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공인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노동자가 파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학 시절 장기투쟁 사업장 집회에 참석한 뒤 노조와의 간담회에서 "투쟁할 때 제일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내가 기대했던 답은 아마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나 정부기관의 불성실한 수사태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날씨’와 ‘생계’였다. 대의와 명분으로 가득 차 있던 철없던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이내 그 의미를 깨닫게 됐다. 노동자가 투쟁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싸워야 할 분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누가 문제의 원인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 함께 싸우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를 어떻게 유지해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싸울 수 있는 힘은 현장의 변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노동자들은 삼성 로고를 작업복에 새기고 일하는 삼성의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삼성이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노조가 설립되자 삼성은 각종 교섭해태를 통해 시간을 끌면서,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 교섭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조합원 한 명이 매일 15시간 넘게 일하다 과로사로 사망하고, 사용자의 집요한 표적감사로 고 최종범 조합원이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이어졌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은 동료를 잃는 아픔을 겪을수록 자신이 싸워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게 됐다. 최종범 열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으로 유족이 농성을 시작했을 때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전국의 조합원들이 자신의 생계를 뒤로 하고 한달음에 달려와 유족의 곁을 지켰다. 다시 현장으로 내려갈 때 그 무뚝뚝하던 아저씨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훔치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부와 회사는 인간으로서 육체적인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경찰은 노숙농성을 하는 유족을 상대로 천막설치에 대한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도로 한켠에서 밥이라도 먹으려고 골판지를 깔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부수고 빼앗았다. 영하 10도를 넘나들던 1월 한파에도 천막을 치지 못하게 막았다. 유족과 조합원들은 비닐 한 장으로 몸을 감고 도로 위에서 떨며 날이 새기를 기다려야 했다.

삼성은 한술 더 떴다. 눈비를 피하려 건물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하는 것조차 막으려고 건물 처마 아래를 나무 패널로 둘러쳤다.

한국 사회 노동권 모순의 집약체

치졸한 방해에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1천500여명의 조합원들은 하나둘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부당한 휴일근로 강요에 처음으로 "노(NO)"라고 말하고, 휴일에 가족과 함께하는 당연한 즐거움도 알게 됐다. 하청업체가 부당하게 착복한 장거리수당과 연차수당도 받아 냈다. 업무수행에 필수적인 차량제공과 유류비·통신비 지급에 대한 협상도 진행 중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투쟁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 내 식당이나 공터에서 집회를 하거나 선전전을 하면 원청은 도급계약상 해당 장소에 대한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조활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원청은 다른 하청업체나 원청 직원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해 파업권을 무력화시킨다.

특히 삼성전자서비스의 경우 사용자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표적감사를 한다. 원청은 뒷짐을 진 채로 부당노동행위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센터들은 몸자보나 선전물 배포를 막고, 서비스업 특성을 악용해 콜수임 전산시스템 접속이나 사업장 출입을 차단한다. 그러면 수리업무에 필요한 자재를 가져갈 수 없어 일을 할 수가 없다. 건당수수료 임금체계상 콜수임이 없으면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이중 삼중의 제약이다.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해야

지난해 8월 삼성전자서비스는 사용자임을 부인하면서, 하청업체에 교섭책임을 떠넘겼다. 하청업체들은 짜 맞춘 듯이 상견례 이후 한국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했다. 경총은 교섭주기와 방법을 꼬투리 잡아 교섭을 해태하면서 8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회사 제시안을 내놓았다.

그런 다음에는 지역의 공인노무사에게 재위임을 하겠다면서 그간의 교섭을 모두 백지화하는 태도를 취했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활동을 열심히 했던 센터를 중심으로 하청업체와 위탁계약을 중단·폐업하는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해고하고 있다.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센터는 3개월 단기 도급계약을 체결하면서 향후 3개월간 성과목표에 미달하면 계약해지를 할 수 있도록 약정해 노조의 파업권을 위축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삼성전자서비스의 하청업체 폐업을 통한 노조탄압을 폭로하고, 고용보장과 사용자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8일부터 상경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하루 수리건수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계마저 내려놓고 삼성이 어떻게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고,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 3권을 행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아야만 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위장도급·불법파견을 불문하고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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