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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김은복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인천본부 노동상담소)

지난 19일 아침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음성이라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듣기가 힘들었습니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던 중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하다 스스로 희생된 분들을 호명하던 때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지 못했는데, 울먹이는 목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이 고정됐습니다. 그런데 눈을 깜빡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부릅뜬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영령들을 호명하더니 급기야 눈물을 흘렸고 잠시 후 다시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대통령을 싫어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나로서는 (저 양반이 눈물 흘리려고) ‘참 고생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인으로부터 다른 의견도 들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흘린 눈물 같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다시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부릅뜬 눈, 이후에 흘린 눈물. 그러고 보니 그렇게도 보였습니다.

담화문을 찾아 읽어 봤습니다. 해양경찰을 해체하겠다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과연 해경 해체가 급선무일까, 해경 해체에 다른 뜻이 숨어 있지 않을까 의심부터 들었습니다. 안전행정부·국가안전처·해양수산부에 대한 조직개편도 말했습니다. 민관유착과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는 말, 공무원 채용부터 퇴직까지 바꿔 보겠다는 말,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주면서 사익을 챙긴 기업의 문을 닫게 하겠다는 말, 그리고 심각한 인명피해 사고를 야기하거나, 먹을거리를 갖고 장난쳐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는 엄중한 형벌이 부과되도록 형법 개정안을 내놓겠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먹을거리로 장난친다는 말에 다시 시선이 꽂혔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한 토론회에서 4대 사회악이 있다고 말해 놓고 가정폭력·성폭력·학교폭력을 먼저 말한 뒤 잠시 주춤하다가 뱉은 또 하나의 사회악은 불량식품이었습니다. 당시 토론회 방송을 보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비롯된 대국민 담화에서도 사회악 불량식품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담으시다니 ‘참으로 대단하고 지독하신 양반이다’ 싶었습니다. 불량식품 척결의지가 그리 높으시다면 먹을거리를 불량하게 만드는 거대 유통자본의 횡포에 대한 규제강화, 수입 농수축산물 규제강화를 생각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보의 입에서 출발한 4대 사회악.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4대 사회악을 척결하는 포돌이 그림을 보면서, 심지어 내가 즐겨 먹는 소주병에까지 4대 사회악 척결 구호가 있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찬란하도록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회악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그러려니 생각해 봅니다. 동시에 그 담화문에서까지 은근슬쩍 불량식품 척결의지를 밝힌 것을 보면서 세월호 참사에서 내가 분노하고 있는 4대 악,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척결돼야 할 조작·은폐·남 탓·무책임이라는 4대 악부터 척결되는 것이 맞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조작하지도 말고 은폐하지도 말고 투명하게 조사해서 전부 공개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인력과 예산과 훈련이 부족했다며, 남의 일 말하듯이 구조실패의 원인을 거론할 뿐 진상조사 의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또 남 탓하지 말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하실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내가 만약 저 입장이라면 어떻게 말했어야 했나, 어떤 말로 책임져야 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말보다는 실천이겠지만, 책임 있는 어떤 말이 필요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대통령의 입으로 돈보다 생명을, 효율보다 안전과 건강을 우선시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명운을 걸겠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치를 담은 말은 없었습니다. 규제완화를 중단하고 민영화를 중단하고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고 말했다면 대통령의 눈물을 달리 봤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없었습니다. 규제완화·민영화는 계속 추진하겠다는 말로 이해됐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대통령이 간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투명한 진상조사를 약속하고, 돈보다 생명을, 효율보다 안전과 건강을 말하면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중단하겠다,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고 말했다면,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대통령이더라도 아마 담화문을 발표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름 최선을 다해 책임지는 모습, 진정한 눈물이었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김은복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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