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 경영진의 지배력 독점과 남용을 막기 위해 금융권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신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나 정치권의 부적절한 간섭과 개입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제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경제연구소는 3일 ‘국민연금의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주주권 행사 효율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위경우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와 이상훈 변호사(법무법인 지향)·강운식 강원대 교수(경영학과)가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진은 “은행을 자회사로 둔 대부분의 금융지주회사는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아 대리인에 해당하는 최고경영진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독점하는 지배-소유 괴리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이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동일인이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이 10% 이내로 제한돼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4대 금융지주는 소액주주 지분이 높고 정부 혹은 기관투자자가 최대주주나 주요주주 지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예금보험공사가 1대 주주인 우리금융을 제외하고 신한·KB·하나금융에서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진은 경영진의 사적이익 추구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할 적임자로 국민연금을 지목했다.

여기에는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연구진은 “이사회가 적절한 경영감시와 견제기능을 수행해야 하지만 경영진이나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기대하는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진은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고 봤다. 관치라는 우려를 씻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에 의결권 행사는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통로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연구진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의결권행사 지침 명확화 △의결권행사 위원회 지배구조 개선 △기금운용공사(가칭)로의 기금운용본부 분리 같은 지배구조 개선만으로는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진은 해법으로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판단근거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주주질문권을 활용하라"고 제안했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행사 지침’을 개정해 주주질문권을 반드시 행사하게 하고 이에 대한 금융지주의 답변을 그대로 공개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 밖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국민연금의 위탁자산을 운용하는 운용사에게 의결권을 위임하거나 독립적인 전문기관의 주총 의안분석 보고서를 활용하도록 강제하고, 독립적인 인력풀을 활용한 이사후보를 추천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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