 때 도망이라도 가야지.’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소선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야, 이제 이것도 바르고 진짜로 시집을 가는구나.’

굶어서 허우적거리는 소선을 양쪽에서 붙들고 머리에 족두리를 씌워 놓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났다.

“주인 출영.”

혼례 끝나고 아버지 산소로 도망친 소선

마당에 깔아 놓은 하얀 베를 밟고 초례청으로 가서 신랑 얼굴도 못 본 채 예를 지냈다. 초례청에서 시아버지한테 인사를 올리기로 어른들끼리 합의가 됐는지 시아버지한테 절을 올리는 순서가 있었다. 시아버지께 절을 올리고 술을 올릴 때 소선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다봤다. 그랬더니 올려다보는 새색시 눈과 시아버지의 눈이 마주쳐 버렸다. 새색시 소선은 그동안 신랑 될 집안에서 시아버지가 될 영감이 선본 색시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강력하게 혼사를 주장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궁금하던 터였다. 시아버지와 예를 올리는 중에 눈이 마주쳤으니 새색시는 겁이 났다.

식이 끝나고 모두들 술과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색시는 이 틈을 이용해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뒤란으로 해서 어둠 속으로 산길을 마구 달려갔다. 한참을 달려가다 이르게 된 곳은 소선의 아버지 산소였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산소까지 온 것이다.

조금 있다가 색시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식구들은 난리가 났다. 신랑 쪽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빨리 색시를 찾느라고 온 식구가 등불을 들고 나섰다. 남자들은 신랑과 신랑쪽에서 온 사람들한테 술을 한정 없이 권해 시간을 벌었다.

소선은 아버지 산소에 엎드려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어머니 소리가 났다.

“아이고, 우리 소선이가 도망가면 어쩌노. 아이고 내 팔자야!”

어머니 우는 소리가 너무나 처량했다. 소선은 어머니를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온갖 구박과 고생 속에서 언제 한 번 마음 펴고 살아보지 못한 어머니. 내가 이대로 도망가서 오늘의 결혼이 깨지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한과 원망으로 살아가실까.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잦아들었다.

“어무이, 나 여기 있어.”

갑자기 딸의 소리가 들리니 어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소선은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첫날밤을 치러야 할 방으로 들여보내졌다. 색시가 들어와야 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들어오지 않고 이사람 저사람 술만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신랑은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느지막이 방으로 들어가니 신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색시를 쳐다보는 신랑이 무섭다고 소선은 생각했다. 신랑은 더워서 못 견디겠는지 두루마기도 벗고 바지도 벗고 속적삼만 입었다. 그 속적삼을 약간 걷었는데 다리에 짐승같이 털이 나 있었다. 색시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생긴 사람한테 시집가라고 했는지 어른들이 야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 밖에서는 문구멍을 뚫어 놓고 야단법석이었다.

‘야물상’을 받아놓았는데 신랑이 밤을 집어 치마에 던져 줬다. 색시는 치마에 밤이 떨어지든 말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왜 밤을 안 줍는 거요?”

신랑은 밤을 주워 잘 간직하라고 했다. 색시는 밤을 집어서 그냥 옆에다 놔뒀다.

이번에는 술을 따라서 색시한테 받으라고 한다. 그 정신에 도저히 술잔을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술잔을 색시 무릎에다 놓으려고 한다. 술이 쏟아져 옷을 버릴 것 같아 잔을 받아 방바닥에 그냥 놓았다. 신랑은 술잔을 가져가 홀랑 마셔 버렸다. 자기가 따라 줬으니 이제 색시한테 술을 따르라고 한다. 색시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주전자를 들어서 조그만 잔에다 계속 부었다. 술이 줄줄 넘쳤다. 그만 따르라고 할 때까지 부었다.

신랑과 티격태격하는 신부

신랑이 술을 마신 뒤 머리를 푼다고 단단하게 매어 놓은 족두리를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어 봐도 족두리가 벗겨지지 않았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었다. 비녀를 꽂은 데다 새까만 끈으로 족두리 있는데서 묶어 놓았으니 그것을 건드리면 쉽게 풀어질 텐데….

‘아이고 저렇게도 못하는가.’

색시는 신랑이 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답답하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색시가 족두리를 벗어서 방바닥에 놓았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니만….”

색시가 족두리를 벗어 놓으니까 이제는 자기가 벗어 놓았던 옷을 다시 입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가려나 보다 했더니 옷을 다 입은 다음 얌전히 앉아서 색시한테 옷을 풀어 달라고 한다.

‘아까는 자기가 다 벗어 놓고는 또 나한테 풀어 달라고 하는가.’

색시는 오기가 생겨서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여자가 풀어야 한다면서 계속 풀어 달라고 재촉한다. 색시는 이쪽 것을 풀어서 홱 던져 버리고 저쪽 것도 풀어서 홱 던져 버렸다. 신랑은 기가 차서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옷을 벗고 나서는 상에 차려 놓은 것을 집어먹으라고 한다. 간장부터 먹고 차린 것을 먹어야 하는 법이라고 어머니가 말했다고 한다. 색시가 안 먹고 가만히 있으니까 자꾸 먹으라고 한다. 답답했던지 부엌 쪽 창문에서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던 올케가 나직하게 말했다.

“간장부터 떠먹고 무엇이라도 하나 집어먹어 감주라도 마셔.”

색시는 창문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작지만 그 소리가 다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올케가 중매를 해서 미워하고 있었다.

“갑갑하면 니가 와서 해라.”

색시는 톡 쏘아붙였다.

‘갑갑하면 니가 해라’라는 말을 신랑은 자기한테 하는 소리로 들었나 보다. 신랑은 저쪽에 앉아 있으니까 올케가 색시한테 한 소리가 안 들렸을 것이다.

“갑갑하면 니가 해라? 여자가 남자한테 갑갑하면 니가 해라라고 해?”

신랑은 색시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그 소리만 되풀이하고 앉아 있었다. 그래도 색시는 올케한테 한 말이라고 신랑한테 변명하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나중에 살면서도 싸울 때면 “갑갑하면 니가 해라? 아니 남자보고 니가라고 해? 그래도 가문이나 뼈대를 생각하고 장가를 들었는데 남자보고 갑갑하면 니가 해라?” 하며 트집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소선은 나이 19살 때 1924년 12월7일생인 전상수와 결혼을 했다. 남편 전상수는 낙천적인 기질에 성격이 쾌활했으며 튼튼한 골격에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말술을 마시는 남자였다.

소선은 전상수와 살면서 부부로서 도타운 정을 가지고 살아 보지 못했다. 살아야 된다고 하니까 그저 살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가기 싫은 시집을 억지로 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여의주를 가슴에 안는 태몽을 꾸다

이들은 대구에서 집에다 미싱을 들여놓고 흠스펀 기지로 오버코트, 양복 윗저고리 등을 만드는 옷 공장을 꾸려 갔다.

새색시 소선은 어릴 때 뛰어 놀던 달성군 성서면 감천리 친정집에서 아직도 산설고 물설은 시집 대구로 갔다. 대구로 갈려면 금오강을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늦가을이었는데도 반짝이는 햇살 아래 강바람은 사뭇 부드러웠다. 강물 또한 명경같이 맑았다. 어디서 어렴풋이 청아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더니 뱃머리 앞에서 커다란 물고기가 솟아올랐다. 물고기는 제법 기품이 있는 잉어인지 아니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고기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물고기는 소선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 다시 솟아오르더니 맑고 또렷한 눈을 크게 뜨고 소선을 쳐다봤다.

소선은 물고기와 눈을 맞추면서 이상하다, 저 물고기가 왜 나를 빤히 쳐다보나 하고 생각했다. 물고기는 입에서 커다란 구슬을 뱉더니 그 구슬을 소선의 젖가슴에 안겨 줬다. 엉겁결에 구슬을 받은 소선은 큼지막한 구슬을 내려다봤다. 말로만 듣던 여의주 같은 구슬은 일곱 빛깔 무지개 색으로 반짝였다.

소선은 구슬을 젖가슴 속에 넣고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봤다. 이번에는 이글거리는 커다란 태양이 점점 소선을 향해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소선은 저 뜨거운 해가 나한테로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태양은 순식간에 소선이 간직하고 있던 구슬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뜨거운 태양이 소선과 구슬을 한꺼번에 내리치니 이들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산산조각이 하늘 가득 퍼지더니 조각 하나하나 영롱한 빛을 발하면서 온 세상을 아름답게 비춰 주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차린 소선은 사방을 둘러봤다. 어디를 둘러봐도 작은 알갱이들이 형형색색 빛을 비추면서 커다란 빛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소선은 설핏 잠에서 깨어났다. 태몽이었다. 그로부터 열 달 뒤 소선은 전태일을 낳았다. 그날이 1948년 음력 8월24일이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식민지 백성의 노예노릇은 하지 않아도 됐다. 아이 이름을 태일이라 지었다. 클 태(泰)에 한 일(一), 全泰一.

막상 이름을 정해 놓고 보니, 문자 그대로 그것이 너무 완전하게 크고 제일이어서 소선은 속으로 걱정되는 바가 없지 않았다. 이름값 때문에 앞으로의 삶이 힘들지는 않을까….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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