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3가합512402 손해배상(국)

판결요지 :
신군부에 의해 정화대상에 포함된 원풍모방노조를 상대로 회사측은 1982년 9월27일 폭력배를 동원해 노조 사무실에 난입해 지부장을 감금하고 여성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결국 원풍모방노조는 와해됐고 500여명의 조합원들은 1982년 10월부터 1983년 1월까지 강제해고됐다. 해고자들은 재취업도 사실상 봉쇄됐다. 국가안전기획부·경찰의 개입하에 강제귀향 조치되거나 지속적인 사찰을 당했고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재취업을 제한당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난해 피해 조합원인 원고들은 “원풍모방노조 와해과정에서 해고됐고 해고 이후 블랙리스트에 의해 재취업을 할 수 없었으며 지속적 사찰로 사생활의 자유가 심대히 침해당했다”며 “국가는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강제해직 등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받은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또한 블랙리스트 작성·배포로 원고들의 재취업을 방해하고 일상적 사찰을 실시한 것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각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0민사부 판결

사건 2013가합512402 손해배상(국)
원고 1. 이○○
2. 김○○
3. 유○○
4. 이□□
5. 차○○
6. 최○○
7. 박○○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씨티즌
담당변호사 김영중
피고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 황교안
소송수행자 오**
변론종결 2013. 11. 26
판결선고 2013. 12. 19

주문
1. 원고 이○○, 김○○, 유○○의 이 사건 소 중 9. 27. 사건을 이유로 한 위자료청구 부분을 모두 각하한다.

2. 피고는 원고 이○○, 김○○, 유○○에게 각 10,000,000원, 원고 이□□, 차○○, 최○○, 박○○에게 각 2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13. 11. 26부터 2013. 12. 19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3.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4. 소송비용 중 원고 이○○, 김○○, 유○○와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의 4/5는 위 원고들이, 1/5은 피고가 각 부담하고, 원고 이□□, 차○○, 최○○, 박○○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의 3/5은 위 원고들이, 2/5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5. 제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5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 다음날부터 이 사건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인정 사실

가. 원고들의 지위

원고들은 원풍모방 주식회사(이하 ‘원풍모방’이라 한다)에 근무하면서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1982. 10경부터 1983. 1경까지 사이에 각 해고되거나 강제로 사직처리된 사람들이다.

나. 9. 27 사건 전후의 노조활동 탄압 및 해고 등

1) 피고는 1980. 5. 31경 그 산하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라 한다)를 설치한 후 각 부문별 사회정화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국보위는 피고 산하의 노동청을 통하여 1980. 8. 21경 노동조합 내 비위·부조리가 현저한 각급 노동조합간부를 정화하라는 내용의 ‘노동조합 정화지침’을 한국노총 및 산별노동조합 등에게 하달하였다.

2) 국보위는 정화대상자 명단에 원풍모방 노동조합 등 노동조합의 간부를 포함시켜 정화대상자로 분류하였고, 위 노동조합 정화지침에 따라 원풍모방 노동조합 간부들은 계엄사합동수사본부 및 서대문경찰서에 연행되어 불법으로 구금되었고, 구금된 상태에서 노동조합 탈퇴, 사직 등을 강요받아 원풍모방에서 사직하거나 강제로 해고되었다.

3) 원풍모방 노동조합은 위와 같은 피고의 노동조합 정화조치 이후에도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82. 9. 27 원풍모방의 지시를 받은 남자직원 일부와 정체불명의 폭력배들이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사무실에 난입하여 노동조합 지부장을 감금하였는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들은 남자직원들의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를 묵인하거나 방조하였고, 피고 산하 국가안전기획부,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에 의한 공권력의 개입 하에 1982. 10경 원풍모방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상당수가 강제로 귀향조치를 당하였으며 원고들을 포함한 500여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원풍모방에서 해고당하거나 강제로 사직처리되었다(위 일련의 사태를 통틀어 ‘9. 27 사건’이라 한다).

다.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피고 산하 중앙정보부, 남부경찰서 등은 9. 27 사건으로 원풍모방 노동조합이 와해된 후부터 원풍모방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기재되어 있는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배포함으로써 위 블랙리스트에 기재된 사람들이 다른 회사로 재취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였고 피고 산하 경찰, 노동부 등은 그들에 대하여 일상적인 동향 감시와 사찰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였는바, 특히 1987. 8경 경동산업의 파업 농성 중 발견된 이른바 ‘경동산업 블랙리스트’에는 원고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위 경동산업 블랙리스트로 인한 원고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이하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한다).

라.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등

1) 원고 이○○, 김○○, 유○○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2008. 12경부터 2009. 9경까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주화보상심의위’라 한다)에 의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민주화보상심의위의 결정에 따라 원고 이○○, 김○○, 유○○는 2008. 12경부터 2009. 9경까지 생활지원금으로 각 5,000만원(이하 ‘이 사건 각 생활지원금’이라 한다)을 지급받았다.

원고 이○○, 김○○, 유○○는 1976. 3경부터 1979년경까지 사이에 원풍모방에 입사하여 원풍모방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활동 중, 1982. 9. 27경 피고와 원풍모방에서 원풍모방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조합장을 감금하고 사퇴를 강요하는 등 원풍모방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강행되자 이에 대항하여 단식농성을 하는 등 항의농성을 하였다는 이유로 1982. 10경 해고되었는 바, 이는 민주화운동관련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운동보상법’이라 한다) 제2조 제2호 라목, 제1호에 따라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것이다.

2)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 한다)는 2010. 6. 30, 9. 27 사건 및 블랙리스트로 인한 인권침해 사건에 관하여 ‘진실규명’으로 결정하면서 ‘피고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신청인과 관련 노동조합 및 조합원들의 노동기본권, 조합원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하여 신청인 등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신청인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 내지 13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이 법원의 민주화보상심의위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의 주장

원고들은 ① 원풍모방에서 근무하다가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9. 27 사건에서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하여 원풍모방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 과정에서 해고되었고, ② 위와 같이 해고된 이후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하여 재취업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로 인하여 사생활의 자유가 심대하게 침해되었으며, ③ 피고의 노동조합 탄압과정에서 2일 동안 불법구금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로 각 5,000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피고의 본안 전 항변에 관한 판단

가. 당사자들의 항변 등

1) 피고는 원고 이○○, 김○○, 유○○가 민주화운동보상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에 동의하여 이 사건 각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음으로써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으므로 위 원고들의 이 사건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항변한다.

2) 이에 대하여 위 원고들은, 이 사건 각 생활지원금은 국가배상법에 기한 손해배상금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민주화운동 기여자에 대한 배려 내지 지원책에 불과하고,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는 것은 위 원고들이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한정되므로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한 피해와 2일 동안의 불법구금에 의한 피해는 위 재판상 화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며, 민주화운동보상법상 지급되는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중 적극적 및 소극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이 사건과 같이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에는 위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치지 아니한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관련 법령

○ 민주화운동보상법

제2조(정의)

2. "민주화운동관련자(이하 "관련자"라 한다)"라 함은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자 중 제4조의

규정에 의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ㆍ결정된 자를 말한다.

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이를 입은 자

다.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질병을 앓거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인

정되는 자

라.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ㆍ해직 또는 학사징계를 받은 자

제9조(생활지원금)

① 위원회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자 및 그 유족에 대하여 그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지원금

을 지급할 수 있다.

1.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30일 이상 구금된 자

2.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이를 입은 자로서 제7조 제1항 제2호 나목의 규정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한 자
3. 재직기간 1년 이상인 해직자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생활지원금은 관련자의 지원을 위하여 기부된 성금으로 지급할 수 있

으며, 정부는 그 재원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③ 생활지원금의 지급기준ㆍ지급액 및 지급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

한다.

제10조(보상금 등의 지급신청)

① 관련자 또는 그 유족으로서 이 법에 의한 보상금ㆍ의료지원금ㆍ생활지원금(이하 "보상금등"

이라 한다)을 지급받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관련증빙서류를 첨부하여

서면으로 위원회에 보상금 등의 지급을 신청하여야 한다.

제14조(신청인의 동의와 보상금 등의 지급)

① 보상결정서정본을 송달받은 신청인이 보상금 등을 지급받고자 할 때에는 지체없이 그 결정

에 대한 동의서를 첨부하여 위원회에 대하여 보상금 등의 지급을 청구하여야 한다.

제18조(다른 법률에 의한 보상 등과의 관계 등)

② 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

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 민주화운동보상법 시행령

제12조의2(생활지원금)

① 법 제9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생활지원금의 지급대상자 중 30일 이상 구금된 자에 대하여는 해당 구금일수에 최저생계비를 곱한 금액을 지급하되, 그 금액은 5천만원을 초과하지 아니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최저생계비는 생활지원금 지급결정연도의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6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공표된 4인 가구기준의 월 최저생계비를 30일로 나누어 산출한 금액을 적용한다.

② 법 제9조 제1항에 따른 생활지원금 지급대상자 중 재직기간이 1년 이상인 해직자에게는 위 1, 2 (생략) 3. 신청인은 그 보상금 등[생활지원금]을 받은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을 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시 청구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합니다. 원회가 인정한 해직기간에 대하여 별표 6의 기준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되, 해직기간 및 정년은 다음 각 호의 기준에 따라 산정한다.

④ 법 제9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생활지원금의 지급대상자 중 상이를 입은 자로서 법 제7조

제1항 제2호 나목의 규정에 의한 보상금을 받지 못한 자에 대하여는 1인당 480만원을 지급한

다.

⑤ 법 제9조 제1항 각 호의 규정에 동시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지급대상자에게 유리한 금액을

선택하여 지급할 수 있다.

제20조(동의 및 지급청구)

제18조의 규정에 의하여 보상결정통지서·생활지원금지급결정통지서 또는 명예회복결정통지서

를 받은 신청인이 보상금 등의 지급을 받고자 하는 때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한 별지

제10호서식의 동의 및 청구서에 보상결정서·생활지원금지급결정서 또는 명예회복결정서 정본

과 신청인의 인감증명서 각 1부를 첨부하여 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3. 보상결정에 동의하고 보상금 등의 지급을 청구한다는 취지

별지 제10호 동의 및 청구서(보상금, 생활지원금)서식 [모두 부분]

2) 생활지원금 수령에 따른 재판상 화해 여부

가) 갑 1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 이 법원의 민주화보상심의위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① 피고 산하 민주화보상심의위는 원고 이○○, 김○○, 유○○가 9. 27 사건으로 인하여 원풍모방에서 해고당한 것이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것이라는 이유로 위 원고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는 의결을 한 사실, ② 이에 따라 민주화보상심의위는 2008. 12경부터 2009. 9경까지 위 의결에 따른 조치로서 위 원고들에게 민주화보상법상 생활지원금 5,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결정을 한 사실, ③ 위 원고들은 그 무렵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1조에 따른 생활지원금을 받은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할 것임을 서약합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된 민주화운동법 시행령 별지 제10호 서식의 동의 및 청구서(이하 ‘이 사건 동의서’라 한다)를 민주화보상심의위에 작성·제출하고 이 사건 각 생활지원금 5,000만원을 각 수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들에다가 앞서 인용한 각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민주화운동보상법은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 따른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법적 재평가의 산물로서 입법자는 국가권력 장악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인권을 침해당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을 목적으로 민주화보상법을 제정함으로써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 문제를 일괄하여 종국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위와 같은 입법자의 의사를 반영하여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은 민주화운동관련자가 민주운동화보상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아 다른 법률에 의한 보상급여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중복하여 받지 않도록 규정한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한 점, ③ 민주화운동보상법 시행령 제20조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생활지원금의 지급을 받기 위해서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동의 및 청구서’의 서식에는 위 재판상 화해의 취지를 명백하게 표시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민주화운동보상법상 생활지원금을 받은 때에는 받은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할 것임을 서약합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 ④ 민주화운동보상법상 지급되는 ‘보상금 등’은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의 3개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고, 민주화운동보상법 시행령상 생활지원금의 액수는 구금일수, 최저생계비 등을 기준으로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러한 규정은 민주화보상심의위가 생활지원금의 지급액을 자의적으로 정하지 못하도록 미리 일응의 기준을 마련해 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 점을 근거로 민주화운동보상법상 보상의 범위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있어 적극적 및 소극적 손해에 대응하는 손해배상에 국한될 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민주화운동보상법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입은 적극적 및 소극적 손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포괄하여 생활지원금이 지급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는 점, ⑤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서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다고 규정한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정신적 피해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점, ⑥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피해자가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고 그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때에는 그 후 그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였다 하여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인바(대법원 2000. 1. 14 선고 99다39418 판결 등 참조), 원고 이○○, 김○○, 유○○와 피고 사이에는, 이 사건 동의서에 기재된 대로 위 원고들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하여 이 사건 각 생활지원금을 지급받는 대신 나머지 손해배상청구를 포기하기로 하는 내용의 화해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할 것이고, 위 원고들은 이 사건 동의서를 작성·제출할 당시 피고의 위 불법행위로 인하여 겪었던 정신적 고통에 관하여 잘 알면서도 위와 같은 화해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보이는 점 등 이 사건에 나타난 제반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지급된 생활지원금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인하여 입게 된 적극적 손해 및 소극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는 것으로서,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의하여 원고 이○○, 김○○, 유○○가 민주화보상심의위의 생활지원금 지급결정에 동의하여 이 사건 동의서를 작성.제출하고 피고로부터 이 사건 각 생활지원금을 수령함으로써, 위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정신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포함하여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성립 간주된 위 재판상 화해를 이하 ‘이 사건 화해’라 한다).

3) 이 사건 화해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

가) 원고 이○○, 김○○, 유○○는 피고의 불법행위로서, ① 9. 27 사건에서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 ②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③ 2일 동안의 불법구금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위 원고들이 민주화보상심의위에 의하여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것은 피고의 공권력 개입으로 발생한 9. 27. 사건으로 인하여 원풍모방에서 강제해직되었기 때문인 점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고, 제1항에서 인정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9. 27 사건과 이를 이유로 한 위 원고들의 해직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할 것인 바, 9. 27 사건에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를 원인으로 발생한 손해는 이 사건 화해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위 원고들이 이 사건 소송에서 위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권리보호이익이 없다. 따라서 피고의 위 본안 전 항변은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고, 결국 위 원고들의 이 사건 소 중 9. 27 사건을 이유로 한 위자료청구부분의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나) 한편, 앞서 인용한 각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민주화보상심의위가 원고 이○○, 김○○, 유○○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면서 작성한 의결서에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작성·배포한 블랙리스트에 인한 취업방해 및 사생활 침해와 피고 소속 공무원들에 의한 불법구금에 관하여는 아무런 기재도 되어 있지 아니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바, 위 인정사실에다가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위 원고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한 것과 2일 동안 위 원고들을 불법감금한 것은 민주화운동보상법 제2조 제2호에서 열거하고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점, 재판상 화해는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그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명확하게 특정되어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화해의 대상이 되는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에는 위 의결서의 주문 및 이유에 명확하게 특정된 바 없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블랙리스트 작성.배포로 인한 피해와 불법구금으로 인한 피해는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부분에 관한 피고의 위 본안 전 항변은 이유 없다.

4. 본안에 관한 판단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1)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9. 27 사건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앞서 인정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원풍모방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여 9. 27 사건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하여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던 원고 이□□, 차○○, 최○○, 박○○은 원풍모방에서 해고당하거나 강제로 사직처리되었는 바, 이러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위 원고들의 노동기본권 및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위와 같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받은 위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위 원고들에 대하여 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블랙리스트의 작성·배포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앞서 인정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노동조합의 활동 및 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원풍모방에서 해고된 원고들에 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하는 방법으로 원고들의 재취업을 방해하고 일상적인 동향 감시와 사찰을 실시하였는 바, 이러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원고들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위와 같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받은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들에 대하여 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 불법구금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원고들은 피고의 노동조합 탄압과정에서 2일 동안 불법구금되었다고 주장하나, 갑 4호증의 1 내지 7의 각 기재만으로는 원고들이 피고 소속 공무원들에 의하여 불법구금을 당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갑 4호증의 1 내지 7은 원고들이 작성한 사건경위서로서 위 불법구금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라고 보기 어렵다),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불법구금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원고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2) 손해배상의 범위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활동에 불법적,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원고들을 원풍모방에서 해고당하게 하고, 그 해고 이후에도 원고들의 이름이 기재된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하여 원고들에 대한 감시와 사찰을 실시함으로써 원고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 경제적 궁핍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사정들을 참작하면, 위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 이□□, 차○○, 최○○, 박○○의 위자료는 각 2,000만원으로, 9. 27 사건으로 인한 손해에 관하여 이 사건 화해를 하여 이 사건 각 생활지원금을 수령한 원고 이○○, 김○○, 유○○에 대한 위자료는 각 1,000만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나) 또한 이 사건과 같이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이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예외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35572 판결 등 참조),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 이○○, 김○○, 유○○에게 위자료로 각 1,000만원, 원고 이□□, 차○○, 최○○, 박○○에게 위자료로 각 2,000만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3. 11. 26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13. 12. 19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

1) 피고의 항변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위 손해배상청구권은 위 불법행위일인 1980년경부터 5년 이상이 경과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고, 또한 원고들이 위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2010. 6. 30에는 그 객관적 장애사유가 종료되었다고 할 것인바, 원고들은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피고에 대하여 위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권리남용을 이유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할 수 없다.

2) 판단

가)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위 손해배상청구권은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권리로서 구 예산회계법(1991. 11. 30 법률 제440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6조에 따라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할 때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할 것인바, 이 사건 소가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가 있었던 1982년경부터 5년이 경과한 2013. 3. 28에 제기되었음은 기록상 명백하다.

나)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피고가 위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고, 다만,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 할 것인데,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하며,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앞서 인용한 각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원고들로서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9. 27 사건 및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관한 진실규명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구체적으로 피고 산하 어떠한 기관이 어떠한 방식으로 9. 27 사건에 개입하여 원풍모방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원고들을 해고당하게 하며,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한 것인지 알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② 9. 27 사건에서 피고 산하 국가기관이 원풍모방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하여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노사관계에 개입하여 결국 원고들을 해고당하게 한 것은, 공무원 개인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고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국가가 행한 조직적인 범행인바, 국가기관에 의하여 그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피해자들 스스로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 ③ 특히 원고들의 이름이 기재된 블랙리스트는 그 작성 주체를 알기 어렵게 하여 비밀리에 작성되고 관리되었으며 피고가 블랙리스트의 작성 사

실 자체를 은폐하여 왔기 때문에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원고들이 막연한 의혹을 넘어 블랙리스트에 관한 피고의 구체적인 위법행위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던 점, ④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기록원, 국가정보원, 노동부 등에서 자료를 입수하고, 참고인들의 진술을 청취하는 등 광범위한 조사를 하였음에도 9. 27 사건 및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관하여 피고의 정보기관 등이 개입하였다는 사실만을 밝혀냈을 뿐 책임자나, 행위방식에 대해서는 상세히 파악하지 못한 점, ⑤ 민주화보상심의위가 원고 이○○, 김○○, 유○○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의결에 관한 의결서에도 위 원고들이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되었음을 인정하는 내용만이 기재되어 있을 뿐 피고의 해고 개입에 관련된 어떠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 점(블랙리스트 작성.배포에 관한 사항은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⑥ 이 사건처럼 모든 증거자료를 피고가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고들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피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불법행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증거수집능력이 현저하게 열악한 지위에 있는 원고들로서는 국가의 공권력에 기대어 진실을 규명하여 달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점, ⑦ 피고 산하 공무원들은 조직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함으로써 9. 27 사건을 이유로 원고들을 해고시키고 블랙리스트를 비밀리에 작성·배포하여 원고들의 재취업을 방해하였는바, 그로 인하여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큰 반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헌적인 불법행위로 국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피고에게 소멸시효 제도를 들어 위 손해배상채무의 이행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보이는 점, ⑧ 피고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을 통하여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상,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피해자가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수용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파생된 법적 의미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는 점 등 이 사건에 나타난 제반 사정들을 종합하면, 9. 27 사건 및 블랙리스트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관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던 2010. 6. 30까지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위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고, 원고들로서는 위 진실규명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판결 등 참조).

또한 앞서 인정한 사실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피고가 과거사정리법을 통하여 규명된 진실에 따라 피해자들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천명하여, 원고들로서는 피고가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였으리라고 보이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현재까지 아무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행한 불법행위의 반인권적, 조직적인 특수성과 그 불법의 중대함, 당시 사회적, 시대적 상황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은 위와 같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장애사유가 소멸하고 피고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위 진실규명결정일인 2010. 6. 30로부터 신의칙상 상당한 기간 내인 2013. 3. 28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여 피고에게 위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하였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들의 위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으므로, 이를 지적하는 원고들의 재항변은 이유 있고, 결국 피고의 위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 이○○, 김○○, 유○○의 이 사건 소 중 9. 27 사건을 이유로 한 위 자료청구부분은 부적법하여 이를 모두 각하하고, 위와 같이 각하하는 부분을 제외한 위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 및 원고 이□□, 차○○, 최○○, 박○○의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고영구 /판사 장재익 / 판사 성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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