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정부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퇴직연금을 의무적으로 가입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국민 노후소득 보장체계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퇴직연금 과연 제대로 운영되나
퇴직연금은 2005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제정되면서 퇴직금 제도의 하나로 편입됐다. 1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퇴직금은 과거 노사가 맞부딪쳤던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평균임금·근속기간 등의 쟁점도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없는 고난이도 문제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달랐다. 나는 지난 10년간 퇴직연금액의 산정방법을 묻는 상담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잘 운영되니 퇴직연금 상담이 없겠지’ 하고 퇴직연금에 대해 특별히 고민하지도 않았다.
퇴직연금 제도는 과연 잘 운영되고 있을까. 올해 초 어떤 노조의 통상임금 교육을 하다가 지나가듯 퇴직금과 퇴직연금 얘기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같은 임금과 관련한 영역이니 퇴직금과 퇴직연금 얘기를 잠깐하고 다시 통상임금 주제로 돌아오는 정도의 언급이었다.
그런데 교육 중간 쉬는 시간에 질문이 쏟아졌다. “퇴직연금에 성과급도 들어가나요?”, “식대는요?” 질문은 10년 전 퇴직금 상담을 할 때의 내용, 바로 그것이었다.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젠장 ~.”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법을 찾았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누구냐 넌
퇴직급여 보장법은 말 그대로 노동자의 퇴직금을 보장하려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다. 퇴직연금도 퇴직급여 보장법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퇴직급여 보장법 48개의 조문 그 어디에도 사업주가 법보다 퇴직연금을 적게 납입했을 때 노동자가 누구에게 어떻게 그 시정을 구하거나 청구하는지를 규정한 조문이 없다. 퇴직연금은 퇴직금 제도의 한 유형이고, 사업주는 평균임금이나 연간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퇴직연금 부담금에 대한 납입의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법률 해석으로 노동자의 청구권을 구성하지 못할 것은 아니나 통상 판례로 정립되지 않은 법률 해석은 또 다른 해석을 낳거나 새로운 쟁점을 파생시키곤 한다.
개별 사례로 들어가면 쟁점이 제법 존재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퇴직급여 보장법은 퇴직연금사업자(운영사)가 퇴직급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해 대부분의 조문을 할애하고 있다. 즉 퇴직연금사업자(운영사)는 퇴직급여 보장법을 보고 퇴직연금 운용계획을 짤 수 있겠지만, 노동자는 퇴직급여 보장법을 다 읽고도 정작 내 퇴직연금이 법률보다 부족한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건 ‘퇴직급여 보장법’이 아니라 ‘연금사업자의 퇴직연금 운영법’이다. 나는 퇴직급여 보장법을 다 읽고, 다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
퇴직연금제도 내실화가 필요한 시점
정부는 2016년부터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퇴직연금 의무화 발표에 이어 금융권에서 자사의 퇴직연금 상품광고가 쏟아지는 것을 보니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퇴직연금사업자는 상품설명이 중요하겠지만, 노동자에게는 그 상품이 DC형이든, DB형이든 중요하지 않다. 아니, 퇴직연금 상품설명을 듣더라도 정작 퇴직할 때 어떤 것이 더 많은 퇴직금을 안겨 줄지는 알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복불복’의 선택이다. 그러나 사업주가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매년 퇴직연금으로 얼마를 납입하고 있는지와 납입금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부는 2016년부터 퇴직연금을 의무화한다고 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될지 미지수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앞으로 1~2년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는 퇴직연금 의무화를 발표하면서 “사적연금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나는 그 내실화는 DB형·DC형, 그리고 이름도 어려운 뭔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급여 보장법에 노동자의 권리를 집어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퇴직금은 노동자의 권리이지 사용자의 은혜가 아니다.
퇴직연금 의무화 발표를 보며
고경섭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대표)
- 기자명 고경섭
- 입력 2014.09.23 08:00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