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인가?” 영화 <블랙딜>을 보고 쏟아 낸 한마디였다. ‘7개국 민영화 리얼 탐방기’라는 부재를 단 <블랙딜>은 민영화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한 일본·칠레·아르헨티나·영국·프랑스·독일의 사례를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빅파이, 한국 영화산업 나눠먹기> <한미FTA의 비밀과 거짓말> 등을 찍었던 이훈규 감독이 연출하고, 포크 뮤지션 정태춘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블랙딜>은 각국의 실태와 국내외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들려주며 묻는다. “여러분의 공공재는 어떻습니까?”

영화는 한국인의 아침을 비추며 시작된다. 전기·수도·가스 등 우리 삶 속에 공기처럼 스며 있는 공공재를 무심한 듯 짚던 카메라는 독일과 칠레 사람들을 동일한 시선으로 비춘다. 전기·수도·가스·통신·철도·방송·석유·금융·연금·교육·의료 등. 살면서 반드시 이용하게 되는 서비스들이지만 누가 어떻게 공급하는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1. 요금은 뛰고, 안전은 뒷전이고

지난해 말 수서발 KTX를 둘러싸고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일어났다. 정부는 적자와 부채를 이유로 민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수서발 KTX는 완전한 민영화가 아니라 독일식 지주회사 체제임을 강조했다. 과연 그런가. 카메라는 독일로 날아가 그 말을 확인해 본다. 일단 공영과 민영이 혼합된 독일의 철도서비스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수서발 KTX가 독일식 제도가 아니라는 것도 금세 확인된다. 독일헌법에는 철도회사의 최대 주주가 연방정부라는 것이 명시돼 있다. 철도회사 주식의 100%는 연방정부가 소유하고 있고, 지방철도의 25%만 민간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수서발 KTX의 주식지분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관에만 있을 뿐 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다. 언제든지 민간에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완전히 민영화된 영국은 어떠한가. 요금은 두 배로 오른 반면 서비스는 오히려 나빠졌다. 하지만 영국철도 관계자는 이를 부인한다. 철도 민영화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일본에서는 도쿄처럼 승객이 많은 지역의 철도회사는 엄청난 흑자를 내지만 홋카이도처럼 승객이 적은 지역의 회사는 심각한 적자로 인해 편수를 줄이거나 역을 폐쇄하고 있다. 역이 폐쇄되면 사람들도 떠나고 마을 공동체는 해체된다.

철도 민영화는 안전문제를 낳는다. 2005년 일본 열차의 탈선으로 50명이 사망하고 417명이 다치는 최악의 사고가 일어났다. ‘돈 버는 게 제일’이라는 사훈을 걸고, 다른 민간철도 회사들과 경쟁을 벌이던 회사에서 기관사는 연착시 받을 징계가 두려워 속도를 내다 사고를 냈다. 경쟁시스템은 경영자들을 잇단 자살로 내몰았다. 공공서비스에서 경쟁의 도입은 이용자와 운영자의 목숨을 앗아 갔지만 민영화를 추진하는 한국의 기획재정부 관료는 “나태를 막기 위해 경쟁이 필요하다”는 말을 뇌까린다. 그는 국민의 정부 때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는 교묘한 거짓말을 흘리며,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한 민영화를 추진하지는 않을 거라는 민망한 주장을 편다.

2. 지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80년대 군사정권에 의해 민영화가 추진됐던 칠레의 상황은 끔찍하다. 군사정권은 국민연금을 민영화했다. 민간연금 회사들은 경쟁을 위해 가입자 납부금의 60%를 광고비로 썼다. 수십 년 후 가입자들에게는 쥐꼬리만 한 연금이 돌아갔다. 당시 국민연금을 고수했던 군인들은 퇴역 후 높은 연금을 받는다. 교육도 모두 민영화돼 칠레의 대학생들은 높은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노인과 학생들은 거리로 나서 시위에 동참한다.

아르헨티나는 민영화의 막장을 보여 준다. 아르헨티나는 모든 분야를 민간에 팔아넘겼다. 그 결과 어느 지역은 5일 동안이나 단전이 돼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철도는 일본에서 폐차 직전의 전동차를 들여와 청소도 없이 운영 중이다. 전동차가 사람들을 콩나물시루처럼 싣고 문도 닫지 않은 채 달리는 모습은 실로 아찔하다. 2012년에는 51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 뒤 3일 동안 실종됐다가 객차 안에서 발견된 청년의 어머니는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후 같은 역에서 사고가 났지만 정부는 그 역에 진입시 서행하라는 법 조항을 넣는 것 외에는 아무 조치도 하지 못했다. 국영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과정에는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거나 뇌물이 오가는 온갖 부정부패가 개입한다. 이것을 ‘블랙딜’이라 부른다. 혹자는 말한다. “권력은 비즈니스”라고.

3. 어서 와. 물 민영화는 처음이지?

가장 기막힌 어록의 소유자는 프랑스 물 기업 수에즈사의 전 CEO다. 그는 “물은 공짜가 아니며 아낄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프랑스 그르노블시의 수도사업을 맡았던 수에즈사는 4년 후 요금을 30%나 올렸다. 수에즈사는 서비스를 개선한 대가였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후 수에즈사가 시장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밝혀져 CEO는 감옥에 갔다 왔다.

아직도 그는 음해라고 주장한다. 그는 현실에서 부정부패는 감기처럼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의 예를 보더라도 부정부패는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책에 쓸 정도로 확신범이다. 맞다. 부정부패와 자본주의적 발전은 모순되지 않는다. 둘 다 평범한 사람들의 고혈을 짜는 데 있어 파트너십을 발휘한다.

2015년 대구에서 열리는 제7차 세계물포럼에 앞서 올해 경주에서 열린 준비총회에는 수에즈사의 전 아르헨티나 지사장이 방문했다. 수에즈사는 9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사업을 맡았다가 2006년 수도사업이 재공영화되면서 철수했다. 그는 한국의 민간 상수도사업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지난해 프랑스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비공개 연설에서 물 문제 해결과 공공서비스 부문 개방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준비총회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는 코오롱워터앤에너지도 참여했다. 지금 상장을 준비 중이다. 물 민영화는 이명박 정권 시절에 추진되려 했는데 오랫동안 코오롱에 몸담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은 한 저축은행으로부터 알짜 공기업을 인수하게 해 달라는 청탁을 받기도 했다.

지금 전 세계에서는 공공재를 민영화하려는 블랙딜이 진행 중이다. 한편에서는 민영화의 폐해를 겪고 재공영화를 추진하거나 민영화를 막는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너무 많은 것들이 민영화돼 돌이킬 수 없다고 느끼는 칠레의 젊은이는 한국인들에게 대자보를 써서 보여 준다.

“민영화를 저지하십시오. 민영화로 얻는 것은 사회적 불평등뿐입니다.”

철도·수도·공항·건강보험 등의 민영화가 몰려온다. 이제 우리가 화답할 때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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