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람 기자

박근혜 정부를 함축할 만한 핵심적인 키워드를 하나 꼽자면 ‘불통’이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건이 최근 벌어졌다.

지난달 말 양대 노총을 비롯해 100여개의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의료 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청와대 인근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민원실로 향했다. 40여개의 박스에 나눠 담은 국민 200만여명의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청와대로 향한 걸음은 몇 발짝 이어지지 않았다. 기자회견 당시부터 주위를 삼엄하게 둘러싸던 경찰이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막아선 것이다.

사람들은 ‘질서유지’라고 쓰인 경찰의 바리케이드와 차벽 사이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서명지만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경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통의 사전적 의미는 길이나 다리 따위가 연결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꼭 들어맞는 사례다. 서명지가 품고 있는 내용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바로 ‘의료 민영화(영리화) 반대’다.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보건의료산업의 선진화를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예고한 여러 규제완화가 의료가 겨눠야 할 과녁을 ‘생명’에서 ‘돈’으로 왜곡시킨다는 우려다.

단순히 하나의 병원을 세우고 허무는 것에 머물 일이 아니다. 의료의 철학적 근간이 흔들린다는 위기감에 사람들은 서명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사람들이었다.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자신의 이름에 담았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는 기자회견의 단골 코스다.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장소다. 하루에도 수차례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간절한 목소리에 담아 호소한다. 기자회견은 대개 청와대 민원실에 서한을 접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즉자적인 반응을 기대했을까. 그렇지 않다. 국민 200만명의 뜻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간절하고도 중요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의 과격한 주장도 아니고 이익단체의 밥그릇 챙기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 200만명이 일시에 뜻을 모은 서명지는 갈 곳을 잃었다. 국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대통령 스스로가 귀를 막아 버렸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자의 속삭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범국본은 추석연휴 이후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직접 찾아와서 서명지를 들고 가도 모자랄 판에 이게 말이 되나. 듣는 척조차 하지 않는 오만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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