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노동시장에도 신호등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고용정보는 구직자들을 취업의 절벽으로 인도할 수 있어요. 구직자들을 취업의 탄탄대로로 안내하려면 정확하고 신속한 고용정보가 필수적이죠. 한국고용정보원이 인력의 수요와 공급의 원활한 소통을 책임지는 ‘노동시장 신호등’이 되려는 이유입니다.”

유길상(61·사진) 한국고용정보원 원장의 말이다. 올해로 창립 8주년을 맞은 고용정보원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제2 개원 및 비전선포식’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고용정보의 수집·분석·제공 기능을 강화해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 국가고용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고용정보원에서 유길상 원장을 만났다.

"열정 잃은 직원들 보며 조직혁신 결심"

- 지난해 12월 원장에 취임했다. 어떻게 지냈나.

“취임 전날 저녁 처음으로 고용정보원을 찾았다. 2014년 업무보고를 듣기 위해서다. 그런데 보고를 들으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고용정보원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사업들이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라면 1년을 허송세월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평소에 고민하던 바를 담아 ‘한국고용정보원의 새로운 비전과 경영혁신방안’을 문서로 정리했다. 그런 뒤 고용정보원에 전화를 걸어 ‘내일 취임식에 최대한 많은 직원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예정대로 취임식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혁신방안에 대한 토론과 공론화를 주문했다.”

- 조직혁신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원인이 얽혀 있었다. 특히 심각하다고 본 대목은 조직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였다. 고용정보원이 한때 정부출연연구기관처럼 운영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연구기관인지 고용정보원이지 모르겠다는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가 많았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고용정책 기본법은 고용정보원의 주요 사업으로 △고용정보의 수집·제공과 직업에 관한 조사·연구 △직업지도·직업심리검사·직업상담에 관한 기법의 연구·개발·보급 △고용서비스의 평가와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고용정보원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사업들이 눈에 띄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고용정보의 질이 낮고, 온라인 서비스의 경우 정보를 이용하는 고객인 기업과 노동자들이 고용정보를 활용하기 어렵게 구성돼 있었다.

조직 내부 문제도 심각했다. 그동안 인사나 승진·채용이 불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직원들의 불만이 컸다. 하지만 정작 불만을 토로하면 ‘찍힌다’는 정서가 팽배했다. 실제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끼는 직원이 수두룩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는 어렵다. 조직에 실망하고 떠나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열정과 헌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 새 원장의 파격행보에 직원들이 거부감을 보였을 법도 한데.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만이 조직혁신이 가능하다. 직원들과 함께 경영혁신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노조 위원장이 논의에 동참하고, 고용정보원을 거쳐간 전 직원들과 선임 기관장, 고용노동부와 학계·언론 관계자들이 조직혁신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이어 직원 설문조사와 아홉 차례에 걸친 직원 간담회를 거쳐 조직개편안을 만들고, 보직자와 직급자 대상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했다.

직원들의 불만이 높았던 인사시스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1월 정기인사 때는 매칭 인사시스템을 도입했다. 직원과 보직자가 서로 함께 일하고 싶은 팀과 팀원을 적어 내도록 해서 만족도를 높였다.”

"핵심과제는 신속하고 정확한 고용정보 제공"

- 조직혁신을 논의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그간의 논의 결과가 오늘 ‘제2 개원 및 비전선포식’에서 공개된다. 핵심비전이 무엇인가.

“우리의 비전은 ‘세계 일류 국가고용정보기관’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고용정보 제공으로 인력수급 원활화’라는 미션을 달성하고자 한다. 5대 추진전략은 △고용정보 수집·분석·제공 강화 △진로지도 및 직업정보 제공 활성화 △고용서비스 선진화 지원 강화 △국가고용정보망 운영 효율화와 활용 활성화 △경영혁신과 고성과 조직 실현으로 설정했다.”

- 일반인의 시각에서 볼 때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은 아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고용정보 수집·분석·제공력을 높이기 위해 고용정보분석센터를 신설했다. 수요자들이 알기 쉬운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직업 직업정보를 제공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존의 진로교육센터를 생애진로개발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직업연구센터를 강화해 변화하는 직업의 세계를 시각적 자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생애진로개발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과거에는 직장인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회사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에서 직장인들이 자기 경력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면, 불시에 닥칠 수 있는 고용위기에 대처하기 어렵다. 고용정보원이 정확한 고용정보를 제공해 노동자들의 자기개발을 돕고, 동시에 노동자의 노동생산성 향상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유도해 나갈 것이다.”

- 고용률 70% 달성은 박근혜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다. 이를 위해 고용정보의 수집·분석·제공기능이 중요해 보이는데.

“기업들은 인력난을 겪는데 구직자들은 취업할 곳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 통계에도 안 잡히는 무직자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도 구직자도 어디에서 고용정보를 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노동시장 수요자들의 구직·구인 탐색비용이 커지고 있다.

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국가취업포털 워크넷이 있지만 수요자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워크넷을 통한 온라인상의 고용정보가 수요자들에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될 때 구인·구직에 소요되는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

- 워크넷은 고용정보원의 대표상품이지만 민간취업포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워크넷 방문자가 하루 60만명에 달한다. 접속자 규모만 보면 경쟁력이 낮다고 할 수 없다. 워크넷과 민간취업포털은 차이점이 있다. 민간취업포털은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구직자와 기업들을 서비스 대상으로 한다. 반면 국가취업포털인 워크넷은 경쟁력과 무관하게 모든 수요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만큼 취업취약계층의 정보가 집중돼 있다. 이걸 두고 워크넷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국가취업포털인 워크넷이 모든 수요자를 서비스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과 관을 구분하기보다는 양자가 비교우위를 살려 상생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종사자 열정 일으키는 경영정상화 돼야"

-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장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나.


“공공부문 경영합리화는 공공부문이 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예산이 낭비되는 부분은 개선하고, 예산이 필요한 부분은 늘려 줘서 공공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자신의 업무에 자부심을 느껴야 국민감동 서비스가 가능하다.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경영정상화가 돼야 한다.”

- 오는 7월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하는데. 조직 내부에 미치는 영향은 없나.

“서울에 있는 기관에 스카우트돼 떠나는 직원이 적지 않다. 고용정보원의 입장에서는 인재 손실이다. 자녀를 키우는 직원들은 교육 문제 등으로 고민이 많다. 얼마 전 고용정보원 신축공사 현장에 다녀왔다. 아직은 허허벌판이다.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해 보자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다. 출퇴근 문제부터 주거·보육·교육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직원들에게 함께 잘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표방하는 리더상은 ‘CDO’(Chief Dream Officer)다. 꿈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기관장이다. 직원들이 고용정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독려할 생각이다.”
글=구은회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 유길상 원장은

전남 고흥 출신이다. 대신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했다. 이어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과 고용보험연구센터소장, 한국기술교육대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95년 고용보험제도 도입 유공자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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