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지난 28일 전남 장성 노인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2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6분 만에 불은 진화됐지만 사상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학생들이 죽어 갔는데 이번에는 어르신들이 졸지에 변을 당했습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어린이·여성·노약자들이듯이 위험사회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의 속절없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는 전쟁상태와 다를 바 없는 난리통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의 탐욕과 결탁한 부패한 권력이 벌이는 전쟁 말입니다.

전관예우 법관들이 ‘법률시장에서 정의를 거래’할 때 정의를 살 돈이 없는 약자들은 죽어 갔습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가 죽음으로 항거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오늘날 유서 한 장 쓸 힘도 없이 죽어 간 쌍용자동차의 비극과 한진중공업의 젊은 노동자 최강서 열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배상금 판결문을 들고 고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해도 이자조차 갚을 수 없다면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 자식을 두고 먼저 죽는 불효를 알지만 또 다른 불효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은 불효자가 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발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은 단언컨대 죽어서야 비로소 채무가 해소되는 ‘법살’입니다.

효실천 사랑나눔 요양병원. 긴 이름을 가진 병원이지만 정작 가족을 대신해 효를 실천하고 사랑을 나눌 병동의 보건의료 노동자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간호조무사 고 김귀남님은 28일 새벽 화재가 발생하자 자신이 돌보던 환자들에게 마지막 사랑을 실천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병동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유독연기에 질식해 쓰러진 그의 손에는 소화기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과 중증환자들을 위한 요양병원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2년 54개였던 전국의 요양병원은 올해 4월 말 현재 1천284개로 12년 만에 20배 넘게 늘었고, 해마다 100개 이상씩 생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환자도, 병상도 늘어났지만 그들을 돌봐야 할 보건의료 노동자수는 제자리걸음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환자 대비 간호인력 비율을 법률로 정하는 가칭 병원인력법 제정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보건의료 노동자들로 인해 병원도 매일이 전쟁터나 다름없습니다. 복도에 늘어선 환자들을 보면서 간호사들은 어떻게든 대기환자수를 빨리 줄이는 것이 주요 업무가 돼 버렸습니다. 환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생산성’이 떨어지니까요.

우리나라 환자 대비 간호인력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여성들이 많은 병원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보건휴가나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도 눈치껏 해야 합니다.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노동자들이 스스로도 건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건의료노조가 선진국과 같이 병원인력을 법으로 규정하자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유명한 스웨덴 복지국가모델은 지금도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페르 알빈 한손 총리로부터 구체화됐습니다. 1932년 노동자 출신 한손이 이끄는 사민당이 내건 공약은 ‘인민의 가정(folkhemmet)’이었습니다. 가정 내에서는 그 누구도 편애하거나 차별받지 않으며, 서로를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국가는 인민의 가정이 될 것이라는 그들의 약속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손의 의문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개인 문제로 돌리는가. 누구나 아프고 병이 드는데 약이 없어 죽는 사회가 야만적인가, 돈이 없어서 죽는 사회가 야만적인가. 요람에서 무덤까지에서 생략된 말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민영화는 효도를 상품화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효의 사회화입니다. 진정으로 효를 실천하고 사랑을 나누려면 정의를 사고팔지 말고 의료를 상품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고 김귀남님의 딸은 “야근으로 아침에 녹초가 돼 퇴근하시던”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못해 보고 생이별하게 됐다고 오열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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