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번주 강원도를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시설물 붕괴 등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산악지역에서 고립된 주민들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도로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음은 물론 열차운행이 취소되거나 지연됐습니다. 특히 화물열차 운행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충청북도 제천시와 강원도 태백시를 연결하는 태백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역을 운행하는 산악철도입니다. 영월·예미·함백·사북·고한역 등 탄광마을을 이어 주는 태백선은 민둥산역에서 정선선을 만나 아우라지·구절리역까지 이어지고 태백역에서는 동해·정동진·강릉역까지 영동선이 연결돼 있습니다.

강원도 지역의 무연탄과 시멘트 수송을 위해 건설된 태백·영동선은 일제 강점기에 부설된 경부·경의선과 달리 해방 후 건설된 노선으로 산업선이라고도 불립니다. 지금은 무연탄 수송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동해나 삼척에서 생산되는 시멘트는 태백·영동선을 거쳐 전국으로 수송되고 있습니다.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영동선은 경치가 아름다워서 관광열차로도 인기가 있지만 경의선과 함께 동해북부선으로 남북철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노선입니다.

태백선 초입에 쌍용역이 있습니다. 지난 철도노조 파업 당시 국토교통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하루 승객이 15명밖에 안 되는데 역무원은 17명이나 근무하고 2010년 철도 운송수입이 1천400만원인 데 반해 인건비는 11억3천900만원이었다며 철도공사 방만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한 역입니다.

동아일보는 국토부 자료를 근거로 ‘부실기관차 코레일’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고, 국토부는 SNS상에서 13번이나 이 기사를 리트윗하며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TV조선 등 종편방송은 얼치기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연일 철도노동자들을 귀족이니 황족이니 하면서 맹비난했습니다. 시멘트와 양회 화물수송을 주요 업무로 하는 쌍용역의 2010년 수입은 화물수입 95억9천600만원, 여객수입 1천900만원을 합한 96억1천500만원이었습니다. 24시간 근무해야 하는 철도현장은 3조2교대로 운영돼 한 조가 하루 12시간씩 교대로 근무합니다. 따라서 1일 근무자는 17명이 아니라 5명입니다. 태백·영동선에 근무하는 역무원이나 시설·전기원들은 야간근무조일 경우 오전 9시에 퇴근해 당일 저녁 7시까지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퇴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퇴근한 뒤 집에서 한숨 자고 나면 바로 출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기자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취재를 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사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년 전 이맘때인 지난해 2월6일 오전 제설작업을 하던 이은우 부역장이 다가오던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해 순직했습니다. 그는 정년을 불과 4개월 남기고 청춘을 바쳤던 철길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역무원들은 제때 눈을 치우지 않으면 선로전환기나 다른 기기들이 오동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눈과 씨름해야 합니다. 무거운 화물열차를 주로 상대해야 하는 태백·영동선에 대한 유지보수도 다른 구간에 비해 훨씬 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구간에 근무하는 선배노동자들은 “열차는 철도노동자의 어깨를 딛고 달린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민영화 성공사례라고 하는 일본철도에서도 최근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5일 JR홋카이도 여객철도(주) 제2대 사장을 지낸 사카모토 신이치 고문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1년 9월 나카지마 나오토시 사장 자살에 이어 두 번째로 발생한 JR홋카이도 경영진의 자살은 분할 민영화 이후 계속되는 적자누적과 이어진 사고와 직결돼 있습니다.

1987년 전국 단일망으로 운영되던 일본국유철도(국철)가 6개의 여객철도(주)와 1개의 화물철도(주)로 분할 민영화될 당시 가장 큰 쟁점은 과연 3개 섬 여객철도회사와 화물철도회사의 경영정상화가 가능한지 여부였습니다. 본도에 위치해 도쿄·오사카·나고야 등을 거점으로 하는 3개 여객철도(주)는 흑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출발했습니다. 반면 홋카이도·규슈·시코쿠 지역 여객철도회사와 화물철도회사는 본도 노선으로부터 ‘교차보조’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시 국철 총재를 비롯한 경영진은 민영화가 불가피하다면 오히려 전체를 민영화하라고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민영화만큼 위험한 것은 철도의 분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국철 분할을 통해 국철노동조합(국노)을 조각내야 한다고 생각한 나카소네 내각이 그러한 요구를 수용할 리가 없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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