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 모든 사회의 화두는 ‘안전(安全)’이다. 6·4 지방선거의 후보들의 핵심 공약들도 안전을 가장 우선 내걸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설립 등 야단법석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통령이 “규제는 암 덩어리다”는 말 한마디에 부처 공무원들은 앞다퉈 ‘규제완화’ 건의안을 올렸는데 이제는 ‘규제강화’ 건의안을 올리려고 또 부산스럽다. 공무원들이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각종 검사 및 인증 권한 등 여기에 자신들의 일자리 보장 틈새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관피아’ 현상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대기업들도 안전 예산을 대폭 늘리고 홍보 캠페인과 안전 매뉴얼을 만드는 부산함을 보이고 있다. 학자들도 이구동성으로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대한민국은 분명 달라져야 한다”고 성토하고 있다.

현장에서 안전·보건업무를 15년 가까이 하고 있는 필자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법과 제도를 강화하면 재해는 줄어들 것이다”는 여전히 새마을운동 시절 사고방식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대로 4월16일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 안전사고들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지하철에서, 건설현장에서, 요양원에서, 국가산단에서 대형 안전사고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제 국민은 외출할 때는 ‘소화기·구급약·산소마스크·탈출용 로프’를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할 상황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제 산업현장의 안전이 사회적 안전문제로 확대돼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어떠한 강력한 법을 만든다고 해도 기업들은 이리저리 교묘히 빠져나간다. “더 많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 때문이다. 이 마귀 같은 자본의 속성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해결이 된다. 한정된 공무원들이 휴일도 없이 산업현장을 찾아다니며 안전사고 예방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로 지목되고 있는 유병언 회장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노동계는 그동안 각종 안전사고 등 현안들이 있을 때마다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고 외쳤다. 그때마다 정부와 법원은 “원청업체가 아닌 근로자가 소속된 하청업체 책임이다”고 대기업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가 실소유주 유병언 회장의 책임이라면 두 달도 안 돼 무려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산재사고들은 실재 소유주인 정몽준 회장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철옹성이다. 정몽준 후보는 “이제 본인이 1천만 서울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선거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지금 여기저기서 안전을 외치다 보니 사업장에서는 노동자 감시 인원을 대폭 늘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모든 안전사고는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이다”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 사회에 만연한 각종 재난이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 예방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이 정말 무서워하는 것은 강력한 법이 아니라 소비자인 시민과 노동자들의 ‘민원’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모든 사업장에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생활안전협의체’를 구성하도록 강제해야 하며 임금 및 근로시간 등 몇몇 조항만 있는 근로기준법도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보장·내부고발자 보호·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협의체 설치’를 보장토록 해야 한다. 산업현장 구석구석 위험 요소를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의 의견들이 기업의 오너에게 수렴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전문가들과 노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군사 작전하듯 해서는 안 되며 충분한 중장기적 계획 속에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결과만 중시하는 ‘성과주의’ 문화로는 결코 재해를 예방할 수 없다. 안전은 곧 과정이다. 안전조치를 취하면서 작업을 하다 보면 당연히 결과는 늦을 수밖에 없다. “더 빨리”가 아닌 “더 안전하게”가 돼야 한다. 지금 전국의 안전 전문가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사고만 나면 안전담당자의 책임으로 전가되므로 하나둘씩 현장을 떠나고 있고 비정규직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노동의 위기가 곧 사회 안전의 위기인 것이다. 지속적인 재해예방 사업은 현장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만 묻는다면 세월호 선장처럼 위급시 인명 구호보다는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정부 및 산하기관에서 연일 안전대책 운운하지만 아직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요청하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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