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홋카이도(북해도)는 이름 그대로 일본 본도 북쪽 바다에 위치한 섬입니다. 우리나라 5분의 4 정도의 면적이지만 인구는 540만명에 불과합니다. 강원도와 유사한 낮은 인구밀도에 자연지리 조건도 비슷해 대부분 주민들은 관광산업과 농어업·광산개발 등 1차 산업에 기초한 가공업에 종사합니다. 일본 최대 탄광지역이 산재해 있어 홋카이도 철도는 탄광수송과 탄광마을 주민들과 도심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태백선과 영동선이 산업선으로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홋카이도 철도는 탄광철도 부설로부터 유래했습니다. 국유철도 시절 홋카이도 철도연장(전체 길이)은 4천킬로미터로, 우리나라 전체 철도연장보다 길었습니다. 가히 철도왕국 일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대부분 철도부설과 탄광개발은 식민지 조선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강제노동으로 이뤄졌습니다.

문제는 탄광산업의 몰락과 함께 줄어드는 인구로 인해 여객수송 채산성이 낮아진 반면 화물수송으로 인한 선로 보수비용과 지리적 조건에 따른 제설비용 등 고정비용이 높아졌다는 데 있습니다. 혹한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선로 관리비용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일본 본도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거리 해저터널인 세이칸 터널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도 부담이 됐습니다.

일본 남쪽에 위치한 섬지역인 JR규슈·JR시코쿠와 JR화물철도는 이런 이유로 분할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로부터 경영안정기금이라는 보조금을 받아 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경영안정기금 지급과 함께 분할된 각 철도회사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이는 선로 폐지와 가혹한 인력감축으로 이어졌습니다.

JR홋카이도의 경우 1987년 민영화를 전후해 1천500킬로미터에 달하는 노선이 폐지됐습니다. 1만4천명이던 조직이 6천800명으로 절반이 줄어들었지만 현재까지 흑자경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2012년 JR홋카이도가 309억엔(3천13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때 도쿄를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는 JR동일본은 3천228억엔(3조3천억원)의 흑자를 달성했고, 주주의 이익으로 전환됐습니다.

과도하게 줄어든 현장인력 대부분은 외주·하청·비정규직들이 채우게 되면서 철도사고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됐습니다. 정비불량으로 인한 차량고장과 잦은 탈선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011년 5월29일 삿포로로 향하던 슈퍼 오오조라 14호 특급열차가 세키쇼선 터널에서 탈선해 전소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하루가 지나서야 터널 밖으로 견인돼 나온 열차의 모습은 사고 당시 참상과 JR홋카이도의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 줬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슈퍼’ 특급열차를 보면서 세계 최고철도를 자랑하던 일본인들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얼마 후 JR홋카이도 사장은 “탈선 화재사고를 반성하고 기업풍토의 개선 등 모두 노력하는 중에 먼저 전선(戰線)을 이탈하게 돼 미안하다”는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분할 민영화 이후 홋카이도 철도현장은 매일매일 전쟁터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올해 1월15일 JR홋카이도 고문이 자살하는 등 비극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작소설 <철도원>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서 상영됐습니다. 주인공 오토마츠는 딸이 죽었을 때나 아내가 죽었을 때에도 호로마이역을 지켜온 철도원입니다. 폐선을 앞둔 지방선을 지켰던 주인공은 눈 내리는 역 구내에서 호로마이역과 함께 자신의 생도 마감합니다. 이 이야기가 일본국철이 1987년 4월1일자로 분할 민영화되기 전 마지막 겨울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고향 철도의 운명을 직감한 많은 철도노동자들은 홋카이도를 떠나 ‘당연히’ 흑자가 예상되는 JR동일본으로 이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이주로 지방공동화가 가속화됐고 지방철도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죠.

25년이 지난 지금 일본철도는 규모의 경제를 상실해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3개 섬 지역 철도회사와 화물철도회사에 대한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보조금은 줄어들지 않았고 수익을 내는 본도 3개사의 이익은 정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북쪽 JR홋카이도는 JR동일본과 통합하고 남쪽 JR규슈와 JR시코쿠는 JR서일본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JR동일본과 JR서일본의 주주들이 이를 받아들일까요. 민영화가 위험한 것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