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길 역사연구가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역사가 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전혀 새로운 역사의 출발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 그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과거와 밝은 미래를 동시에 보여 줬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세월호 참사는 온갖 비리와 부패, 무능과 무책임이 뒤범벅돼 일어난 사건이다. 필자의 지인은 얼마 전 진도 팽목항에 가서 5일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왔다. 그가 현장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은 위만 아니라 아래 부분까지 푹푹 썩어 있는 국가 기구의 역겨운 모습이었다. 그가 본 것은 사람 목숨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오직 돈, 돈, 돈 하며 돈에 미쳐 돌아갔던 우리 사회의 구질구질한 민낯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기성세대의 야비하면서도 무책임한 모습이었다.

그 정반대에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여 준 희생자들이 있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구명조끼를 서로 양보하고 선생님들을 걱정하면서 문자 메시지로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던 아이들. 그 와중에서 아이들은 아기 생명을 먼저 구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았던 경우는 교사들이었다. 교사들의 숙소는 5층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갑판으로 나와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교사들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모두 3·4층이었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갔다 끝내 생을 마감한 것이다. 학비 마련을 위해 매점 알바를 하는 처지이면서도 “선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거야. 너희들 다 구하고 나갈 거야”라며 놀라운 희생정신을 발휘했던 박지영.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한다며 부인의 애타는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았던 사무장 양대홍.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아이들과 교사, 일부 선원들은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아니 비리와 부패 무능과 무책임으로 얼룩진 인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다. 세월호 참사로 빚어진 희생은 명백한 타살이요 학살이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참으로 끔찍한 비극인 것은 어두운 과거가 밝은 미래를 죽인 사건이라는 데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과거에 의한 미래 죽이기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단적으로 기성세대가 산업화 성공의 과실은 자신들이 누리면서 외환위기로 인한 실패의 후과는 젊은 세대에게 떠넘겨 오지 않았던가. 젊은 세대가 흘러 들어간 곳은 주로 비정규직이었으며 20대의 절반 이상이 실업자 상태에 머물렀던 것은 그 대표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의 편제를 좌우했던 부동산 시장도 소유주인 기성세대가 실수요자인 젊은 세대를 구조적으로 약탈하는 무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이 같은 관행을 더 이상 지속하지 말라는 주문을 사회 전체에 던진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으로써 극도로 둔감해 있는 이 사회를 두들겨 깨운 것이다. 바로 여기에 세월호 참사가 새로운 역사의 출발선이 될 수 있는 결정적 실마리가 숨어 있다.

과거에 의한 미래 죽이기 관행을 끊어 낼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뿐이다. 우리 사회 한복판에서 실권을 행사해 온 5060세대는 바통을 젊은 세대에게 넘겨야 한다. 그리고는 인생 2막 개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자연친화적이면서 공동체 지향적인 삶을 개척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진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5060세대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만끽함으로써 한층 젊어질 수 있다. 반면 앞으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젊은 세대는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과 시스템, 발전전략을 마련하고 그에 맞게 스스로를 준비시키고자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전면적 세대교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과 사회운영의 틀 모두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어두운 과거를 걷어 내고 밝은 미래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혈기 왕성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늙은 국가로 전락하며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구하는 길이다. 동시에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세월호 참사는 거듭 경고한다. 서둘러 낡은 관행을 깨고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라! 과거의 틀 안에 갇혀 있으면 죄악이다!

과연 진보는 여기에 어떤 모습으로 응답하고 있는가.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요구는 기본이다. 세월호 유족들의 절실한 외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진보는 이 시점에서 누가 들어도 귀가 솔깃한 한국 사회의 비전을 말하고 있는가.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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