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수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상판결 / 서울남부지방법원 2012가합19681 정직처분무효확인 등

1. 사건의 개요

가. 원고 PD들은 ‘생방송 금요와이드’ 2012년 8월24일 방영 예정분 중 ‘이슈 클로즈업’ 항목에서 발레오만도 노사분규를 다루기로 하고, 이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나. 원고 PD들의 상급자들은 발레오만도 사건 방영을 거부했고,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방영되지 못했다.

다. 원고 ○○○이 피고 회사의 사내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발레오만도 사건 불방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교양제작부장이 이를 반박하는 글을 올렸고, 원고 PD들은 다시 이를 재반박하는 글을 게시했다.

라. 피고는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원고 PD들에 대해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위반 및 직장질서 문란 등을 이유로 정직 3월 및 정직 1월, 원고 ○○○에 대해서는 자유게시판 게시글 관련 직장질서 문란을 이유로 정직 1월의 징계처분을 했다.

2. 법원의 판단

서울남부지법은 2013년 12월20일 이 사건 정직처분이 무효라고 판시했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가. 이 사건 프로그램 방영 이전에 ‘이슈 클로즈업’ 항목을 통해 소개된 다른 주제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특별히 발레오만도 사건 주제가 이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 피고의 방송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담당 PD와 제작책임자의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상위 책임자의 결정에 따를 것을 전제로 상호 간에 대화와 설득을 시도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불방 결정 이전에 교양제작부장이 여러 차례 원고 PD들에게 제작중단 지시를 했으나 원고들이 편집작업을 계속하면서 시사회를 요청했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가이드라인 위반이나 직장질서 문란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상급자의 제작중단 지시가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결론이 되는데, 이는 이 가이드라인의 문언에도 반하고, 자율성과 공정성을 전제로 하는 언론의 속성에도 반한다.

다. 이 사건 게시글은 전체적으로 특정인을 비방하기보다는 발레오만도 사건에 대한 피고 교양제작국의 불방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취지로 보이고, 원고 ○○○이 작성한 게시글에는 특별히 관련 상급자를 비방하는 내용의 기재가 포함돼 있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라. 따라서 이 사건 정직처분은 징계사유가 없거나, 가사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징계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해 무효라 할 것이다.

3. 평석

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언론은 외부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언론사 내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하는 방송이 소수 경영진의 편향적 가치관에 휘둘릴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고, 직접 방송을 제작하는 방송 종사자들의 제작 자율성과 근로조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해 방송법 제4조 제1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고 선언하면서 제4항에서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송법으로 보장된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피고 회사의 방송가이드라인에서는 ① 담당 PD는 프로그램 책임자의 수정·보완 지시에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따르고, ② 담당 PD와 책임자 간에 방영 여부에 관해 이견이 있으면 상위 책임자가 주재한 회의를 통해 불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평석 대상 판결에서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상급자의 제작중단 지시가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피고 주장은 자신이 만든 방송 가이드라인 문언(담당 PD의 의견제시 보장, 의견대립시 회의를 통해 불방 여부 결정)에도 반하고, 자율성과 공정성을 전제로 하는 언론의 속성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나. 방송소재로서의 적합성

원고들은 사건 당시 생방송 금요와이드 제작PD를 맡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 방송되는 생방송 금요와이드는 한 주일 동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이슈들을 심도 있게 취재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화제가 된 사건, 강력사건, 황당사건 등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들을 발 빠르게 전달하는 ‘이슈 클로즈업’이라는 아이템이 있다.

당시 발레오만도 근로자들은 파업 종료 후 사측으로부터 오리걸음, 한강철교로 불리는 얼차려를 받았고, 노동조합 탈퇴를 거절하면 풀 뽑기,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심각한 인권탄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까지 제기돼 사회적으로 파장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핫이슈인 만큼 원고들은 의욕을 보였고, 직접 현장취재를 했다. 그러나 상급자들은 ‘발레오만도 사건은 생방송 금요와이드 주제에 맞지 않다’며 방송을 불허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시사’를 다룰 수 없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생방송 금요와이드 프로그램의 성격과 제작의도, 소재 선정의 적합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뤄졌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를 토대로 종전에 소개된 다른 주제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특별히 발레오만도 사건 주제가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 방송사 내부의 표현의 자유

원고 ○○○의 경우 사내 전자게시판에 올린 글이 문제돼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사내 전자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이고 심각한 제한이므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 물론 사실관계를 확인해 게시물 내용의 허위성 혹은 사내 질서의 문란 등이 입증된다면 징계를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이고 정확한 입증이 없다면 징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징계양정 측면에서도 허위사실의 유포에 의한 손해발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정직이라는 중징계는 과도하며, 견책이나 감봉 등의 징계가 비교적 비례성 원칙에 합치된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일반 사기업에서도 내부 구성원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데 하물며 그 누구보다 내부 구성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사회적 책임이 있는 방송사가 사내 게시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방된 사건에 관한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설득력이 없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를 토대로 해당 게시글이 허위사실을 적시하거나 특정인을 모욕하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불방 결정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였다는 취지로 판시함으로써 방송사 내부 구성원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했다.

4. 결론

이번 판결은 언론의 자유는 외부는 물론 내부로부터 독립돼야 하고, 방송제작 종사자의 제작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는 충분히 보호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률적 쟁점과 별도로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공영방송사에서 노동인권은 여전히 낯설고 소외된 이슈라는 점, 방송에서 ‘불편한 진실’을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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