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오늘로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7일째다. 지금 세월호 참사의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 와 있다. 진도읍에서 팽목항에 이르는 길가의 나무들에는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그러나 무사귀환의 염원은 100% 좌절됐다. 스스로 탈출해 생명을 구한 사람들을 제하고 구조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대신에 시신이라도 찾는 것이 피해자 가족들의 염원이 됐다. 그러나 그 마지막 염원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도 체육관에는 아직 시신을 못 찾은 16명의 실종학생의 학부모들이 자식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 큰 바다를 세 개씩 건너서 외국을 다녀왔다. 우리나라와 공식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 쿠바에 노동절 행사 손님으로 초대받아서다. 떠나기 전에 우리나라는 온통 슬픔의 도가니였다. 그런 슬픔을 불온하게 바라보는 이른바 사회지도층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민은 하루에도 여러 번 눈시울을 적셨다. 그 시점에 우리 민중의 정서는 무사귀환 염원이 100% 묵살되고 아이들이 하나씩 싸늘한 시신이 돼 돌아오는 데서 오는, 가눌 수 없는 슬픔을 겪었다. 사람들은 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겼고, 분향소에서는 사망자와 실종자 등 피해 학생들의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하는 의미에서 '근조' 리본을 나눠 줬다. 쿠바에서도 그 리본을 달고 다녔다. 팽목항에는 지금도 그때 내걸었던 “진도군민은 피해자와 슬픔을 함께하겠습니다”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5월 하순이 가까워서 돌아와 보니 우리 민중들의 정서는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슬픔에만 잠겨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안산 이외의 곳에서도 사람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촛불을 들고 있었다. 사회지도층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범인임을 깨닫고서, 또 우리 민중들이 부조리한 현실을 방관 또는 방조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고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아가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행동하고 있었다. 투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그들의 친구인 고등학생들이 이런 움직임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이었다. 안산의 고등학생들은 5월9일 대규모로 추모집회를 열었고, 같은날 학부모들은 청와대로 항의방문을 갔다.

그러면서 대중의 요구가 정리돼 갔다. 기존의 민주·진보 운동권에서는 신자유주의 철회와 박근혜 퇴진이 전면에 제기됐다. 그러나 희생자 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최우선의 요구로 제기했다. 왜 배가 그처럼 순식간에 침몰하게 됐는지 그 원인을, 왜 그렇게 철저하게 구조가 방기됐는지 그 이유를, 정부는 왜 그와 같이 집요하게 진상을 감추려고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입을 가로막으려고 했는지 그 흑막을 밝히고자 했다. 그런 진상규명이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의 전제조건이라고 정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국회를 찾아가 조속한 국정조사를 촉구했고, 거리로 나서 진상규명 촉구 1천만명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신자유주의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중지시키는 것도 필요하고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엄청난 참사가 어떻게 일어났고, 왜 일어났고, 왜 그렇게 은폐·조작 일변도로 처리돼 왔는지, 그 진상을 올바로 밝히지 않고서 “누가 책임져라”, “무엇이 대책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도 민주·진보 운동권은 원인과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 결과 그와 아주 똑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참혹한 세월호 사태를 맞아하게 됐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도 민주·진보 운동권에는 이른바 ‘좌초설’이 지배했고, 사건의 책임을 오로지 이명박 정권에게 물으려 했다. 미군 지휘 아래 키 리졸브, 독수리 훈련이 진행되던 와중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그랬다. 좌초가 아니라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의 흔적이 명백하고, 스크루에 폭발의 흔적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모두 묵살됐다. 그 결과 정권이 만들어 낸 ‘북한 어뢰설’이 정설로 관철됐다. 심지어 야권 대선후보 문재인도 어뢰설을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니 검은 세력들이 거리낌없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가 얘기했듯이 이것이 단순한 교통사고인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모든 사실이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상호 기자는 이미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구조된 정체불명의 인물(오랜지 맨)의 존재를 폭로했다. 그러면 정체불명의 잠수함의 존재와 그 역할은 무엇이며, 세월호 선미의 폭파 흔적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보고를 받았다는 국가정보원의 역할은 무엇이고, 의문투성이의 인물인 유병언의 역할은 무엇이며, 미국은 이 참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런 ‘결정적’ 의혹을 밝히는 일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자라면 단연코 회피할 수 없는 임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