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기억은 머리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때로는 뼈에 새기고 심장에 새긴다. 그래야 다시는 아픈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그 아픔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밤마다 팽목항에서 실종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가족들의 아픔이 우리에게는 벌써 희미해져 가는 것 아닐까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노란 리본을 달고 추모집회를 한다. 그렇게 해서 왜곡돼 왔던 우리 사회의 방향타를 조금씩이라도 돌리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제대로 기억되지 않은 이름들이 있다. 잊히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지 않았던 이름들, 제대로 불리지 않았던 이름들이다. 바로 세월호에 탑승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고 세월호에 탑승해서 식당 배식을 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 군대에 가기 전에 용돈과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노동자, 그리고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지만 생계 때문에 가명으로 입사해 주방에서 보조일을 했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이 노동자들은 살아서는 그저 ‘알바’였고, 죽어서도 차별을 받았다. 청해진해운은 승무원들에게는 장례비를 지급했으나 이 노동자들에게는 장례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정식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결국 인천시가 지급보증을 해서 간신히 장례를 치렀다. 정부는 이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겠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살아서 서러웠던 이들은 죽어서도 서러웠다.

죽음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우주의 크기는 모두가 무한대다. 어떤 죽음이든 슬프지 않은 죽음이란 없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단원고 학생들에게 위험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듯이, 선박직원이 아닌 승무원, 특히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권리도 전해지지 않았다. 선박직원들이 탈출한 그 배에서 승무원들과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책임감을 갖고 다른 이들을 구하고자 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애를 쓴 이들은 죽어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원래 죽음이란 참 불공평한 것이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지만, 그 사고가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게 벌어졌을 때에는 종종 참사가 된다. 최근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용역 하청노동자들이고, 유해화학물질이 누출되거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이들도 집값 싼 곳에 살아야 했던 노동자들이나 가난한 농민·어민들이다. 죽음과 피해를 당하는 과정도 불공평하지만 사고 수습과정도 불공평하다. 이러한 참사는 대부분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에 의해 벌어진다. 이런 문제는 수습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통제하고 보상을 줄이려는 정부와 기업에 대항해 권리를 찾기에는 이 희생자들이나 피해자 개인들은 너무나 약하다.

희생자인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소수였고 승무원으로서도 승객으로서도 인정받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이 희생자의 가족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감추고, 목소리 듣기를 거부하고, 기업은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슬픔과 고통은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모두의 고통이다. 가장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고, 죽어서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이들,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지만 결코 사회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들이다.

우리가 세월호에서 죽음을 당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더 많은 위험에 놓여 있고, 더 쉽게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기업과 정부에 의해 삶과 죽음 모두에서 차별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단원고 학생들과 더불어 ‘모든 희생자들’에게 차별 없는 애도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죽어간 세월호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마음으로 ‘삶과 죽음 모두에서 차별을 중단하라’고 정부와 기업에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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