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

2009년 1월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됐고 이때부터 여객선 운용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청해진해운은 18년이나 운행한 고물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운항할 수 있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 선령 규제를 완화하면 연간 200억원의 기업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4년 4월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9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고, 차량 200여대를 포함해 1천여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다는 6천800톤급의 거대한 여객선이 한순간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배는 침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말 그대로 믿기 어렵다. 탑승객 476명 중 36%인 174명만 생존한 것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에 나섰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가운데 75명만 구조됐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고원인을 놓고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20년이나 된 낡은 배에다 승객과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무리한 구조변경을 했고 관계당국은 이를 허가했다. 인천과 제주도를 왕래하는 노선을 독점한 해운사는 상대적으로 수입이 높은 화물 운송을 많이 하기 위해 거의 모든 출항 때마다 적정 규모의 몇 배에 해당하는 과적을 했고, 사고 당시에도 네 배 정도의 화물을 더 실었다고 한다. 화물을 많이 싣다 보니 배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평형수의 양을 줄이는 것이 일상화된 상태였다고 하니 이 배는 언젠가는 터질 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험한 바닷길을 지나는 순간 배를 지휘한 사람은 경력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신참 항해사였다. 낡은 배·무리한 과적·험한 바닷길·초보 운전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비극은 벌어졌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마치 대한민국호의 축소판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효율과 경제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자본가의 최대 이윤 추구가 지배하는 사회, 모든 것은 돈의 논리 앞에서 무력하다. 기업이 잘되는 나라를 구호로 내세운 대통령도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별로 다르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돈벌이 앞에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의 비극 속에 감춰진 또 하나의 사고원인은 바로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공공성의 훼손이다.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통해 훼손된 공공성의 가치는 해난구조 전문가가 없는 해경과 외주화 탓에 재난 초기에 수많은 인명을 구할 기회마저 봉쇄해 버렸다. 선박과 운항에 대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국가는 그 모든 권한을 자본가의 손에 넘겨 버렸다.

비단 세월호 참사를 초래한 해양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국가 기능의 상당 부분을 국가 스스로 포기했다. 국가 정책을 수행하는 공기업 민영화는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단골 메뉴다. 국민은 민영화가 더 좋은 서비스와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라는 정권과 자본의 달콤한 유혹에 무방비로 세뇌됐다. 의료·전력·수도·가스·철도·도로 등 지금까지는 국가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는 핵심 공공서비스를 노리는 자본은 정부에게 계속 민영화를 요구한다. 전문가를 빙자한 일부 학자들은 시장 논리를 설파하고 정부는 이를 내세워 민영화의 길을 하나씩 닦고 있다.

편법을 동원해 회사를 세웠다 없앴다 하기를 반복하며 교묘히 자신의 재산을 늘려 온 세월호의 실제 선주는 의당 자신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 사람에게 30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을 잃게 한 죗값을 제대로 물을 수 있을까. 이 사람에게 죄를 묻는다면 불법 탈법적으로 기업체를 운영하며 사욕을 채운 배임죄와 조세포탈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세월호의 실제 선주는 이 시대 사업가, 아니 자본가의 전형적인 나쁜 모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재벌·자본가들 중에서 이 자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전체 국부의 80%를 10%도 안 되는 사람들이 움켜쥔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그는 모든 자본가의 전형이 아닐까. 국가야 망가지든 말든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위정자들, 승객을 버리고 속옷 차림으로 도망친 선장, 그리고 사욕을 채운 세월호의 실질적인 선주, 모두가 같은 선상에 서 있다고 본다.

세월호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자면 국가와 우리 사회를 바꿔 내야 한다. 해경 해체나 국가안전처 신설 따위의 책임 떠넘기기 식 모면책이 아니라 진정한 개조가 필요하다. 부당한 이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관피아·정피아란 신조어로 탄생한 공무원과 정치인집단의 회전문식 이권다툼 인사도 뿌리 뽑아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하는 기능은 이권에 눈이 먼 장사꾼들에게 절대로 내놓지 않는 법과 제도,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그 첫걸음은 자본의 손에 넘겨진 국가와 우리 사회의 통제권을 되찾는 것이며, 국민생활과 안전, 공공복지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부문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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