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를 분할하는 이유로 철도공사가 최근 몇 년간 부채비율이 급증했고,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신규노선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철도공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희대의 사기극 인천공항철도 사건에 이어 또 다른 철도 잔혹사, 용산역세권 개발과 철도부채의 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2005년 1월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로 구조개편될 당시 고속철도 관련 부채가 한국철도시설공단에 6조8천억원, 철도공사에 4조5천억원이 각각 이전됐습니다. 철도공사는 주요자산으로 역과 차량 및 운영 관련 기지 등을 국가로부터 현물출자를 받았습니다. 시설공단은 선로와 전차선, 교량과 터널 등 국가 소유 철도에 대한 시설관리권을 갖게 됐습니다. 철도공사는 철도시설물을 이용해 운송사업을 하는 대가로 시설공단에 선로사용료를 지불하고, 시설공단은 새로운 철도노선을 건설하거나 기존선을 개량하는 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철도산업에서 운영과 건설 분리라는 이른바 상하분리 정책입니다.

철도공사는 출범부터 무거운 부채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을 고민했습니다. 만약 구조개편 이후에도 철도공사나 시설공단의 부채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상하분리 정책 실패라는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2006년 8월 정부는 철도경영정상화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철도공사는 이에 근거해 용산 차량정비창을 국제업무지구로 재개발하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차량정비창은 토지대금만 5조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철도공사 핵심자산이었고, 이를 활용해서 고속철도 빚을 갚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철도공사 계획에 서울시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자신의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용산재개발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허가조건으로 내걸었고, 철도공사는 이에 반발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는 등 양측 갈등이 계속됐습니다. 철도공사 입장에서 한강르네상스 계획으로 인해 2천200가구나 되는 서부이촌동지역 재개발까지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졌고, 주민보상 문제라는 새로운 뇌관이 발생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결국 2007년 8월 서울시와 철도공사는 통합개발하기로 합의하고, 같은해 12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바벨탑의 저주가 잉태된 것입니다.

문제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주범인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본격화됐습니다. 2009년 3월 토지매각대금이 연체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삼성은 주관사업자 지위를 반납하겠다고 하면서 일은 일파만파 커질 조짐을 보였습니다. 그때라도 철도공사가 토지소유주로서 토건자본의 허황된 탐욕을 중단시켰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그들의 ‘배째라’식 놀음에 놀아났습니다. 2010년까지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던 철도공사는 2011년 7월 입장을 급선회해 토지비 납부를 3년간 유예해 주고, 1조3천600억원의 토지분납 이자를 탕감해 주는 한편 4조원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을 선매입하는 정상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땅주인인 철도공사가 건설비용을 내서 건물을 세우고 그 건물을 철도공사가 우선 매입하고 시행사들은 사무실을 분양해서 번 돈으로 토지대금을 납부하라는 것입니다. 인천공항철도 사기극과 다를 바 없는 특혜가 토건자본들에게 헌납됐습니다. 그러자 사업 시행자인 드림허브는 100층 높이 랜드마크 빌딩 시공사로 삼성물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습니다. 2009년 부동산 거품이 빠지자 나갈 궁리만 하던 삼성이 특혜가 제공되자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2011년 10월11일 인기가수들의 축하무대와 축포가 터지는 가운데 용산국제업무지구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허준영 당시 철도공사 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112년 한국철도의 산증인이었던 용산정비창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환골탈태하게 됐다”며 자신의 공을 한껏 치켜세웠습니다. 그는 두 달 뒤 자신이 해고한 고 허광만 부곡기관차지부장의 빈소를 끝내 외면하고 18대에 이어 19대 총선 출마를 위해 철도를 떠났습니다. 후임 정창영 사장은 “전임 사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용산사업을 왜 이렇게 민간출자사들과 계약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철도공사는 일방적으로 자금만 지원하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조항이 하나도 없는 계약조건은 부당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서울지역 최대 표차로 낙선한 허준영씨는 지난해 3월13일 삼성떡값 공개를 이유로 희생된 노회찬 의원 지역구에 재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같은날 용산개발 사업 시행자 드림허브는 최종 부도처리됐습니다. 경찰 출신 낙하산 사장이 재임한 2년10개월 동안 철도공사는 만신창이가 돼 버렸습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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