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임금은 곧 노동의 값이다. 과거에는 근로시간 위주로 임금이 결정됐는데, 앞으로는 성과와 직무 중심으로 임금이 결정돼야 한다.”

지난 13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지난해 통상임금과 휴일근로 논란이 벌어지면서 이참에 임금체계를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말이다.

나는 장관의 이 말이 ‘임금은 근로의 대가’라는 근로기준법 정의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우리 사회 임금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화물운송이나 건설기계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인지가 다툼이 될 때, 이들이 받는 보수의 성격이 논란이 되곤 한다. 이들은 사용자로부터 근로시간에 따른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작업 결과에 따른 대가를 받기 때문에 이는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 아니고 따라서 이들을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흔한 논리다.

여기에는 전형적인 노동의 모습은 사용자가 노동시간을 통제하고 임금은 그 노동시간에 근거해 정해지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관념이 놓여 있다. 사실 이것이 표준이고 ‘정규’였던 시절도 있었다. 연봉제나 성과급의 확산으로 이러한 표준에 변화가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근로시간은 임금 액수를 결정하는 일차적 기준이고 그것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시간제 노동자의 예를 들어 보자. 노동법에서 말하는 ‘균등대우’나 현재 정부가 ‘차별 없는 시간제 일자리’라고 말하는 것에는 사실 ‘비례적 보호 원칙’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하루에 4시간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에게 하루에 8시간 일하는 전일제 노동자의 임금의 절반을 지급하는 것이 여기서의 ‘균등대우’다. 임금은 노동시간에 근거해 정해져야 하고, 노동시간이 짧은 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이다.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어떠한가. 파업 기간 동안 노동자가 일하지 않았으니, 즉 노동시간이 0이므로 그 기간 동안 임금을 지급할 의무를 사용자에게 지우지 않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다.

이렇게 노동시간이 임금의 일차적 기준으로 여겨지다 보니, 사용자는 ‘임금을 지불해야 할 노동시간’을 어떻게든 줄이려 하게 된다. 중소하청업체가 밀집해 있는 공단에서 사용자들이 정해진 출근시간 이전에 노동자들이 출근해서 청소하고 작업준비를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나, 청소노동자들이 사무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인 새벽에 청소를 마치고 낮 시간에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휴식할 것 또는 휴식한 것으로 할 것을 강요당하는 것이 그런 예다. 더 나아가면 홈플러스처럼 10분 단위 근로계약 방식으로 근무준비 시간이나 업무교대 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삼성전자서비스처럼 분 단위 노동시간 산정으로 사용자가 정한 업무처리 시간 이외에는 아예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묘한 방법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임금을 지불해야 할 노동시간을 조작하는 것보다 한층 더 교묘한 방식이 ‘성과’나 ‘직무’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체계다.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성과’나 ‘직무’가 낮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준다는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비슷한 업무를 하거나 함께 일하는 경우 이들의 노동시간이 비슷하거나 심지어 비정규직이 더 오랜 시간 일하더라도, 성과급을 줄 때는 차별을 두는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직무’가 다르기 때문에, 혹은 ‘책임’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이 법적으로는 ‘차별’로 인정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서울시가 직접 고용하기로 한 청소노동자 사례처럼 이들의 ‘직무’에 적절한 임금 수준이 따로 정해지기도 한다. 서울시 청소노동자의 직무급은 월 153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이들의 노동의 값은 월 153만 원이라고 결정하는가.

앞서 노동부 장관의 발언은 나에겐, 노동시간을 조작하는 것으로 임금을 줄이기 어려워진 경우 아예 노동의 값을 조작하는 것으로 임금을 줄이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과연 누가 어떤 노동의 값을 결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공정한가.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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