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지난 8월21일과 22일 양일간 지정됐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1천569여명)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520여명)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대한 선고가 연기됐다. 올해 2월13일과 18일로 예정된 선고가 연기된 데 이어 두 번째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회사인 현대차를 상대로 위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0년 11월4일이다. 현대차의 불법파견 여부를 집단적으로 판가름할 소송이 무려 4년(3년 11개월)이 지나도록 1심 재판부에서 계류 중인 것이다.

올해 2월13일과 18일 선고 연기와 변론재개 이유는 연장근로, 휴일근로시간 산정방식, 일부 원고들의 군필 여부, 호봉승급, 고용의제 이후에 발생한 하청업체의 징계자료를 쌍방이 추가로 제출하라는 것 등이었다. 8월21일과 22일 선고 연기 이유는 일부 원고들(75명)의 소취하에 대한 피고의 개별 동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원고들의 소취하는 두 번째 선고 예정일 직전인 8월18일 현대차와 하도급업체 대표단, 현대차지부, 현대차 아산, 전주 비정규직 지회 사이에 이뤄진 불법파견 특별교섭에서의 특별채용 합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첫 번째 선고기일은 소제기일로부터 39개월째였고, 두 번째 선고기일은 47개월째였다. 첫 번째 선고연기는 그 항변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3년 이상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사실 확정에 필요한 증거들에 대해 제대로 심리하지 않다가 선고기일까지 방치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두 번째 선고연기는 일부 원고들의 소취하서 제출을 위한 피고의 선고연기 요청에 따른 것임에도, 원고들 소취하에 대한 피고의 동의 여부를 선고 연기 이유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피고의 재판 지연 전술에 재판부가 협력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현대차(기아차 포함) 사내하청 불법파견 사건은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사용하면서 고용의 방식이 아니라 민법상 도급을 위장함으로써, 노동력의 사용과 고용을 분리시켜 차별과 중간착취를 금지한 헌법과 근로기준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대표적인 노동사건이다. 우리 사회는 제3자를 매개로 한 인력수급을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새로운 신분을 창출하고, 원청과 하청이라는 계약방식을 통해 형식상 사용자가 다름을 이유로 동일가치 노동에 대해서조차 차별을 일상화하고 합리화했다. 나아가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사용자는 하청계약의 해지라는 방식으로 ‘해고권’을 확보하고 자유롭게 인력을 조정함으로써 고용의 지속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가능성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불법파견으로 상징되는 간접고용에서의 차별과 고용불안의 일상화는 노사 간의 대등성을 앗아 갔고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고착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제3자를 통한 인력수급(간접고용) 문제의 선두에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파견이 존재하고 있다. 그로 인해 현대차 불법파견과 관련한 재판과 해법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의 폐해를 시정하고 노동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아 왔다. 더욱이 노동부가 2004년 특별근로감독에서 당시 현대차 모든 사내하청의 근로관계에 대해 불법파견임을 인정했고, 소위 ‘최병승 부당해고 사건’에서 대법원이 2010년·2012년 두 차례에 걸쳐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관계가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법원은 한국지엠 창원공장과 쌍용차 사내하청 근로관계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임을 인정했다. 컨베이어벨트(자동흐름방식)을 이용한 자동차 조립생산공정에서의 도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임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사내하청 근로관계가 불법파견임을 인정하기보다 소송기술을 동원해 문제가 되고 있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증인이 더 필요하다거나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재판을 3년 이상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왔다. 이제 와서는 특별합의와 소취하를 이유로 교묘하게 선고를 방해하고 있다. 특별합의의 내용은 불법파견에 따른 법적 효과(대상공정 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동등한 대우)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규모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신규로 채용하고 근속기간의 일부를 인정하는 방식을 통해 불법파견에 대한 법적 책임 면책과 파견법 무력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대기업이 현실적인 힘을 동원해 법질서마저 무력화하는 합의를 유도하고 그에 따른 재판 지연 전술을 쓰는데 법원이 더 이상 협력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법치도, 정의도 아니다. ‘권리보호의 지연은 권리보호의 거절과 같은 것’이다. ‘지연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처럼 소송촉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므로 소송촉진은 법원의 의무인 동시에 헌법 제27조제3항(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피고의 사정을 이유로 언제까지 다수 원고들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것인가. 이제 두 번이나 연기된 판결 선고를 더 미뤄서는 안 된다. 법원은 피고의 재판 전술에 끌려다닌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 아니라 재판 분리를 통해서라도 단호하게 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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