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2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서가 접수됐다. 노조측 당사자는 주한미군한국인노조(위원장 김성영), 사용자측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다. 3주 가까운 조정기간을 거친 중노위는 지난달 13일 조정안을 제시했다.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지난해 한국 공무원 임금인상률(2.8%)의 70% 수준인 1.96%의 임금인상안을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2011년부터 임금동결로 허리띠를 졸라맸던 노조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측은 단호하게 "No!"를 외쳤다. 2%도 안 되는 임금인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성영(54·사진)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위원장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말끝마다 한국인 직원들에게 'Let's Go Together'라고 외칩니다. 말로는 함께 가자면서 정작 한국인의 노동조건에는 관심도 없어요. 미군기지에는 한국인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식당조차 없습니다. 미군 전용식당에는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직접 밥을 지어 먹습니다. 한국 국민의 혈세로 천문학적인 방위비를 부담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노조는 이달 14~16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25~2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주한미군측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노조가 적법하게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사용자인 주한미군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활용하면 언제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영 위원장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왔다"며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파업을 강행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59년 주한미군한국인노조가 설립된 이후 미군기지에서는 단 한 번의 분규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노조가 파업카드를 꺼내 든 걸까.

국민 혈세로 채우는 천문학적 방위비 분담금, 어디로?

올해 1월 한국과 미국은 제9차 주한미군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을 체결했다. 주한미군측이 한국인 근로자의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인건비 분야에서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건비 부담 상한선도 71%에서 75%로 인상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는 인건비 부담 상한선을 확대하는 대신 한국인 노동자의 복지증진과 인건비 분야 투명성 제고를 협정서에 담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개선된 게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노동자가 한국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페이캡 제도(임금상한제)가 적용된다. 미 국방비 예산법 8002장에 따라 미군의 주둔국 직원들은 미 연방공무원 임금인상률과 주둔국 공무원의 임금인상률 중 높은 인상률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2011년 미국의 경제위기로 오바마 대통령이 임금동결령을 실시하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도 제자리에 묶였다. 그해 한국공무원의 임금인상률이 5.6%를 기록한 탓에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박탈감은 더욱 컸다. 이듬해인 2012년 한국공무원 임금이 3.5% 오르고 지난해 2.8% 인상되는 동안에도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꽁꽁 묶였다. 올해 미국의 임금동결령이 해제되면서 주한미군의 임금이 1% 올랐는데도 한국인 노동자들은 임금협정 기간이 6월 말까지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모조리 박탈당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그것뿐만 아니다. 일자리에 대한 위협도 심각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서 2011년부터 향후 10년간 국방예산을 5천500억달러 삭감하기로 결정했다"며 "매년 550억달러씩 삭감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노동조건 개선을 바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2012년 주한미군 기지에서 대규모 감원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은 주한미군 교역처(AAFES)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 규모(현재 1천600명)를 축소하고 일자리 질도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인 정규직(풀타임) 비중을 45%에서 20%로 줄이는 대신 한국인 시간제(파트타임)를 39%에서 50%로 확대할 방침이다. 주한미군은 또 수시고용 형태의 한국인 계약직을 미국인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김 위원장은 "한국인 직원들이 대량 감원된 자리에 미국인 직원들이 채용되고 있다"며 "2001년 한미 양국이 '한국인 직원 우선고용 원칙'에 합의했는데, 이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인건비, 기지이전 비용으로 전용 막아야"

노조와 한국노총은 방위비 분담금 인건비 분야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노사정 협의기구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해마다 오르는 반면 한국인 직원은 매년 줄어들고 인건비도 축소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9천200억원에 이르는 한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이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경우 2017년에는 1조원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며 "국민 혈세로 채우는 천문학적인 방위비 분담금에서 적어도 인건비만큼은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에 따르면 2006년 9천549명이던 한국인 노동자수는 지난해 8천614명으로 7년 새 935명(9.8%)이나 줄었다. 전체 방위비 분담금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51.9%에서 2011년 41.7%로 10년간 10.2%포인트 축소됐다. 반면 같은 기간 군사시설 건설비는 20.5%에서 41.0%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군수지원비도 16.8%에서 18.0%로 소폭 상승했다.

특히 미국 국방성 공무원 임금동결령이 시행된 2011년부터 인건비 비중과 군사시설건설비 비중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현재 인건비 비중은 38.4%로 떨어지고 군사시설건설비 비중은 44.3%까지 확대됐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주한미군이 인건비를 미군기지 이전비용으로 전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평택으로의 기지이전의 경우 양국 간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에 따라 한국은 땅을 대주고 나머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 그런데 미국이 이 돈을 한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한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에서 인건비 비중을 40%로 고정해 다른 항목으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위비에서 인건비 비중을 고정하지 않으면 기지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대책 없는 감원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2012년 7월부터 한국 정부가 퇴직금 중간정산을 전면 금지하고 퇴직연금 가입을 유도하고 있는데 주한미군은 퇴직연금 가입시 3억원에서 4억원의 금융기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매년 퇴직금을 중간정산하고 있다"며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2005년에야 산재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돌이켜 보면 퇴직연금 가입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또 다른 걱정은 미군기지 이전이다. 현재 의정부나 동두천에서 일하는 노동자 4천800명이 평택으로 이전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나 주한미군 모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위한 클럽이나 골프장은 건설하면서 그 넓은 부지에 한국인 직원을 위한 식당이나 복지시설은 전혀 만들지 않고 있어요. 이전하는 직원들의 주거대책이 없어 당장 살 곳도 없는 상황이죠. 이런데도 'Let's Go Together'라는 주한미군 사령관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미군부대 안에 한국인 직원들이 종사하는 직종만 240개다. 전체 주한미군 업무의 75%를 한국인 직원들이 수행하는 실정이다. 국방에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업무가 국가안보와 직결되다 보니 그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고 참고만 있었다"며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는 매년 고용불안과 노동조건 후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사진=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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