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주저 없이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지금의 5060세대는 자신의 영역을 3040세대에게 넘겨야 한다. 떠밀려 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성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대략 40대 중반을 전후한 시기를 피크로, 이후부터는 직위나 보수 모두에서 점차 내려가는 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5년을 전후한 기간 동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리더 집단이 역할을 잘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2막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젊은 국가>(매일노동뉴스 펴냄) 중에서)

도발적이다. 40대 중반에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고, 50대에는 자리를 물려주라니. 그것도 “기성세대가 협소한 틀에 갇혀 기득권에 집착한다면 세대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과격한 충고까지 덧붙였으니 듣기에 영 불편하다.

도발적인 화두는 박세길(53·사진)씨의 것이다. 그는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3권으로 80년대와 90년대 청년들을 열혈 투사로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집필 활동과 노동자 역사교육사업, 시민·사회단체 일을 하며 진보적인 삶을 살았고, 한편으로는 운동을 주도했던 그가 왜 정년연장 주장이 주류인 시대에 정반대의 얘기를 던졌을까. 지난 22일 <매일노동뉴스>가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젊은 국가>의 저자 박세길씨를 만나 물었다. “너무 과격한 것 아닙니까?”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처럼 사는 게 젊은 국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겠다”며 돌아온 그의 대답은 다소 엉뚱했다.

“이달 초에 미스유니버시아드 한국대표와 지리산에 놀러 갔다 왔습니다. 그 뒤로 여러 날 허리가 안 좋아서 고생했습니다.”

사실이란다. 휴가차 고등학교 동기 4명이 지리산을 갔는데 미스유니버시아드 한국대표인 친구 딸이 함께 동참했다는 얘기, 지리산에는 태풍 때문에 오르지도 못하고 술만 먹다가 허리를 삐끗한 얘기를 들려준다. 그리고는 “배경과 전후맥락을 따져야 하는데 한 부분만 떼어내 얘기하면 (내용이) 변질된다”고 말했다.

“50세 정년의 전제는 인생을 2막으로 재설계한다는 겁니다. 그런 전제 없이 정년을 말하는 것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잘못된 얘기죠. 50세 은퇴는 틀린 표현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 질문은 이겁니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그냥 1막으로 마무리해서 60대부터 노년의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인생을 2막으로 재생할 것이냐는 거죠. 45세 임금피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리더십도 이양해 줘야 하거든요. 그 시간이 5년 정도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1차 정년을 50세로 제안했지만 1막의 끝과 2막의 시작을 나누는 경계선을 몇 살로 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얼마든지 받아들입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몇 살로 할지 논쟁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하다는 증거죠.”

그렇다면 박세길씨가 말하는 ‘젊은 국가’는 무엇일까. 65세 이상 고령층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로 정의하는 것처럼 고령층 비중이 낮은 나라를 뜻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는 “전체 사회에서 부양대상으로서의 노년층이 급격히 증가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인 사회를 일컬어 ‘늙은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젊은 국가라는 개념어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틀로는 담을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젊은 국가는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처럼 사는 겁니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전제가 인생 2막입니다. 1막을 마무리하고 2막을 개척하는 입장에서 20대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삶을 디자인하고 연출하는, 그래서 젊어진다는 의미에서 '젊은 국가' 개념을 쓴 겁니다.

저출산 고령화사회는 통계수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존 프레임에 의하면 60세 이상은 전부 부양을 받아야 하는 노년층입니다. 그래서 비생산 인구로서의 노령인구라는 프레임을 바꿔야 합니다. 80세 이후는 과거 정의한 대로 부양받아야 할 노년이겠지만 그 전까지는 누구나 덜 시장경쟁적인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팔팔한 젊은이처럼 일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그래야 저출산 초고령화로 인한 늙은 국가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노조, 젊은 국가 산파 역할 해야”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박씨는 인생 2막을 열 사회적 토대에 대해 “현재는 황무지와 다를 게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인생 2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은 많이 확산돼 있다”고 말했다. 대신 “개인적으로 하지 말고 집단적으로 하라”, “연대에 기초해서 실천하라”고 주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인생 2모작이라며 술집이나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알고 보니 서서히 망해 가는 지름길이었죠. 다음에는 귀농·귀촌 붐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힘드니까 70% 돌아왔다고 해요. 인생 2모작은 절대 개인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집단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대에 기초해서 풀어야 합니다.

예컨대 농촌으로 가려면 농민단체와 힘을 합치라는 거죠. 판로문제는 도시에 있는 단체와 협력해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 전제조건을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는 조직이 노조예요. 지금도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상당히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이나 계를 만들어 공동으로 땅을 사고, 퇴직한 다음에 말 그대로 전원복지공동체를 만들어 보자는 꿈을 갖고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꽤 많아요.”

전원복지공동체는 박씨가 인생 2막의 실천방법으로 가장 중요하게 드는 사례다. 여기에 운동을 접목하면 성공할 여지가 크다고 본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양한 요소를 지원·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나중에는 국가적 지원을 끌어낼 정치적 행위가 결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노조가 새로운 미래를 잉태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 산파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노조 스스로 이런 역할을 수행하면서 늙은 노조에서 젊은 노조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렇다 치더라도 인생 2막이 과연 가능할까. 납득되지 않는 지점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사교육비나 등록금을 포함한 교육비용과 주거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나라다. 두 가지만 보면 최악이다. 50대는 그 정점에 서 있다.

박씨 역시 이를 “숨겨진 기제”라고 표현했다. 그는 "50세면 보통 자녀가 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닐 때인데, 결혼은 고사하고 학교도 안 마친 상태인데 나는 인생 2막을 살 테니까 너희들 알아서 하라고 할 수는 없다"며 "50세 정년을 얘기하면 복지가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0세 정년이 가능하려면 국가적인 제도화가 필요하죠. 무엇보다 교육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을 포함한 복지 확충이 중요합니다. 이런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인생 2막은 불가능합니다.

2막 인생이 현실화하려면 사회제도적 환경이 갖춰지고 국가적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하는데요. 결코 개인이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정년 50세 논쟁이 붙으면 결국 복지를 이슈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정년 50세 논쟁이 복지 논쟁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겁니다.”

“젊은 세대, 세대교체 준비돼 있다”

세대교체는 준비된 세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박씨는 낙관적이었다. <젊은 국가>에서 그는 “감히 단언컨대 우리의 젊은 세대는 준비된 세대”라고 말했다.

“80년대 20대의 경우 대학을 들어가면 흔히 커리큘럼이라는 이름으로 20~30년 동안 축적된 지적자산이 단기간에 전달됐습니다. 지금 20대는 그런 게 없죠. 축적된 지적자산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세대교체 준비가 돼 있다고 판단됩니다. 다음 세대를 담당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내면에 있고, 역사적 경험을 했으며, 변화를 열망하는 세대입니다. 물론 조직적으로 훈련됐느냐, 정책적으로 준비됐느냐 하는 구체적인 지점으로 들어가면 취약하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5060세대가 저물어 가는 신자유주의의 기득권자라면 그 아래에서 혹독한 학습과 연마를 거친 젊은 세대는 신자유주의 이후를 담당할 주역입니다.”

박씨는 “세대교체가 단시간 안에 급격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민주 대 반민주’ 혹은 ‘평화 대 냉전’ 구도처럼 ‘젊은 국가 대 늙은 국가’ 양자구도를 만들어 가자고 제안한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보세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평화 대 냉전 구도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30년 동안 준비했던 겁니다. 일본처럼 늙은 국가로 망할지, 젊은 국가로 살아날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젊은 국가 대 늙은 국가' 구도는 반드시 만들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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