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새 경제팀이 최근 일자리 정책으로 고령노동자 파견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만 5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업무와 건설공사·선원·유해위험·의료 등 절대금지 업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견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도급보다는 파견근로자 보호방안이 있는 파견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고령노동자는 물론 취약계층의 일자리 질이 함께 악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무엇보다 한번 파견확대 물꼬를 트면 결과적으로 전 업종으로 파견업종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령노동자 파견확대에 대한 각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간접고용·특수고용 고령노동자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이상원
한국노총 비정규담당 부위원장

참 난감한 문제다. 원론적으로 노동계는 파견확대를 원하지 않는다. 원칙적 입장만 가지고 대응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참혹하다. 지금의 고령자 일자리 환경을 보면 차라리 파견직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더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는 형편없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5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주어지는 새 일자리는 대부분은 간접고용이거나 특수고용 형태다.

현장에서 고령노동자들과 이야기해 보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안정된 일자리다. 실제로 임금체불을 나 몰라라 하는 사용자들이 너무 많다. 고령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간접고용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원청을 찾아가 사정해도 그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파견의 경우 미약하지만 법적 권리가 주어진다. 고용주와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고 안전한 노동환경과 차별적인 처우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파견이라는 합법적 중간착취 과정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고령자 파견확대에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고령노동자들에게 최소한 보호장치라도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 공약이 ‘파견대상 확대’였던가 

석권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본부 실장

정부에서 발표하는 경제나 노동·복지정책 자료는 거꾸로 들고 읽으면 정확하게 읽힌다. 행간에 숨은 의미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 정책방향의 고용·노동 정책 중 ‘고령층 파견대상 확대’ 부분은 매우 솔직하게 입장을 내놓았다. 친절하게도 ‘32개 현행 파견업무표’ 붙임자료까지 소개했다.

정부가 발표한 ‘고령층에 대해 파견 전면허용’을 기업의 입장에서 한마디로 규정하면 “불법 소지를 없애고 임금은 절반만 주면서 숙련된 정년 퇴직자를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더 많은 업종과 연령대로 파견 비정규직을 대폭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확산을 막아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재벌기업의 편에서 파견노동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 고용 원칙’이었다. 정부가 진정 정규직 전환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실효성 없는 정책을 장황하게 늘어 놓지 말아야 한다.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이를 추진할 법과 제도를 완비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을 이행하면 된다.

일방적 추진 제조업까지 확대될까 우려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

정부의 55세 이상 고령자의 파견업종 확대는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고령자의 재취업에 성과가 있을 수 있지만 노동시장의 구조를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 고령자 대부분은 저임금의 나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상시·지속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파견업종 범위부터 확대했다. 고용노동부와 관계부처가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고령노동자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방향부터 만들어야 했다. 오히려 55세 이상 고령자의 파견업종 확대가 전 연령대로 확대하기 위한 신호탄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조금만 문이 열리면 불법파견·위장도급 등 각종 꼼수가 양산돼 왔다. 파견업종은 2006년 26개에서 현재 32개까지 확대됐다. 이번에는 55세 이상 고령자에 한해 건설공사·선원·의료업무·제조업 직접생산 업무를 제외한 전체 업종으로 확대한 것이다. 불법파견·위장도급이 양성화될 수도 있다. 고령자 재취업을 높이겠다는 명분으로 일자리의 질과 노동시장 구조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파견업종 확대는 노동계가 꾸준히 반발해 왔던 문제다. 노사는 물론 노정 간에 협의해야 할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고령자의 파견업종 확대가 추후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이 횡행하는 제조업까지 확대될까 우려스럽다.

전 업종 파견허용으로 가는 징검다리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지금까지는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이 법으로 제한돼 왔다. 하지만 업종을 불문하고 고령자들을 파견직으로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결국 전 업종 파견허용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회생활을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열악한 일자리를 찾아다니기보다는 파견업체를 통해 장기계약 방식으로 취업하는 것이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확보에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파견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라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파견은 대표적인 불안정 일자리다.

고령자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진입할 수 있는 일자리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고령자도 청년도 안정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상태이지 않나. 고령자 파견확대가 시행되면 어른세대와 청년세대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 새 경제팀이 소득주도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가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그런데 진단에 따른 처방이 파견확대라면 방향이 틀렸다. 국민을 불안정한 일자리로 몰아넣는 방식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어렵다.

새 경제팀이 해야 할 일은 규제완화나 비정규직 확대가 아니다. 강력한 규제를 통해 재벌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과실을 재분배함으로써 사회적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다.

파견확대 입법 시도 사회적 갈등 부추길 것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박근혜 정부 2기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파견업종 확대와 같은 고용유연화 정책을 들고 나왔다. 정부는 고령자들의 고용을 지속시키겠다는 이유로 파견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정책은 세 가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파견업이 제한된 상태라 고령자 고용이 제한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파견이 질 좋은 일자리라기보다는 불안정 일자리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령자 정책 핵심으로 파견노동 확대를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특히 근로자 파견은 거의 대부분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파견은 일자리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사용자가 이중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야기한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사태에서도 위장도급·불법파견은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고령자 파견확대를 들고 나오는 것은 큰 문제다. 파견확대를 위한 정부의 입법 시도는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야당으로서는 관련법 개정에 동의할 수 없다. 고용유연화 정책이 지속되는 것을 야당으로서는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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