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개노조. 얼마 전이었다. 자동차부품업체 노조간부가 상담하러 와서는 노조를 이렇게 불렀다. 금속노조 사업장이었다. 이 사업장에서 금속노조 조합원은 2년 전에 비해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조합원수 규모를 두고서 대의원대회·중앙위원회 등 금속노조 주요회의에서 기업지부 편제 논란까지 벌였던 이 사업장 노조조직은 이제는 지부란 간판조차 버거운 것이 돼 버렸다. 2년 전인 2012년 7월27일 하기휴가를 앞두고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대규모 용역경비를 투입하면서 이 사업장에서 기업노조가 설립되고 금속노조 지부는 무너졌다. 그 뒤 사용자는 각종 사업장 현안은 기업노조와의 협의를 통해서 해 왔다. 최근 기업노조가 합의해 준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앞두고 지부가 대자보 등으로 이를 비판하는 홍보를 했더니 사용자가 지부에 공문을 보냈다. 근로자를 대표하는 다수노조와 합의해서 시행하는 것이니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 노사관계에 좋지 않다 뭐 이런 공문이었다. 그동안 기업노조만 상대하고 지부에 대해서는 무시로 일관한 사용자가 지부에 공문까지 보냈다고 또 무슨 트집을 잡아 탄압을 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지부는 염려했다. 그것을 상담해 줘야 했던 나는 지부가 작성해 온 질의를 읽고 사무국장에게 질의를 들었다. 거기에는 ‘개노조’라고 쓰고 ‘개노조’라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노조’라고 읽었다가 이내 나는 기업노조라고 읽었다. ‘개노조’는 지부가 기업노조를 규정한 말이었다. 그건 자주노조·민주노조를 지향하는 노조가 그렇지 않은 노조를 규정짓는 말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말에서는 사람을 개로 부르면 욕설이다. 그러니 나도 그렇게 개노조를 들었다. 그런데 ‘개’는 어떤 사물 앞에 붙이면 진짜처럼 생겼으나 진짜가 되지 못하는 사물을 일컫는 말이다. 개양귀비·개꽃·개복숭아…. 또한 멍멍이노조. 어쩐지 낯설지 않은 말이다. 황견계약(黃犬契約, yellow dog contract),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것 또는 노동조합에서 탈퇴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근로계약을 말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더라도 노조활동을 하지 않는다든가 어용노조에의 가입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것도 황견계약으로 본다. 1930년대 이전 미국에서 기업노조가, 사측에 협조적인 기업노조가 이런 계약을 체결했다. 1932년 3월 노리스-라가디아법(Norris-La Guardia Act)을 제정해서 황견계약을 위법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러니 황견계약 등 사용자에 협조적인 노조를 황견노조, 즉 개노조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용어사용법일 수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인데(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4호 본문), 사용자에 자주적이지 못한 채 사용자에 협조적인 활동을 도모하는 단체는 노동법상으로는 노동조합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개노조는 사용자에 자주적이지 않은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고 정확히 규정짓는 말이다. 어디 기업노조만을 규정짓는 말이겠는가. 어떤 노조라도 자주적이지 못한 노조를 규정짓는 말이라고 우리는 읽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개노조는 그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노조를 모욕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노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법적 의미의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본다면 이 나라에서 노조는 얼마나 개가 아닐까.

2. 지난주 골치 아픈 버스사업장의 통상임금사건 재판이 있었다. 사측이 신청한 증인심문이 있었다. 사측 증인 한 명을 심문하고서 다음 증인을 심문할 차례인데 사측은 그대로 증인심문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서울버스노조의 이 버스사업장 지부장이 사측 증인으로 나올 차례여서 나는 준비한 그에 대한 반대심문사항을 펼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증인석에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지부장은 사측이 증인으로 신청하는데 동의해서 사전에 사측변호사를 만나서 증인심문사항을 정리해서 제출했을 텐데 마지막 순간에 맘이 변했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내후년이 정년이라서 올해 말 내년 초에 실시될 지부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잘할 수 있게 조합원들을 만나고 다닌다고, 그래서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원고들의 말을 듣고서도 나는 그가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했다. 많은 버스사업장에서 그렇듯이 이 사업장 지부장도 벌써 17년째 하고 있다. 몇 년 전 수원버스사업장 임금소송을 했을 때였다. 사업장 노조 위원장이 사측 증인으로 나와서 사측에 유리한 진술을 했다. 그 때문에 그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청구는 기각됐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수많은 노동사건을 수행하다 보니 이렇게 사용자편을 드는 노조도 보게 된다. 이런 노조야말로 개노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산별노조의 사업장지부여서 기업별노조가 아니라고 해도 개노조라고 불러야 한다. 사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용자편을 드는 노조를 그저 개노조라고 부른다는 것이 아깝다. 이것은 조합원·노동자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노조가 아니라고, 이런 노조 위원장, 지부장이 아니라고, 그러니 개노조는 아니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기업단위의 협소한 의식을 갖고서 자주적으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지 못하고 있는 노조 조직은 노조법이 정의한 노조로 취급될 수가 없다. 그러니 ‘개’를 붙여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이 나라에서 많은 노조들이 있다. 기업별노조든,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노조라도 사업장단위의 지부·지회·분회 등이 조직의 실체인 많은 노조들이 이 나라에서는 있다. 이런 노조들이 자주적으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지 못하고 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속할 수 있다고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지난해 12월18일 선고된 이후 진행되고 있는 2014년 임금·단체교섭에서 이 나라 노동조합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기상여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단기준을 따져서 논란 없이 인정된다면 주장하고, 그렇지 않다면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은 노조는 조합원의 근로조건의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그저 법상 최저기준인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을 조합원에게 적용해 달라고 사용자에 호소하는 노동조합일 뿐이다. 이미 노동자권리로 보장된 것을 사용자에게 보장해 달라고 하는 것이고, 그러니 기껏해야 사용자에게 법대로 지급하라고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주장이 아니라 권리를 확인해 달라는 협조요청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은 개노조라도 할 수 있다. 노조법상 노동조합이라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판시한 정기상여금 등 임금항목들에 관한 판단기준에 의할 때 이미 노동자권리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노동자권리로 확인되지 않은 것들을 노동자권리로 확보하기 위해서 주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노조법상 노동조합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경영사정 등 사용자의 눈치를 살펴 주장할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해서 자주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사업장을 넘어서 협력업체, 나아가 산업별 전체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 주장하고 교섭과 투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노조·지부는 더 이상 기업단위의 협소한 의식을 갖고서 자주적으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지 못하고 있는 노조 조직이 아니니 개노조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 이 나라에서 이런 개노조가 아닌 노조는 얼마나 될까.

3.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을 정의하고, 황견계약을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제도를 도입한 노동조합법이 1953년 제정됐으니 벌써 61년이 흘렀다. 이 제정 노동조합법에 관해 해설한 노동법교과서는 노동조합의 종류에서 기업별노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기업별노조는 경영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간섭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따라서 이것은 경영자에 대항하는 조직으로서의 본래의 노동조합이라고는 볼 수 없”고, “그래서 우리나라와 미국에 있어서는 이런 종류의 경영자의 간섭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해 이를 배제하는 법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필경 기업별조합은 과도적 형태 내지는 반동적 형태로서 설사 그것이 어용조합이 아닌 경우라 할지라도 그 기능은 현저하게 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 후, “우리나라와 같이 산업별조합의 조직화가 지연되고 있는 경우에는 산업별조합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기업별조합의 집합’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충분히 탈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심태식, 노동법, 신구문화사, 1959, 125~126면).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2014년 오늘 이 나라 노조는, 그 조직형태는 기업별노조와 산업별노조로 불리는 ‘기업별노조의 집합’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황견계약을 금지한 부당노동행위에도 개노조로부터 충분히 탈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오늘, 개노조는 특별한 노조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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