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경제건설에 이바지했고, 건강이 나쁘다. 따라서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참으로 허탈한 선고다. 지난주를 달군 뉴스다. 한화 김승연·LIG 구자원 회장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선고 내용이다.

먼저 이 판결은 사실상 법 위반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경제범죄에 관해 집행유예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승연 사건 1·2심에서는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 마지노선인 징역 3년형을 선택했다. 양형기준을 어기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가 바로 “경제건설에 이바지했고, 건강이 나쁘다”란다.

실제 피고인은 이 사건 이후 많은 병을 앓고 있어 구속집행인 정지된 상태이기도 하다. 계획대로 딱딱 맞아 들어가고 있다.

이번 판결에 분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헌법이 정한 시장경제원리에 반한다. 회사운영의 원리를 모르고 있다. 큰 기업을 일으켰으니 “경제건설에 이바지했다”는 표현에는 회사가 회장 개인 소유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주식회사가 그런가. 다수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지 않는가.

노동자 입장에서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경제건설에 이바지했고, 건강이 나쁘다”고 한다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노동자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야말로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장본인 아닌가. 아픈 이야기지만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수는 셀 수조차 없다. 그렇기에 건강이 좋을 리 없다. 회장님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렇다면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같은 형량이 적용돼야 한다. 집행유예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말은 그저 법전에만 있다. 노동권 보장은커녕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수사를 당연시하거나 거액의 배상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을 압류하는 일이 다반사다. 회장들이 누리는 구속집행정지는 꿈같은 이야기다. 이번 판결에 분노하는 이유다.

노동사건을 보자.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한 호평이 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교조 설립신고 철회가 효력이 없다고 했고, 차이는 있었지만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무조건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보름 전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선고한 항소심 판결은 정리해고 제도를 바로잡는 이정표가 될 만하다.

이에 비해 논란을 재점화한 통상임금 판결이나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등에 대한 벌금형 선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판결들이 나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다수다.

법원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다 보니 무언가 근원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비판을 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법원만 비판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만약 경제범죄에 관한 양형이 법률로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제도가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결과물을 법원이 혼자서 책임질 수는 없지 않는가. 틈을 만들어 둔 자의 책임 또한 따져 봐야 한다.

결국 이번 판결에 있어서는 입법을 해야 하는 자들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각자의 입맛에 따라 판결을 비판할 뿐 아직도 제도를 제대로 갖출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번에도 책임회피로 넘어갈 모양이다.

노동문제도 비슷한 양태를 보인다. 상대적으로 감독기관에 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 체불임금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환경이다. 부당노동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노동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진 예는 매우 드물다. 파업현장에 대체근로를 사용하지 말라는 감독이 제대로 이뤄진 경우가 있던가.

그리고 감독기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할 때마다 법원을 찾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원을 그렇게 욕하면서도 법원을 찾고 있다. 이제는 아예 노동법원을 설립하자는 의견이 대세다. 어렵거나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노동법원을 설립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많은 사건을 능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근거를 대신할 지경이다.

문제는 법원에 있지 않다. 법원을 찾지 않고도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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