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살림과 희년함께ㆍ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공동 주최로 21일 오후 서울 명동 열매나눔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부채탕감 토론회에서 정종성 백석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올해 4월 117명의 악성채권 4억6천여만원어치를 사들여 없앴던 한국판 롤링 주빌리 운동(부채탕감운동)이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기독교 '희년운동'과 함께한다. 롤링 주빌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뒤 조직된 시민단체 ‘월가를 점령하라(OWS)’가 2012년 11월 미국에서 시작한 운동이다. 시민들에게서 67만7천552달러(7억1천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20배가 넘는 1천473만4천569달러(155억5천만원)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했다. 채권을 사들여 무상으로 소각하는 빚 탕감 운동이다. ‘주빌리’는 성서에서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을 뜻한다. 기독교에서 희년마다 빚을 탕감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확대되는 빚 탕감 프로젝트, 기독교 움직일까

1차 빚 탕감 운동을 주도했던 사단법인 희망살림 등이 이번에 소각하는 채권 2차분은 99명의 빚 9억9천여만원어치다. 2차분은 시민들의 모금과 대부업체의 장기연체채권 기부로 확보했다. 2차분 역시 장기연체 상태의 악성채권이다. 희망살림에 따르면 채권 소각대상 채무자 연령대는 90% 이상이 40대와 50대였다. 연체기간은 최단 7년, 최장 14년이나 됐다. 70%가 7년 연체 채무자였다.

2차분 채권은 21일 오후 서울 중구 열매나눔재단에서 열린 토론회에 앞서 모두 파쇄됐다. 파쇄 퍼포먼스는 확대된 2차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다. 1차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희망살림과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사단법인 희년함께·한국복음주의연합이 이날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로젝트 참여대상을 넓히겠다는 의지다. 토론회를 주최한 단체들은 앞으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지방자치단체와 국회까지 포괄해 부채탕감운동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독교 희년운동과 결합해 종교계의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다. 이날 오전 이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남기업 희년함께 부설 토지자유연구소장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과 교회라면 희년을 실천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소장은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러 오셨다고 직접 말씀하셨다”며 “희년에는 빚이 완전히 탕감되고, 원래의 자기 땅을 돌려받아서 토지의 평등한 분배를 실현하고, 노예가 해방됐는데 오늘날 희년실천 사항 1순위는 부채탕감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극심한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채무불이행자는 반희년적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라며 “채무불이행자들은 비토지소유자이고 실업자이거나 불완전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악성채권, 주인 바꿔 팔리는 노예문서”

발제를 맡은 제윤경 사회적기업 에듀머니 대표는 1차 빚 탕감 대상자 117명의 평균 채무액이 400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제 대표에 따르면 소각된 채권의 81%가 대부업체에서 10년 이상 연체 상태로 존재했다. 그는 “실제 카드사 등에서 연체가 시작돼 대부업체까지 매각이 반복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환위기 직후 발생한 빚으로 15년 이상 된 장기 채권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채무자들의 연령은 30대와 40대에 80% 가까이 집중돼 있고 특히 30대의 채권 비중이 37%나 됐다. 제 대표는 “채권 발생기간을 고려한다면 20대부터 빚이 발생해 15년간을 지속적인 추심에 내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부채 발생 사유가 무엇이든 20대부터 빚 독촉에 노출돼 있었다면 사회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악성채권에 대해 “마치 주인을 바꿔 가며 팔려 다니는 노예의 노예문서와 같다”고 비유했다. 최초 채권자인 은행은 3개월 이상 연체가 지속되는 채권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한 뒤 손실처리한다. 이어 원금의 10%가 안 되는 가격에 대부업체에 매각한다. 해당 채권은 대부업체를 떠돌며 몸집을 불리는데, 이러한 시스템을 ‘노예문서’로 표현한 것이다.

제 대표는 “채권 원금의 1% 미만에 팔리는 경우도 있어 1만원에 사들인 채권으로 1억원 가까이를 추심할 수도 있다”며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여긴다면 노예를 쫓는 ‘추노’ 같은 이야기가 채권시장에서 재현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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