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정부는 청년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한참 뜸을 들인 결과였다. 각종 언론보도와 논평이 뒤이었다. 비판적 입장의 평가들은 정부 정책에 고학력 대졸실업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음을 주되게 지적했다. 예정대로였다면 본 칼럼 또한 청년구직자의 시각에서 정부의 발표를 평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무엇이라 말할 수도 쓸 수도 없게 됐다.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다. 지금의 상황에 말을 더하고 싶지 않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일상의 무기력함과 생의 무의미함에 압도되고 있다. 청년의 노동과 일자리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렇게 부질없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생명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당장의 일자리가 대수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세상에 어떤 큰일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해야 할 일을 이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자리를 지키는 게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조차 혼란스럽기만 하다.

"출산율은 개뿔! 있는 애들이나 죽이지 말자."

누군가의 말이다.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와 세월호 침몰 사고. 정말 이상하다. 죄 없는 젊은 사람들이 계속 죽어 간다.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선박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은 승객들을 남겨 둔 채 도망을 가고, 재난발생에 긴급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해 국민의 생명을 구해야 할 정부는 스스로의 무능력함만을 증명하고 있다. 언론들은 속보 경쟁에 매몰돼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내놓았다. 정체불명의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언설로 한마디씩을 보탠다. SNS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음모론이 합리적 의심의 탈을 쓰고 퍼져 나간다.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종북좌파가 숨어들어 선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것까지…. 지금 한국 사회는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면 할수록 더 진실에서 멀어진다.

사고 발생 후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이들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간절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절박함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사람들은 예정된 절망 앞에 마지막 촛불을 밝히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기도가 끝나는 순간, 갈 길을 잃은 분노는 어디를 향하게 될까. 어쨌든 사건이 종료되면 선장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것이고,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사건은 그렇게 멈추고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은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가 만들어 온 사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이 고장 난 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한 사람도 이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모여 실종자들의 구조를 위해 마음과 힘을 모으는 일이다. 그것이 실종자 가족들의 호소에 응답하는 일이다.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앞에 놓인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모든 실종자들이 무사귀환하길 기원한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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