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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제 김헌정 27] 4년2개월 만에 단협 체결한 성남분회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인간적 모멸을 견디며 살아온 지방자치단체 비정규 노동자들. 고 김헌정 열사는 이들의 눈을 띄우고 희망을 제시했던 등대였습니다. 1998년 환경미화원 노동자들과 첫 인연을 맺은 후 10여년의 조직활동 끝에 2천50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민주연합노조를 세웠습니다. 민주연합노조는 그의 열정과 헌신을 그리는 마음에 2013년 5월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나의 형제 김헌정’이라는 평전을 펴냈습니다. 비정규직과의 연대가 화두가 된 요즘, 그의 정신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매일노동뉴스>는 글쓴이인 박미경 작가와 책을 발행한 민주연합노조의 양해를 얻어 본지에 김헌정 평전을 매일 1회씩 연재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깊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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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전국단일조직을 향해

경기도 최초의 상용직 집단교섭·정치판을 빗자루로 쓸어버려라!·교육! 교육! 그리고 또 교육!·경기도노조의 새로운 장수들·김헌정, 또 구속되다·“여보, 나는 당신이 필요해!”·하루도 쉬지 않는 경기도노조·내 시선은 전국을 향하고 있다·“우리는 민주노동당”·‘NL’이냐, ‘PD’냐·기다리던 우군,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공무원노조·환경미화원은 공무원보다 적게 받으라는 법이 있나?·이상관 분회장의 신조 “내 밥숟가락은 내가 지켜야”·배홍국 해복투위원장의 다짐 “나는 제일 나중에 복직하겠다!”·4년2개월 만에 단협 체결한 성남분회·지부에게 조합비 50%를 달라?·끝까지 괴롭히는 청소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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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2개월 만에 단협 체결한 성남분회

복수노조에 걸려서 단체교섭 한 번 하지 못한 성남시청분회에 드디어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경기도노조 성남시청분회가 기업별 노조인 성남시청노조와 조직형태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어 복수노조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경기도노조는 성남시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응낙가처분 신청을 했었다.

수원지방법원에서는 노조가 패소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이 원심 판결을 깨고 경기도노조 성남분회는 복수노조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은 판결의 근거로 △성남시청노조와 성남시청분회가 기업별 노조와 지역별 노조로 그 조직 형태가 다르다는 점 △성남시청분회의 경우 단체교섭권이 경기도노조에 있으며 분회는 독자적 단체협약 체결권을 갖고 있지 않아 기업별 노조에 준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형식상 두 노조의 가입대상이 중복되지만 실제로는 성남시청노조의 단체협약이 미화원을 제외한 수로원·준설원·검침원 등에 대해서는 근로조건을 규정한 단체협약이 없다는 점 △성남시청노조가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 등에 있어서도 수로원 등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성남분회는 설립 직후부터 수로원 등의 상용직 조직화에 공을 들였다. 환경미화원들의 절반 이상이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터라 조직대상을 다변화하지 않고서는 노조의 힘을 기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치단체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경기도노조의 조직방침을 성실히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복수노조 문제를 돌파하는 결정타가 된 것이었다.

성남시청분회 조합원들은 환호했다. 단체교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싸우던 지난 3년8개월 동안 그들은 쓸 수 있는 투쟁방법은 다 써 봤다. 백완기 분회장과 문공달 부분회장은 시청에 천막농성장 하나 세우기 위해 부탄가스와 라이터까지 들었다.

2003년 각 분회별로 천막농성에 돌입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성남분회 조합원들은 시청 앞마당에 천막을 쳤다. 경기도노조를 인정조차 하지 않던 공무원들은 곧바로 천막을 걷어 내려고 했지만 금강역사처럼 천막을 지키는 백완기 분회장과 문공달 부분회장의 서슬에 놀라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백완기 분회장은 휴대용 부탄가스통과 시너로 보이는 액체가 반쯤 든 소주병을 테이프로 감아서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라이터를 든 채 결연한 표정으로 천막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문공달 부분회장은 마침 천막 앞을 지나가던 국장급 공무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환경미화원은 사람도 아냐? 인사를 하면 받아 줘야지 왜 인사도 안 받고 무시해?”

공무원들은 천막을 걷어 내다가 자신들이 다칠까 봐 천막 주변만 맴돌았다. 그런데 백 분회장이 손에 든 소주병에는 시너가 아니라 물이 들어 있었다. 공무원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몸을 사렸던 것이다. 그들은 뒤늦게 자신들이 속은 줄 알고 천막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백완기 분회장과 문공달 부분회장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벽면에 딱 붙어 섰다. 뜯어내든 말든, 그러다 천막 안에서 다치든 말든 개의치 않고 꼼짝하지 않는 두 늙은 투사 앞에서 공무원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성남분회 조합원들은 끈질기게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작은 전투를 줄기차게 벌여 왔다. 야간수당·휴일수당·체불임금 등을 노동부에 진정해 받아 낸 것은 물론 50대 여성조합원의 생리휴가비도 지급받았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천박한 인식이 드러나기도 했다. 생리휴가비를 지급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담당 공무원은 여성조합원들의 나이를 들먹이면서 “생리를 하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 오라는 전근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조가 성희롱이라며 반발하자 문제가 커질 것을 두려워한 담당 공무원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예전에는 담당 공무원들이 환경미화원들에게 목장갑을 지급했다. 그런데 목장갑은 장갑과 손이 따로 놀기 때문에 비질하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자기 돈으로 반코팅된 장갑을 구입해 사용했다.

그랬던 조합원들이 노조를 알고부터는 “반코팅된 장갑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알면서도 당하고, 몰라서도 당했던 수많은 부조리들에 대해 조합원들은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면서 분회를 유지해 왔다. 성남분회 조합원들의 이러한 노력과 고등법원의 판결이 합쳐져 드디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성남시는 대법원에 항소를 했다면서 그 결과를 보고 단체교섭에 응하든지 말든지 하겠다고 나왔다. 법적 다툼으로 시간을 끌려는 작전이었다. 노조는 재차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성남시가 이에 불응하자 단체교섭 간접강제신청을 법원에 냈다.

이것으로 법률투쟁은 최고 수위에 올랐다. 이제 성남분회 조합원들이 실력행사에 나설 차례였다. 8월 19일부터 시청 로비 앞 준법투쟁이 한 달 동안 진행됐다. 준법투쟁에 시달리던 성남시청은 소음 측정까지 하며 노조를 굴복시키려 했지만 노조는 요지부동이었다.

10월 8일 수원지방법원은 ‘경기도노동조합과 단체교섭 불응시 1일 20만원씩 노조에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성남시청은 다른 수가 없었다. 담당 공무원은 단체교섭에 응하겠다는 공문을 지참하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경기도노조 사무실을 찾았다.

10월 28일 드디어 성남시청과 경기도노조 성남분회 간의 단체교섭이 열렸다. 백완기 성남분회 분회장은 “이 자리에 오는 데 3년8개월이 걸렸습니다”고 운을 뗐다. 성남시 과장은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지만 단체교섭을 한 달에 한 번씩 하자고 해서 조합원들을 다시 분노하게 만들었다.

단체교섭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어도 성남시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노조의 단체협약안 전문 가운데 ‘조합원의 정치·경제·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라는 대목에서 공무원들은 ‘정치’를 붙잡고 늘어졌다. 성남분회 조합원들은 시장실로 몰려가서 “단체교섭에 시장 나와라”고 요구하고 “시장이 못 나오면 단체교섭하는 공무원들을 바꿔라”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교섭 막판에 가서는 정년이 쟁점이었다.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성남시청노조도 그 무렵 단협을 진행했는데 정년 만 60세로 타결을 짓고 말았다. 공무원들은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정년이 만 60세인데 민주노총 조합원들만 만 61세로 정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다.

노사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시장과 분회장 면담이 진행됐다. 그런데 이대엽 시장은 단체협약은 제쳐 놓고 난데없이 다음 지방선거 때 노조에서 출마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성남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문공달 부분회장은 “시장은 환경미화원들 돈 떼어 먹은 도둑놈”이라면서 본인 선거운동보다 시장 낙선운동에 주력했다.

성남분회의 낙선운동 결과 현직 시장인 김병량 후보는 낙선했고 이대엽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니 이대엽 시장으로서는 성남분회 조합원의 출마 여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성남분회가 후보를 내서 낙선운동을 하게 되면 이번에는 자신이 김병량 후보처럼 되고 만다.

그런데 성남분회는 단체협상에 주력하느라 1년6개월 뒤의 지방선거 출마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백완기 분회장이 “후보 안 냅니다”고 받자, 이대엽 시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자치단체도 61세인데 우리도 해야겠지…….”

시장의 한마디에 정년 문제는 해결됐다.

자치단체와 교섭을 하다 보면 이런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꽤 생긴다. 오산의 박신원 시장도 그랬다. 공무원들은 단협에 ‘민간위탁을 할 경우 노조와 합의한다’는 문구를 절대로 넣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박 시장이 나서 노조 손을 들어줬다. 노조 싫어하기로는 한나라당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 없는 자민련 소속 시장이었는데도 말이다.

성남분회 조합원들은 싸우고 또 싸워서 2005년 6월 29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경기도노조에 가입한 지 4년2개월 만이었다. 단체협약 체결 서명을 하는 홍희덕 위원장의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성남분회 조합원들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성남시는 단체협약 체결 이후에도 성가시게 굴었다. 성남분회 전임자는 문공달 부분회장이었다. 경기도노조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백완기 분회장은 전임에는 별 뜻이 없었다. 성남분회 조합원들도 문공달 부분회장을 밀었고 백 분회장·문 부분회장 모두 이런 결정에 만족했다.

그런데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이 문공달 부분회장은 전임자를 하면 안 된다고 공무원들에게 귀띔을 하자, 공무원들은 그 말만 듣고 문 부분회장에게 전임자를 바꾸라고 요구했다. 문 부분회장은 매우 공격적으로 조합원 확대사업을 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노총 조합 간부들은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공무원들 역시 사사건건 시청을 물고 늘어지는 문 부분회장이 피곤했을 것이다.

문공달 부분회장은 노조 간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런 사정을 전달했다. 김헌정은 가만히 듣고 있더니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미친놈들 아닙니까. 한 번만 더 그러면 시청 국장 인사권하고 바꾸자고 하십시오.”

문공달 부분회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전임자 문제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던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전해 줬다. 전임자 선임은 노조의 고유권한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노조에 훼방만 놓던 공무원들은 코가 쑥 들어갔다.

지부에게 조합비 50%를 달라?

2004년 경기도노조는 안정적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노동계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눈으로 목격한 조합원들은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동력이었다. 홍희덕 위원장님의 안정적인 지도력과 간부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 노조는 비상할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2004년 연말 경기도노조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총 14개 항의 질문을 제시하고 4개의 보기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질문에는 △임금인상에 만족하는가 △주 5일제 합의안에 만족하는가 △교섭 진행 상황을 알고 있는가 등의 주제가 포함됐다.

설문조사에서 조합원들은 2004년 조합 활동 가운데 가장 좋았던 대목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서 원내진출에 기여한 점을 꼽았다. 조합원의 33.3%가 이렇게 대답했다. 전체 조합원이 함께 교육받고 투쟁한 점이라고 답한 조합원들이 23.2%, 부분적인 주 5일제 쟁취라고 대답한 조합원들은 21.9%, 임금인상이 가장 좋았다는 조합원들은 11.6%였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조합원들이 민주노조운동을 확실히 하고 있고, 이에 만족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노조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 2001년 안산과 2004년 안양 투쟁을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안산과 안양, 둘 다 청소업체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이 사용자 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노조에 가입하자마자 해고 사태가 벌어진 것도 비슷하다.

안산투쟁은 우리 노조만의 ‘죽기 아니면 살기’ 식 총력투쟁이었다. 그런데 안양 투쟁 때는 공무원노조 안양시지부가 엄호했고, 민주노동당 안양지역위원회가 주도해서 구성한 시민사회노동단체 공대위가 측면 지원했다.

안산투쟁 때는 민주당 국회의원 항의방문과 농성을 수십 차례 했지만 안양투쟁 때는 이럴 필요가 없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안양시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사용자 측과 시청을 압박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게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정치학습의 현장이었다.

투쟁의 성과 역시 안산보다 안양이 조금 더 나았다. 핵심적으로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조합원들이 단결력을 높이면서 기운차게 투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고대하던 우군의 등장은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키웠을 뿐 아니라 사기를 높여 대열을 튼튼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효과는 거저 생긴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경기도노조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5명의 후보를 냈고 2004년 3월 집단입당식 이후 2004년 10월까지 700여명의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조합원의 절반이 입당한 셈인데, 이는 민주노총 내에서도 흔치 않은 수치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우리 노조는 후보를 내지는 않았지만 조합원들은 그 이상으로 뛰었다. 선거운동 기간 의정부·고양·안양·수원에서는 매일 7∼10명의 조합원들이 연차와 월차휴가를 내고 각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나가 선거운동에 결합했다. 선거사무실 청소부터 전화 선거운동에 후보자 수행까지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도왔다.

선거가 끝나자 민주노총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민주노총은 4월 집행부 현장순회, 6월 총력투쟁 등으로 투쟁동력을 점차 끌어올려 연말 국가보안법 폐지, 비정규직 개악입법안 폐지 등을 위한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힘 있는 총연맹의 모습을 되찾으려 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유리한 정세를 잘 활용해서 이제 더 큰 과제, 다름 아닌 민간위탁 저지와 고용적정인원 확보, 나아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치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더 큰 꿈을 꿔야 할 시기였다. 그런데 우리 노조 내부의 일부 간부들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2005년 2월 25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화성분회장이 대회를 유회시키려고 작정을 했는지 대회 직전에 빠져나갔고 그를 따라 화성과 광명분회 소속 대의원들이 퇴장을 했다. 모두 9명의 대의원이 이탈했는데, 재적 대의원 61명 가운데 43명이 참석해서 대의원대회는 성사됐다. 그들의 퇴장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다. 노조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2004년 12월 중앙운영위원회에 참석한 화성분회장은 △지부가 조합비 50%를 걷고 △지부의 조합비는 지부가 자율적으로 사용하며 △100인 이상 자치단체 분회는 지부로 자동전환 할 것 등을 내용으로 규약을 개정하자는 의견을 냈다.

노조는 지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업비로 조합비의 20% 가량을 배정한다. 사업비의 경우 월정액 한도가 정해진 지부장 및 분회장 활동비, 통신비 보조금 등 사용내역이 명문화돼 있다. 지역 간담회비 같은 경우에도 내역을 상세히 밝혀야 한다. 지부 승인권은 중앙운영위원회가 갖고 있다.

화성분회장의 의견은 중앙운영위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노조의 회의 규정은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과반수 출석으로 성립하고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나 역시 화성분회장의 의견에 대해 토론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것은 협상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화성분회장이 제기한 대로 지부가 조합비의 50%를 가져가면 전투적이고 끈질긴 경기도노조가 될 수가 없다.

2004년 1월부터 10월까지 안양분회 조합원 86명이 낸 조합비는 2천500여만원이다. 같은 기간 안양분회 전체도 아니고 청소업체에 다니는 조합원 58명이 투쟁을 하면서 지출한 투쟁사업비가 2천만원을 넘는다. 전체 조합원이 임단협 문제로 경기도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오후에 안양 집중투쟁을 하는 데 들어간 예산 1천500여만원을 제하고도 말이다.

자치단체가 우리 노조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재정과 인력을 집중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이 십자포화를 퍼붓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보기에 50여명의 조합원이란 무시해도 좋을 만한 숫자다. 그런데 그 50여명을 위해 경기도 전역에서 조합원 1천500명이 수십 대의 버스를 타고 몰려오는 인해전술에 맞닥뜨리게 되면 자치단체들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이런 투쟁은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저들이 물러설 때까지 계속된다.

2004년 안양투쟁으로 청소업체 사용자들과 자치단체에 경종을 울렸음은 물론이고, 우리 노조로서는 잘 싸워 놓고도 결국 흩어진 2001년 안산 청소업체 투쟁에 대한 설욕전을 단단히 한 것이다. 안양투쟁 이후 조합원들은 청소업체와 싸워도 이길 수 있구나 하면서 승리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다른 자치단체들의 청소업체 사용자들이 함부로 날뛰지 않고 자치단체도 청소업체와 결탁하지 못하고 관리·감독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평택의 조합원 34명은 조합비를 내지 않는다. 민간위탁에 반대하면서 업체로 가지 않고 복직을 기다리면서 생계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투쟁이란 노조를 탈퇴하지 않고 다른 일자리를 구해 생활비를 벌면서 해고 조합원들을 지원하는 투쟁방식을 말한다. 노조는 평택의 복직투쟁을 이끌고 있는 6명의 해고 조합원들에게 다달이 6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평택투쟁 사업비로도 2004년 1월부터 10월까지 550만원을 지출했다.

나는 노조의 형편이 더 좋다면 경기도에서 민간위탁 저지 방어선을 치고 있는 평택분회에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지원해서 민간위탁의 전도사라는 김선기 전 시장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평택시를 상대로 끝까지 싸워 보고 싶다. 평택분회는 조합원 전체의 고용안정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성분회장의 의견대로 각 지부가 조합비를 50%씩 가져가고 따로따로 쓴다면, 조합원들이 체불임금 소송으로 받은 금액의 20%를 투쟁기금으로 내지 않는다면, 어느 분회나 지부든 이런 투쟁은 가능하지 않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사용자 측에 각개격파 당해 왔다. 노동자의 가장 큰 무기는 단결이고 이 단결은 철의 규율 없이는 조련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이길 때까지 우리는 노동자의 군대다.

다른 꿈을 꾸는 분회는 화성과 광명만이 아니었다. 파주시설관리공단의 정재철 부분회장 등 4명이 2005년 5월 31일 노사합의서에 서명해 버렸다. 노조 분회는 단협 체결권이 없다. 그들은 노사합의로 정년으로 해고된 조합원 3명과 징계 해고된 분회장을 복직시켰다고 변명했지만, 사실관계를 따지면 법적으로 복직 명령이 내려진 뒤였다. 이들은 정년을 1년 늘렸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2004년 파업투쟁으로 이미 쟁취한 것이었다.

멀쩡히 싸워서 이긴 내용을 두고 자신들이 협상해서 따냈다고 주장하면서 정재철 부분회장 등이 도장을 찍은 노사합의서에는 시간외수당 등 체불임금 9천여만 원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파주시설관리공단은 체불임금을 절대로 못 준다고 버티고 있었는데, 이걸 끝까지 안 주면 공단 이사장은 처벌을 받는다.

법적으로 다 승소했으니 분회에서 요구하고 안 되면 싸워서 쟁취하면 될 것을 알량한 권력놀음에 취해서 몇 명이 자기들끼리 몰래 교섭을 한답시고 이것저것 내어 주고는 조합원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하니 분통이 터졌다. 설사 조합원들에게 당장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줬다 한들 그러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파주의 노조 사무실 열쇠를 바꿔 버리고 그 열쇠는 파주시청에서 일하는 조합 간부가 관리하도록 했다. 정재철 부분회장에 대해서는 절차를 거쳐 6월 30일자로 제명했다. 그런데 정재철 부분회장 등 반조직 행위를 한 4명은 조합원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직적 탈퇴까지 시도했다. 노조의 상근간부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해서 조합원들이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분회 간부라는 자리를 악용해 본조와 조합원들 사이를 이간질시켜 놓은 시간이 꽤 오래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재철 씨는 2003년 내가 구속됐을 때 투쟁이 과도하다고 비판했던 화성과 광명의 간부들과 교류하면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정재철 씨 등은 상급단체인 공공연맹으로 연락을 해서 그쪽에서 회의를 해야 할 사정이 생겼으니 사무실을 빌릴 수 없겠느냐 물었다고 한다. 이 전화를 받은 공공연맹 상근자는 본조인 경기도노조에 연락을 해 주지 않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놀랐다. 경기도노조가 무슨 어용노조란 말인가.

7월 12일 공공연맹 회의실에서 중앙운영위를 열고 파주시설관리공단 조합원들이 제기한 노조회계 문제에 대해 관련서류 일체를 다시 제출하고 설명했다. 우리 노조는 회계감사를 1년에 2번 한다. 선출된 회계감사 3인이 회계감사를 진행할 때 각 분회별로 1인씩 참석한다. 이제까지 노조의 사무처장은 대체로 현장 출신의 간부가 맡았다. 맨 처음에는 홍희덕 사무처장님이 수고를 하셨고 그 다음에는 이미숙 사무처장이 1년을 하다가 공공연맹 부위원장으로 선출돼 2005년 당시에는 송양권 사무처장님이 맡고 있었다.

정재철 씨 등은 내가 노조 돈으로 빌딩을 샀다는 허위사실까지 퍼뜨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파주의 일부 조합원들을 믿었다. 이게 노조에 돈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지부에 많이 내려보내지 않느냐는 불만에서 나온 유언비어다.

9월 들어 정재철 씨 등은 파주시설관리공단 조합원들을 모아 조직변경을 하는 총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 나와 상집 간부들이 찾아갔다. 조합원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고 이런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파주시설관리공단 기업별 노조를 만들었고 파주 지역신문에 “강경일변도의 투쟁을 지양해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다”며 조직변경 이유를 밝혔다.

소수 분회 간부들의 이간질로 조직 내부에서 소모전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것을 막고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경기도노조를 하면서 ‘나’라는 개인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내가 못할 일은 없다.

우리 노조 안에서 이들이 소수이고 또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갈 사람은 가라고 하면 결코 안 된다. 이런 문제로 많은 의문을 가질 조합원들, 또 조합원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을 현장의 간부들을 위해 화성·광명·파주의 그 간부들이 정말 노리는 게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화성분회장 등은 노조를 탈퇴한 뒤에 한국노총 쪽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곧 흐지부지됐고 화성분회 조합원들은 노조만 잃고 말았다. 광명의 경우 화성 쪽의 부추김으로 행동에 나섰기에 나와 본조 간부들의 설득 결과 조합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경기도노조에서 2005년 들어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기업별 노조의식에서 비롯된 이기심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는데, 그렇다면 이른바 ‘사회적 교섭’ 안을 놓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적으로 파행을 거듭한 사태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한 사회적 교섭에 찬성하는 쪽이었다. 노동조합의 두 가지 전술은 교섭과 투쟁이다. 내셔널센터인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을 하지 않으면 민간위탁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대체 누가 어떻게 막는가.

민주노조진영 내의 불신과 대립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었다.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쪽은 사회적 교섭이 노사정위에 들어가는 수순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적 교섭과 노사정위 참여를 분리해서 다수의 조합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을 끌어내야 했다. 폭력으로 대의원대회를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2005년 3월 15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집행부는 연맹이나 단위노조별로 질서유지대를 차출했다. 앞서 민주노총 임원선거 때 이수호·이석행 후보조를 지지했던 우리 노조에서도 홍희덕 위원장님을 비롯한 간부들이 질서유지대로 나섰다. 우리 간부들은 시늉만 내지는 않았다. 대부분 50대가 넘은 간부들은 대의원대회 단상에 올라가 대회를 파행시키려는 조합원들을 꾸짖고 말렸다.

경기도노조 간부들은 대의원대회 시작 전에 “젊은 노동자들 버릇을 고쳐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것은 나나 우리 노조 간부들에게 낯선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단결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어제의 동지들과도 비타협적으로 싸웠다. 이 또한 경기도노조의 기풍이다.

작가 박미경
<계속 이어짐>

박미경 작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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