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39일째.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21일 하루 서울 광화문광장 농성천막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간간이 천막이 걷혔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로 가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몸 상태가 많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날 오전 SNS에 "어제 농성장을 찾아온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이야기를 듣다가 크게 화를 냈다. 오후에는 청와대 앞에서 큰 충돌이 있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기를 더 쓸 수가 없다"고 적었다.

국회는 제도정치의 관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의 뜻을 지키는 것보다 타협안을 선택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여야 합의안에 광화문광장을 지나는 시민들은 "야당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 아니냐"고 반문까지 했다.

그런 합의안을 유가족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예상대로 유가족은 합의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국민과 유가족, 야당 편 가르기에 나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경제 관련 법안을 세월호 특별법의 볼모로 잡는 것은 잘못"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에 합의안 추인을 종용했다. 그는 "박영선 원내대표께서 무책임한 당내 강경파의 비판을 받으면서 유가족을 설득하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고도 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김영오씨는 20일 청와대에 면담신청 민원을 접수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특별법 문제는 여야 간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언론은 이런 정부와 여당에 관대했다. 이날 조간신문 주요 기사 제목만 보자.

"세월호에 멈춰 선 한국정치"(조선일보), "의회정치 무력해졌다(중앙일보)", "중국산 짝퉁 철강이 내 집 안전 위협한다"(동아일보), "방탄국회 본색 드러낸 야당"(국민일보)이었다.

피해자는 어느새 일상을 방해하는 가해자가 됐다. 유가족들은 국회에서도 농성을 하고 있지만 출입마저 힘든 상황이다.

정치는 유가족 앞에 나오지 않고 세월호 이전 세계에 멈춰 있다. 그렇다면 국민이 유가족의 호소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적어도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다르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정치가 실종됐다지만 적어도 사람은 살리는 사회여야 한다. '유민 아버지'의 목숨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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