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불야성을 이루던 테헤란벨리에도 어둠이 찾아온다. '97년 외환위기로 시작된 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벤처기업들에게도 지난해 말부터 다시 시작된 경제위기의 파고는 높다. 지금 닷컴기업들은위기극복을 위한 인력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기업들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논리에 맞춰 인력구조조정을 위기상황극복을 위한 방법으로 선택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노동력의 변화 가능성과 적응력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 기업들은 경기의 변화에 따라 기업의 인력규모 조정이 용이해 지고, 노동자 역시 자신이 원하는 직종이나 직장으로 이동이 자유로워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사회적 상황이 성숙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력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성숙된 상황의 대표적인 것이 이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최근많이 변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이직이란 자신의 커리어를쌓기보다는 조직에 적응하기 못하거나 불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은 한 유연한 노동시장이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불충분한 실업수당 등 경제적 측면의 어려움도 노동시장 유연화 실현을어렵게 하는 요소다. 실업기간의 생계유지를 위한 실업수당 규모나 지급기간 등이 서유럽에 비해 열악한 것은 물론이고, 제도적으로 유사한 미국 일본 등에 비해서도 그 수혜율이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또한 실업기간에는 의료보험료의 회사 지원분까지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등 급여 감소 이외의 부담 증가도 마찬가지다.

서구국가와는 달리 자신의 업적과 성과를 평가한 연봉제 정착보다는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상황, 개인의 능력개발이나 커리어 향상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보다는 조직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해야하는 상황 역시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렇듯 유연한 노동시장을 위한 사회환경이 성숙되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서 인력구조조정이 위기극복의 일차적인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인력구조조정이 위기극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런상황은 단지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장마지막 수단이어야만 한다.

데이콤 권명진 stoneax5@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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