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 개정안을 내놓았다. 정신질병에 대한 지침 개정은 8년 만이다. 최근 공단 천안지사에 요양을 신청한 사건(천안지사, 재활보상부-4353)과 개정안을 비교하면서 개략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개정안은 기존 지침과 달리 정신질환의 상병을 세분화했다. 주요우울장애·불안장애·적응장애·외상스트레스장애 및 급성스트레스 반응·자해행위 및 자살·수면장애 등 6가지로 분류했다. 또한 자해행위 및 자살·외상스트레스장애 및 급성스트레스 반응·주요우울장애 등 3가지로 구분해 각 상병의 조사서식과 주요 조사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증상 발생 이전 6개월의 주요 변화요인을 조사하고, 서비스 관련 직업군의 ‘감정노동 직업군인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단 자문의사는 임상적 소견에 대한 자문을 하고 그 내용을 재해조사서에 기재한다. 기존 지침과 동일한 내용이다.

정신질환은 다른 상병과 마찬가지로 그 상병의 업무관련성 여부는 결국 법률적 판단의 영역이다. 그런데 정신질환의 업무관련성은 정신과 의사들이 판단하는 구조다. 천안지사에 신청한 사건에 대해 공단은 정신건강의학과 자문의사의 의견을 받았다. 결론은 ‘개인적인 질환’이라는 것이었고, 이것이 주된 자료로 제출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불승인됐다.

사실 공단 자문의사가 신청인이나 대리인이 제출한 모든 서류와 자료를 보고 검토를 하는지 알 수조차 없다. 자문의사의 기능은 당해 상병이 확인되는지 여부에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문의사가 ‘판정권한’까지 행사하는 것은 월권적 행위다.

개정안은 재해조사에 있어 공단의 6개월 조사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며, 지나치게 간소한 조사내용만을 담고 있다. 정신질환의 특성상 6개월 이상에 걸친 업무적 스트레스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개정안에 6개월보다 이전인 경우에 그 이전의 상황을 명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실제 업무처리에 있어 6개월보다 장기간인 경우에는 어떻게 조사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공단의 조사서식이 지나치게 간소하다. 자해행위와 자살의 경우 △핵심요인 △사건 발생 전 정신병적 상태 △사건 발생 전 특이사항 △충격적 사건 △6개월간 주요 변화요인 △과거 정신질병으로 구분한다. 사건의 내용을 제대로 조사·기재하기 힘들다.

이와 함께 개정안의 서식은 핵심요인에서 신청인의 주장과 동등하게 사업주 주장을 담고 있다. 또 의료기록과 과거 정신질병을 구분한다. 업무관련성에 대한 요인은 간소화해서 기재하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사업주의 주장이나 의료기록만을 가지고 업무기인성을 논하는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일본 노재보험은 △정신장해 등 업무기인성 판단을 위한 조사표 △당해 근로자의 정신장해 발병에 관여했다고 생각되는 사건에 대응한 심신의 변화에 관한 시간적 경과 △근로시간 등 조사 결과 △업무상 여부 종합판단 결과표 등 4가지 조사표를 활용한다. 청구인의 진술에 대해 각 관련자에 대한 조사내용·자료·페이지를 꼼꼼하게 기재해서 조사하도록 돼 있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사업주(회사) 내부의 업무적 스트레스나 갈등에서 비롯되는 탓에 사업주의 날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의 주장을 대등하게 조사하다 보면 피재자의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공단은 천안지사 사건에서 사업주의 의견서를 청구인이나 본인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우울증 해당 여부는 의학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므로 판정위 심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회신했다.(천안지사, 재활보상부-7403) 이에 반해 대리인이 제출한 재해경위서는 어떤 언급도 없이 사업주에게 송부했다.

문제는 공단이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안’에서 재해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요양업무처리규정(제8조 제1항)에 명시된 보험가입자 의견서조차 송부하지 않고 있다.

개정안이 기존 지침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는 하나 실무적인 절차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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