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4년, 여름휴가도 임단투를 종결시키지 못했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요구가 아직 쟁취되지 못한 탓이다. 임금인상과 통상임금이 2014년 임단협의 주된 요구라는데 그것을 쟁취하지 못했다. 매년 여름휴가 전까지는 임단협을 타결 짓는 사업장조차도 휴가 뒤로 미뤄졌다. 현대차 교섭은 여름휴가 기간에 조정절차를 진행하고 금속노조는 여름휴가 뒤에야 파업 등 쟁의에 돌입한다. 지난해 12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다. 그래서 사업장마다 그것을 주된 요구로 제출해서 노동조합은 교섭해 왔다.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고, 사용자와 교섭해서 단체협약으로 확보해 내야 한다고 2014년 8월이 되도록 노동조합은 교섭 중이다. 이렇게 교섭과 쟁의로 사용자에 맞서 자주적으로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낼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이라고, 대한민국은 오늘도 노동조합이다.

2. 노동조합이 없다면 어떠했을까. 노동자를 위한다는 노동자단체가 없으면 어떠했을까. 하다못해 노사협의회·노동자협의회조차도 없으면 노동자는 그저 사용자의 노예로 살고 있을까. 노동자는 사용자로부터 무제한으로 착취당하고 있을까. 찍소리도 못한 채 자본의 세상에서 자신을 위한 요구도 없이 노동자는 살고 있을까. 그는 입이 있어도 사용자를 위해서 말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한다. 사용자를 상대로는 자신을 위한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다. 그는 손이 있어도 사용자를 위해서 사용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휘두르지 못한다. 감히 사용자를 상대로는 자신을 위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는 불구다. 이렇게 노동자는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해 왔다. 그래서 노동조합이라고 행동해 왔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이 세상에서 노동자권리는 노동조합으로 확보하고 지켜지는 것이라고 조합비를 내고 투쟁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없다면 어떠했을까. 바보같이 묻는다. 노동자는 지금보다 더 벙어리로 불구로 살고 있었겠냐고 나는 바보같이 묻는다. 노동자단체, 노동자가 조직하고 구성원인 단체인데 그 단체에서 노동자는 어디에 있을까. 노동자단체에서 노동자와 단체의 관계를 보자. 단체만이 노동자를 말한다. 단체의 행위를 하는 자, 바로 그가 단체다. 거짓의 의제 없이 말해 본다면, 의제된 거짓을 거두고서 본다면 바로 그가 단체다. 그가 하는 말이 그가 하는 행동이 단체의 말이고 행동이 된다. 그가 곧 단체다. 노동자는 그가 하는 결정을 단체의 명령이라 알고 복종할 뿐이다. 노동자는 없다. 노동자단체가 노동자를 잡아먹는다. 노동자가 참여한다는 총회라고 해 봐야 유명무실하다. 토론 없이 하는 투표용지로 나타날 뿐이다. 노동자단체가 없다면 당연히 노동자가 스스로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단체가 아닌 노동자들은 사용자에 맞서 제 권리를 관철하기 위해 스스로 요구하고 투쟁했을 것이다. 추상화된 단체가 아닌 노동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단체의 통제 없이 즉시적으로 반응하고 단체의 규율 없이 본능으로 폭발하고, 그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게 타올랐을 것이다. 세상을 불사르고 마침내 노동자 이름조차도 태워버렸을지도 모른다.

3. 2014년 7월30일, 대한민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결과를 두고 누구의 승리이고 누구의 패배라고 평가하면서 민심이 무엇이라고 진단하기에 바쁘다. 민심이라. 국민의 마음이 무엇이라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투표용지에 기표를 했다고 그걸 진단하기에 바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무슨 당의 후보들이 기재된 투표용지 어디에 기표하느냐로 대한민국에서 인민의 마음이 무엇이라고 표시되는 것일까. 당선을 위한 표를 얻기 위해 약속한 공약들 중 무엇이 마음에 든다고 투표하고, 지역과 학교 등 연고가 무엇이라고 투표하고, 후보의 인격이 생김새가 어떻다고, 학력과 경력이 어떻다고 투표하고, 당이 무엇이라고 투표했다. 도대체 아무개를 당선시킨 선거구 국민의 마음은 종잡을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찬반의 투표용지를 나눠 주고서 기표하라고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역연고의 보수정치를 끝장낼지 찬반의 투표를 하겠다고 알리는 선고공고물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권자에게 배포하지 않았다. 그저 무슨 당의 후보는 아무개이고 공약이 무엇이고 학력·경력은 어떻다고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투표하라고 했을 뿐이다. 투표용지에 기재된 아무개에게 기표한 위대한 국민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 아무개에게 투표한 국민들조차도 서로 마음이 같을 수가 없다. 그저 제 나름의 기준과 근거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아무개가 다른 후보보다 나을 거라 여기고 투표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의 일을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아무개가 보다 적임자라고 투표했을 뿐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국회에서 어떤 입법 활동을 하게 될 것인지 알고서 그걸 지지해서 투표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오늘, 국민이라 불리는 인민의 마음은 선거로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국가가 없다면 어떠했을까. 인민을 위한다는 국가가 없으면 어떠했을까. 인민은 강자의 폭력에 짓밟힌 채 노예로 살고 있을까. 약육강식의 정글 세상에서 기본적 인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채 주인의 명령이 법이라 알고서 복종만이 자신이 살 일이라고 알고서 살고 있을 거라고 오늘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국가를 배웠다. 그래서 자신의 수입 중 몇십 퍼센트를 세금으로 납부하고서도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아도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말한다. 자신의 시간과 생명을 바쳐 병역의무를 다하고서도 죽을 때까지 국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충성을 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국가가 없다면 어떠했을까. 바보같이 묻는다. 인민은 지금보다 더 충성으로 복종하면서 살고 있겠냐고 불충한 나는 바보같이 묻는다. 국가, 인민이 조직하고 거기서 국민으로 존재하는 단체다. 어느 단체보다 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불가분의 절대권력인 ‘주권’을 갖고 있다. 인민은 국민으로서 그 국가권력에 복종한다. 국가의 행위는 권력자가 행사한다. 대통령·국회의원 등 국가권력자가 국민의 대표자로서 행사하고 인민은 국민으로 복종한다. 국가에서 인민은 없다. 국가는 무엇을 결정하고 행사하는데 인민은 결정하고 행사하지 못한다. 오직 대표자가 국민의 이름으로 국가의 행위를 결정하고 행사하고 있다. 국가만이 국민을 말한다. 국가의 행위를 하는 자, 사실은 그가 국가다. 거짓의 의제 없이 말해 본다면 바로 그가 국가다. 그는 바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 권력자다. 그가 하는 말이 그가 하는 행동이 국가의 말이고 행동이 된다. 그가 곧 국가다. 국민은 그가 하는 결정을 국가의 명령으로 복종할 뿐이다. 인민은 없다. 국가가 인민을 잡아먹는다. 국민이 결정한다는 국민투표는 유명무실하다. 국가의 의사를 국민이 자유롭게 결정한 적이 없다. 강요된 선택을 투표용지에 기표할 뿐이었다. 국가 권력자가 없다면 인민은 스스로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추상화된 국민이 아니라 인민으로 구체적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노동자에 관해 했던 말을 그대로 국가에서 인민에 관해 말하게 된다.

4. 2014년 세상은 멈춰 있다. 낡은 세상이 오만하게 군림하고 있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노동의 이름으로 노동조합은 정체돼 있다. 노동의 세상을 위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낡은 세상의 바퀴만 돌려대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민의 이름으로 국가는 정체돼 있다. 권력이 아닌 인민의 세상을 위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낡은 세상의 질서만 확고하게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노동조합에는 노동자가 없고, 국가에는 인민이 없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죽이고, 국가가 인민을 죽였다. 노동자의 일을 노동조합이 차지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사용자에 맞서 주장하고 투쟁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서 노동조합은 말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라고 말한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4호 노동조합의 정의). 인민의 일을 국가가 차지했다. 국가가 인민을 세상의 주인으로 서지 못하게 한다. 국가는 인민을 자신에 복종할 국민으로 규정지었다. 그리고서 국가는 말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그러나 노동자와 인민을 주인이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복종할 자로 규정짓고 있는 한 그의 말은 단체 권력의 정당성 근거로 내세우는 말일 뿐이다. 노동자·인민이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2014년 세상은 노동자와 국민의 이름을 차지한 채 군림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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