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온다.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삶’을 앓을 만큼 앓은 후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혹자는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시기에 두려움 혹은 관성으로 인해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궤도를 이탈할 것만 같던 삶의 나이테는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전순영(46·사진) 민주연합노조 위원장이 꼭 그런 사람이다.

청소차를 운전하던 그의 삶을 바꾼 것은 고 김헌정 전 민주연합노조 부위원장이었다. 물론 계기는 있었다. 1999년 의정부시는 청소차 운전을 민간업체에 위탁했다. 위탁업체로 넘어간 후 임금이 낮아졌고, 고용은 불안정해졌다. 의정부시 기능직 공무원으로 정년까지 채우고 은퇴하려고 했던 그는 억울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돌며 발품을 팔았다. 도움을 받지 못하자 경기북부노동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김헌정을 만났다.

전 위원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나를 지킬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술회했다. 선한 눈매에서 결연함이 묻어났다. 노조의 ‘노’자도 몰랐던 그는 이제 민주연합노조 8대 위원장이 됐다.

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이광희 전 위원장이 내부갈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사퇴한 후 직무대행을 맡아 내홍에 휩싸였던 노조를 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자칫하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었던 조직을 안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임원선거에 단독출마해 85%에 가까운 찬성표를 이끌어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에서 전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총 산하노조를 하나씩 공격하고 있다”며 “환경미화원들을 탄압해도 추풍낙엽처럼 휩쓸리지 않도록 투쟁전선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특히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며 “단체교섭을 상반기에 마무리하고 하반기에는 민주노총과 함께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피해가 조합원들에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 내부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직무대행으로 노조를 4개월 동안 이끌었는데.

“직무대행을 맡았을 때 조직력을 복원하고, 노조가 분열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합원을 많이 만나려고 최대한 애썼다. 푸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 내부갈등이 심해지면 피해가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 노조가 하나로 뭉쳐야만 했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말 필사적으로 활동했다.”

- 14년 동안 노조활동을 했지만 위원장은 처음이다. 어려움은 없었나.

“노조활동을 하면서 회의와 교육에 끊임없이 참여했다. 실무적인 어려움보다 자리에 대한 부담이 컸다. 부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위원장 보좌와 실무적인 역할이 중요했다.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있는 동안 중심을 잡고 노조를 이끌어야 하는 점이 부담이 됐다. 원칙을 세우고, 소신 있게 노조를 이끌려고 했다. 조합원들도 노조 상황을 잘 이해하고 많이 도와줬다.”

- 직무대행 기간 동안 성과가 있었다면.

“지난해 11월 광화문에서 10박11일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위탁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노조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투쟁으로 돌파하자는 이유도 있었다. 투쟁다운 투쟁이 필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을 이행하라는 전선을 만들었고, 지부 현안을 공유했다. 지난해 12월31일부로 계약이 만료된 노동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성과도 있었다. 크고 작은 성과를 만들어 내고, 지역지부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태를 봉합할 수 있었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직접고용 요구할 것"

- 독립채산제 폐지와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독립채산제로 운영하지 않고 시설관리공단에 맡기거나 직영으로 운영하면 비용이 수십억원 절감된다. 위탁업체 사장의 수익을 높이는 대신 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 공무원 입장에서 위탁업체에서 알아서 운영을 하면 편할 수는 있겠지만, 독립채산제 자체가 부패의 온상이다. 위탁업체가 봉투 판매로 얼마나 수익을 얻는지 알 수가 없다. 독립채산제를 폐지하려면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사회적 이슈로 쟁점화할 생각이다.

위탁업체에 소속된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노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용안정이다. 정년을 채우고 은퇴할 수 있도록 고용안정에 힘쓸 것이다. 임금과 처우개선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매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서울시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고 있다. 지자체의 정책기조가 서울시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6월에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선거 때마다 지방선거 후보자들과 함께 정책협약을 만들어 왔다. 노조는 위탁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민간에 위탁하지 않는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해 왔다. 올해 지방선거 때도 위탁을 줬던 것은 시설관리공단에 주고, 직접고용할 것을 중점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현장 중심·교육 중심·조직 확대할 것”

- 위원장 임기 3년 동안 목표가 있다면.

“현장 중심·교육 중심 활동과 조직 확대다. 민주연합노조는 지금까지 조합원들보다 사무처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다. 앞으로는 현장 중심으로 갈 것이다.

조합원들이 자주 모여 단합하고 소통해야 한다. 4개월이나 5개월에 한 번 모이면 노조가 운영되는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면 단결이 안 된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모일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확충하고, 회의도 자주 열 계획이다. 이번에 교육국을 신설했다. 1박2일 조합원 전체교육 때 역사·문화·통일 교육에 전체 조합원이 참여해 노조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를 만들 것이다. 조합원 1만명을 목표로 전략을 짜고 있다.”

- 조합원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조활동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현장과 함께하는 노조를 만들 것이다. 항상 낮은 자세로, 조합원이 부른다면 어디든 달려가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