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욱 금속노조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지난 18일 현대자동차 원·하청 노사는 오랜 진통 끝에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특별고용을 확대하고 일부 경력을 인정하는 내용의 불법파견 특별교섭 합의안을 도출했다. 내년 말까지 4천명(2천38명 채용 완료)을 정규직으로 특별고용하고 사내하청에서 3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최소 1년에서 4년까지 경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 금속노조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는 빠졌다. 지회는 대법원이 인정한 불법파견 책임을 희석시키고 현대차에 면죄부를 준 합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합의 뒤 21일과 22일로 예정됐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선고기일은 한 달 뒤로 연기됐다. 소송을 취하해야 특별고용과 경력인정, 해고자 복직이 가능하다는 현대차의 전제조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합의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정규직 전환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

김성욱 금속노조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지회장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지난 10년간 불법파견 철폐를 위해 투쟁했다. 2010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이후 지회 조합원들은 근로자지위확인 및 체불임금 소송을 제기하고 결과를 기다려 왔다.

그런데 21일로 예정됐던 서울중앙지법 선고가 연기됐다. 지난 18일에는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신규채용 확대와 일부 근속인정을 뼈대로 하는 ‘현대차 원·하청 노사의 특별교섭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회사측이 이번 판결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사전에 손을 쓴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법원이 현대차의 불법파견 관행을 재확인할 경우 현대차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난여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울산비정규직지회가 빠진 상태에서 나온 특별교섭 합의안의 내용은 매우 기만적이다. 현대차의 불법파견 관행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회사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면 당연히 정규직 전환이라는 문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이 아닌 특별고용 방식으로 정리됐고, 그마저 해당 노동자들이 법원에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채용기회조차 부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불법을 저지른 건 회사인데, 또다시 회사가 공을 쥐고 흔들게 됐다.

법원이 다음달로 선고를 연기한 덕분에 회사는 시간을 벌게 됐다. 그 사이 회사는 노노갈등을 부추기고,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하지만 지회는 정규직 전환을 포기하지 않고 현대차의 불법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조합원 배제를 최대한 줄인, 가장 현실적인 합의

진상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사무국장



이번 노사합의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합의 내용은 가장 현실적인 안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교섭에서 가장 큰 쟁점은 사측의 불법파견 인정 여부, 그리고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 여부였다. 특별교섭은 합의 도출을 위한 협상자리였고, 의견접근이 필요했다. 그런데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노사 입장은 팽팽했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 불법파견과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판결이 나왔을 때 100% 승소라는 것은 없다. 패소하는 사람이 분명히 생긴다. 울산비정규직지회가 조합원의 정규직 전환배제 금지를 요구했는데, 거꾸로 소송에서 패소하는 이들이 정규직화에서 완전히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조합원들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교섭 초기에 지부와 3개 지회가 정한 원칙이었다. 그 원칙을 최대한 고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노사합의로 도출한 것이다. 울산지회가 중간에 교섭에 불참했지만, 지부는 전주비정규직지회·아산사내하청지회의 요구를 최대한 수렴했고 관철시키려 했다. 두 지회가 동의한 것이 이번 합의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시작된 지 10년이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회사는 또 항소할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회사는 특별채용을 강행했고, 지회의 조직력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생활고 때문에, 정년이 다 차서 투쟁에서 이탈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들이 사라진 다음에 승소하면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패자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 합의였음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사법정의와 장기전략 외면한 현대차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박사



2010년과 2012년 현대차 최병승씨, 지난해 한국지엠 창원공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원칙은 완성차공장의 직접생산공정 하도급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법정의인데 현대차 사측은 외면했다.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하던 현대차라면 해당 공정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뒤, 대법원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하지 않은 공정에 대해 특별단체교섭에서 논의해야 했다. 예컨대 대법원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하지 않은 출고 전 검사공장(PDI공장) 같은 곳 말이다. 일정부분 사내하도급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엄격한 사유제한과 규모제한, 촉탁직까지 포함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근로조건 개선이 필요하다. 동시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정규직지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는 대법원 판결에도 정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악화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고용노동부도 특별근로감독을 약속한 적이 있는데도 그렇지 않았다. 그 결과 현대차가 불법파견의 책임에서 빠져나가게 됐다.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정규직의 고용안정과 노동유연화를 위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사내하청을 늘린다고 해서 그런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내하청을 최대한 정규직화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정규직 내부를 유연화하면서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현대차가 눈앞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만 의식해 장기적인 전략 없이 땜질처방만 한 것이 이번 특별교섭 노사합의다.




사회정의에는 어긋나지만, 새로운 타협점 찾는 과정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그동안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울산비정규직지회의 의견이 경직적이라 논의가 나아가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조금 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등 치사하게 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합의 내용을 볼 때 방식 자체는 현대차가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가 됐다. 법이나 사회적 정의 차원에서 볼 때 내용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노사 관계라는 것이 법과 원칙으로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대화나 타협이 필요하다. 교섭에 나선 전주비정규직지회·아산사내하청지회도 이번 합의가 법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불법파견을 그대로 인정했을 때 끼치는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 조합원들이 10년 이상의 싸움에 지쳐 있다는 상황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이라는 노사관계를 굴러가게 하는 두 바퀴는 어느 한 쪽이 빨리 달리면 균형을 잃고 어그러진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합의는 노사가 새로운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현대차는 과거의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셈이 돼 버렸다. 현대차는 10년 동안 불법파견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대법원 판례를 2번 무시한 전례가 있다.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했을 때 생기는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겠지만, 전주비정규직지회·아산사내하청지회가 노사관계의 대승적인 차원에서 합의했듯 현대차 역시 그동안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또 현대차는 앞으로 울산비정규직지회와의 교섭에서 근무경력 등에 대해서 좀 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