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18일 오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갑을오토텍 조합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사건에 관한 판결을 선고했다. 초조하게 속보를 기다렸다.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인정”이라는 소식에 환영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곧장 “파기환송”이라는 뉴스가 이어졌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두 건 모두가 고등법원으로 되돌아갔다.

원심에서는 정기상여금과 제 수당들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다. 피고는 원심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해 달라”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인정을 받았던 당사자들로서는 상고가 기각돼 원심이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파기환송 판결은 형식상으로는 피고의 상고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기대하던 방향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내용 면에서는 기존 법원이 유지해 온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에서 상당히 후퇴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먼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판단은 기존과 동일했다. 그런데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재산정해 청구할 때 이른바 그 청구가 신의칙에 반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리한 법리 적용이다.

이는 사용자측에서 주장한 상고이유이기도 하다. ‘신의칙 위반에 대한 심리’란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달라”,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른바 통상임금 소송은 체불임금을 구하는 소송이다. 사용자가 재산이 없다는 점은 청구의 당부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 강제집행에서나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채무자의 재력 유무에 따라 인용 여부가 결정된다는 논리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주관적 요건에 대한 판단이 실제 소송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만약 체불임금 해당자 전체가 아닌 일부만 제기할 경우에도 당연히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회사가 임의로 경영상태를 악화한 경우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듣기에 따라서는 “소송을 피하려면 회사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라”는 말과도 같다.

또한 정기상여금에만 위 요건을 추가한다는 것인데, 다른 임금(수당)과 달리 보는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에서 수행한 사건 중에는 정기상여금보다 제 수당이 훨씬 큰 경우도 적지 않다.

노동법은 근로조건의 최소를 적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 보호를 위한 편면적 강행규정이라는 데 이론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이러한 믿음이 깨지고 말았다. 통상임금이 아니라 다른 제도 운영에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적합의 내지 사정변경이 법을 우선하게 될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임금(수당)에 대한 판단은 그동안 유지한 고정성에 대한 의미를 축소하는 데서 출발한다. 전에 언급이 없었던 “근로와 무관하게 지급되거나”, “초과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노사합의에 따른 그 지급액수를 확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정성 요건에서 판단해야 한다. 통상임금 요건은 전과 동일하다고 했지만 사실상 전에 없던 고정성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던 많은 임금들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이 같은 이론에 기초해 대법원도 기존 판결을 변경했다.

이 같은 대법원이 제시한 엄격한 기준이라면 이를 충족하는 임금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실제 이 사건에서 문제된 모든 수당이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할 지경이다.

판례 변경이유 또한 분명치 않다. 입법목적을 고려하라는 법률해석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 고정성에 대한 대법원의 이번 법률 해석은 통상임금 문제의 발단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현장에서 운영되는 제 수당은 야간·휴일근로에 대한 할증수당을 줄이기 위해 사용자들이 임의로 만들어 온 게 현실이다. 이러한 노동관행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 법원의 태도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야간·휴일근로가 평상시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보다 못한 지금까지의 현실을 더 참아야만 한다.

이 같은 의견이 제발 짧은 지식 탓이었으면 좋겠다. 수일 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쏟아질 것이다. 필자의 비판과는 달리 이번 판결이 단순한 체불임금 사건을 넘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장의 임금체계를 개선하고 종국에는 동일가치 동일노동 실현과 노동자 삶 개선에 기여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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