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런 식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필립 제닝스(60·사진) 국제사무직노조연합(UNI) 사무총장은 강도 높은 발언을 연신 쏟아냈다.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깬 대통령”,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4년 만에 공식 방한한 목적도 “한국의 노동권 악화를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필립 제닝스 총장의 격앙된 반응은 정부가 경찰력을 투입해 민주노총에 강제진입한 일 때문이다. 방한 일정도 그 사건을 계기로 잡혔다는 후문이다. 손영철 UNI-KLC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필립 사무총장은 지난 8일 오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강제진입을 비판했다.

9일 오후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필립 총장은 “다음달 열리는 국제노총(ITUC) 총회와 6월에 개최되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12월 예정된 UNI 총회에서 한국의 노동기본권과 관련한 의제가 핵심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 노조자문위원회(OECD-TUAC)가 한국에 대한 감시를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필립 총장은 10일 오전 기초연금제도 관련 국회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참관한다. 이어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대국민 캠페인과 국민철도·국민건강 지킴이 발대식에 참석하고 11일 오전 출국한다.

필립 총장 인터뷰는 서울 중구 사무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UNI는 150개국 900여개의 노조, 2천만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는 최대 규모의 국제산별노조연합이다.

- 한국 공식방문은 4년 만인데. 방한 목적은 무엇인가.

“노동권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고 있다. 약속을 깨는 대통령이 됐다. ILO와의 약속, OECD와의 약속을 깼다. 유럽연합(EU)과의 약속도, 한국 국민과의 약속도 깼다.”

-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을 깼다는 것인가.

“한국 국민의 권리를 침해했다. 대통령으로서 전 국민을 돌볼 책임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듯하다. 특히 한강의 기적을 만든 세대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노년층의 절반 정도가 빈곤한데도, 기초연금 문제를 비롯해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관련기관을 만나면서 의견을 내려 한다. 가장 큰 결격사유는 노동권에 대한 부분이다. 사회통합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먼저 ILO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2주 전에 ILO가 교사와 공무원들의 노조가입 문제에 관해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는 없다. OECD도 한국의 노동 문제와 관련해 추적하고 자문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새로 만들 것이다. 그동안 20년 넘게 한국에 왔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하면서 어떤 것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던 현장에도 있었다. 올해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OECD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철도노조 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부수고 들어가 100여명 넘게 연행한 일은 한국 안에만 머무는 뉴스가 아니다. 세계가 다 보고 있다. 올해 잇따라 열리는 ITUC·ILO·UNI 총회에서도 한국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제발 노동계와 대화를 하라.”

- 감정노동자를 만나는 일정이 있는데.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직업병이나 재해와 관련해 제조업 중심의 법을 가지고 있다. 서비스산업 재해에 관한 법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나 텔러들, 캐시어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국민들이 이해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UNI는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감정노동 캠페인을 지지하고 함께할 것이다.”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사모펀드 활성화를 비롯한 금융규제 완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듯하다. 어떻게 보나.

“한국은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나. 새로 나온 영화 <월스트리트>를 봐야 한다.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모펀드 규제완화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사모펀드는 완전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투자 대신 구조조정을 할 것이고, 조세회피까지 연계돼 있다. 수수료도 많이 받는다. 잉여를 빼내야 하기 때문에 단기실적 위주다. 제대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 증명되지 않고 있다.”

- 한국에서는 의료 민영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시장은 한계가 있다. 보건의료는 공공재다.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영화가 되면 의료비용 때문에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월스트리트가 내 건강을 생각해 주지는 않는다. 보건의료는 금융기관에서 파는 물건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 보건의료노조는 한국인을 위해서라도 반대하고 싸워야 한다. 당연히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사안이다. 국제공공노련을 비롯한 국제단체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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