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장)
대통령 후보 시절 박근혜씨는 “국민이 반대하는 철도 민영화는 안 하겠다”고 공약했다. “지키지 않는 약속은 아예 하지 않고, 한 번 한 약속은 정치생명을 걸고 지키겠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60% 이상의 반대여론(지난해 12월1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대선 1주년 특집으로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철도 민영화의 첫 단계라는 의혹을 받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과 ‘면허발급’을 강행했다.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 반대파업에 돌입하자 강제진압에 나섰다. 철도공사·경찰·검찰·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 그리고 대통령은 하나가 돼 철도노조의 파업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업무방해죄에 대한 '정당한 법집행'을 내세워 파업지도부를 검거하겠다며 공권력을 동원했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정당한 법집행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는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직위해제와 업무복귀 압박을 통해 파업 와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기관사의 복귀율이 4%대에 머무는 등 여의치 않자 파업지도부 검거에 혈안이 됐다. 정부와 공안당국이 파업지도부에 적용한 범죄혐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였다. 대법원은 2011년 3월17일 전원합의체 판결(2007도482)을 통해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파업 자체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종전의 판례를 변경했다. 새로운 판례는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례 변경 이후 철도노조가 2009년 11월26일부터 8일간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 등에 반대하며 진행한 파업에 대해 하급심 법원은 목적 여하를 떠나, 철도노조의 파업에 전격성이 없고 중대한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전격성으로 인한 손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무죄를 선고한 선례를 갖고 있다.(대전지방법원 2011노369 판결 등)

철도노조는 2013년 6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했고, 같은해 11월 또 한 번의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조정신청을 거쳤다. 파업 돌입 6일 전 기자회견에서는 "수서발 KTX 법인 출자 결의 이사회 하루 전인 12월9일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철도공사 또한 이를 전제로 운송계획 등 파업대책을 세워 파업기간 중 고속철도의 가동률은 90%에 이르렀다.

파업 돌입 5일 전에 필수유지업무 인원을 사용자에게 통보했고, 사용자 또한 파업에 대비해 대체인력 투입과 운송계획을 미리 세워 대처했기 때문에 파업기간 중 고속철도 가동률이 90%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철도노조의 파업은 대법원이 제시한 전격성 요건을 결해 애초부터 업무방해죄가 성립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와 철도공사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마치 중대한 형사범죄를 구성하는 것처럼 공안대책협의회를 열고 파업지도부 수십 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체포영장이란 소환에 불응했다는 사유만으로 발부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범죄혐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없는 예고된 파업에 대해 체포영장은 청구돼서도 발부돼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정부의 공안몰이에 협력해 파업지도부 35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근거로 삼아 6천여명의 경력을 동원해 파업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작전에 나섰다. 수색영장도 없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강제진입해 쑥대밭을 만들었다. 법원은 파업이 종료되자 자신이 파업 중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철도노조 간부 11명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연이어 기각하는 변죽을 울렸다. 그러나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법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철도노조 위원장 등 4명의 핵심지도부에 대해 범죄의 혐의가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병 주고 약 주고 다시 병 주는 갈지자 행보를 보인 것이다.

철도공사, 검찰과 경찰, 정부와 대통령, 그리고 법원은 서로 협력해서 죄 없는 철도노동자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체포영장을 집행한다는 이유로 철도노조와 조합원들을 겁박하고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유린했다. 전격성이 없어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없는 파업에 대해 수사를 명분으로 소환장을 날리고, 이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해 버리는 기막힌 현실을 목도한다. 공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견제해야 할 수사절차와 영장제도가 거꾸로 노조와 조합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적법절차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기능을 망각한 채 권력의 의지를 대변하고 죄 없는 자를 치는 망나니의 칼이 된 셈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법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는 ‘자의적 지배’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정당한 법집행'의 실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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