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철도노조(위원장 김명환) 파업이 사상 최장기로 접어들었다. 노조의 파업은 공공부문 민영화를 넘어 '안녕'이라는 사회적 화두까지 담아내며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대화 요구에 정부는 불통으로 화답하고 있는 상황이라 접점이 보이지는 않는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1주년이자 수서발 KTX 주식회사 철도사업 면허발급일을 하루 앞둔 19일을 파업의 고비로 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7일 저녁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김명환(48·사진) 위원장을 만나 노조의 고민을 들었다.

법원은 전날 김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10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18일에는 추가로 18명에게 체포영장이 청구됐다. 민주노총 주변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도부 검거에 나선 경찰과 사수를 위해 모인 연대단체 관계자들이 맞서 있었다.

"교섭창구 닫혀 … 코레일이 컨트롤할 수 없는 힘이 막고 있다"

- 노조 역사상 최장기 파업인데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철도 민영화의 첫 시발이었던 이른바 '상하분리'로 맞붙었던 게 2003년이었다. 딱 10년 만에 철도 민영화로 또다시 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이나 인식은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파업을 하고 있는데도 '불편하지만 참겠다', '힘내서 열심히 잘 싸워라'고 말씀해 주시니 노조로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 직위해제된 조합원들이 8천명을 넘어섰다. 이런 탄압을 예상했나.

"코레일이 파업 초기에 강공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측은 했다. 하지만 직위해제자가 하루 1천명 단위씩 넘어가니까 어이가 없더라. 조합원들이 직위해제까지 결의했기 때문에 큰 동요는 없지만 사회적 파장이 무척 큰 사안이다. 공기업노조에 불법시비를 걸고 단순한 파업 참가자까지 모두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노조의 쟁의행위 자체를 볼온시하겠다는 행태다. 본인의 의지든 아니든 최연혜 사장이 노조를 바라보는 관점을 그대로 보여 준 게 아닌가 싶다."

- 현재 교섭창구가 닫힌 상황인데.

"노사 교섭 자체가 전혀 없다. 지난 13일 실무교섭도 노조의 요청에 사측이 화답하긴 했지만 실제 교섭자리에서 '선 복귀 후 대화'라는 국토교통부 가이드라인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있었다. 국토부는 노조를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보는 것 같다. 사장이나 국토부 장관이나 모두 노동이란 관점이 없으니까 '선 복귀 후 대화' 같은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그걸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사실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노사 간 리더십을 발휘해 대화하라'고 했을 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었다. 교섭 요구가 들어오겠구나 내심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교섭 요구는 없고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압수수색을 하더라.(웃음)"

- 대통령이 나서 불법파업으로 규정한 시점이 이명박 정부 때보다 늦은 감이 있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았겠나. 초기에는 '민영화 아님' 프레임으로 가다가 안 먹히니까 그 다음 등장한 게 불법파업 시비를 걸었고 이제 지도부 체포까지 가고 있다. 또 하나 우리 파업이 전격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을 수차례 예고했고 쟁의행위 절차를 밟았고 필수인력도 남겼다. 파업의 목적성을 두고 시비를 다툴 수는 있지만 형사상 업무방해 범위에서는 벗어나 있다. 최연혜 사장도 11월 말 회의석상에서 '노조의 파업이 이사회 전날 예고됐기 때문에 만반의 파업준비를 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전격성도 없고 절차도 다 밟았다. 필수유지업무 제도도 지켰다. 딱 하나 남는 것은 파업의 목적성인데 이건 법적으로 다툴 문제다. 철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고용안정에 영향을 미치고 이사회 결정으로 회사에 1천억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힌다면 노조가 충분히 반대할 수 있지 않나."

- 일어나서는 안 될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멍했다. 열차 연착사고도 아니고 사망사고다. 사고 진상조사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한국교통대 학생이 무슨 죄가 있으며, 희생당하신 어르신은 또 무슨 죄인가. 노조가 명복을 빌고 애도를 표해도 과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노조가 파업 전후, 특히 13일 이후부터는 거의 매일 대체인력 철수를 촉구했다. 최소한 대학생들만이라도 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코레일은 대체인력을 빼면 운행이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건 아니다. 노조와 합의하고 노조가 진정성 있게 남겨 둔 필수인력으로 필수유지율을 지키면 된다. 수도권 전동차의 경우 3분 간격으로 운행되던 게 7~8분 정도 걸리겠지만 안전성은 담보될 것이다."

- 코레일은 대체인력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

"코레일이 이랬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허준영 사장 때도 노조 파업 중에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사측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드라이브가 걸려 있다. 사측은 영혼 없는 집행을 하고 있을 뿐이다."

- 최연혜 사장도 '코레일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맞다. 그렇게 얘기했으면 '어머니의 마음'이라든가, '회초리' 같은 단어는 안 써야 되는 것 아닌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다리겠다고 하길래, '뭐지, 저 멘트는?' 이랬다. 그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멘트가 아니지 않나. 조합원들도 '영혼 없는 목소리 같다'고 말한다. 전혀 설득할 수 없다는 얘기다.

두려움·공포로 (조합원들을) 설득하든가, 진정성으로 설득해야 하는데 진정성은 없고 두려움은 통하지 않으니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오는 거다. KTX 기장 아웃소싱 얘기까지 나온다. 철도를 망가뜨리는 발상이다. 아웃소싱의 문제점은 코레일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걸 하겠다는 건 빈대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경우와 뭐가 다른가."
 

▲ 정기훈 기자


"정말 민영화 아니라면 논의부터 해야"

- 대통령·부총리·국토부 장관·코레일 사장까지 이른바 '급'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민영화가 아니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어진 박근혜 정권이다. 이명박 정권 임기 내내 대운하가 아니라며 4대강 사업을 추진했다. 지금도 그 프레임이다.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민영화다. 일본 철도의 경우 1987년 별도의 법인이 생겨 분할하는 것을 법으로 정한 시점을 민영화 시점으로 본다. 실질적인 민간 매각은 90년대 말에 이뤄졌다. 이에 대한 후유증이 10년이 지난 2010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알짜노선을 쥐고 있는 JR동일본철도를 제외한 나머지 JR홋카이도나 JR북해도 노선 등은 정부보조금을 받으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민영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국민 혈세가 보조금으로 지급되고 요금은 요금대로 오르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노조의 요구대로 정부가 이사회 결정과 면허발급을 철회하면 된다. 수서발 KTX 개통시기가 2016년이다. 최소한 1년 정도는 논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태도는 1년이 아니라 단 한 달도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민영화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 국토부는 20일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철도사업 면허를 발급하겠다고 한다. 코레일 이사회 의결부터 면허발급까지 딱 열흘이다.

"경부고속철도 면허발급 과정이 1년 걸렸다. 지금 수서역이 완공됐나? 안 됐다. 차량기지 만들었나? 안 만들었다. 차량 도입했나? 안 했다. 발매시스템? 새로 짜야 한다. 아무것도 된 게 없다. 날치기도 이런 날치기가 없다. 국토부는 수서발 KTX 분할로 코레일 적자가 심화되면 정부가 보조금 주면 된다고 쉽게 얘기한다. 보조금이 자기 돈인가. 국민세금 아닌가. 도대체 출혈성 경쟁을 왜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정부가 왜 그런거 같냐'고 많이 물어본다. 나 또한 모르겠다."

- 17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가 열렸는데 논의가 잘 안 됐다.

"새누리당이 집단적·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원래 새누리당 몇몇 의원은 이사회 일정을 연기하고 한두 달 정도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국토교통위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무래도 위에서 오더가 내려온 것 같았다."

- 국회 철도소위 구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토부가 내년에는 화물을 분리하고, 2015년에는 일산선·경의선 등 8개 적자노선을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수서발 KTX 분할과 화물 분리, 적자선 매각 모두 민영화와 연동돼 있다. 하지만 이런 주제를 다룰 곳이 없다. 국회에서 철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소위를 구성해 논의해 보자는 얘기다. 국토부가 의지만 있다면 면허절차도 충분히 늦출 수 있다."

-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국토교통위에서 소위 구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숨을 내쉬며) 국회에 소위를 구성하는 일이 장관 소관인가. 국회의원들에게 오더를 주는 것도 아니고. 철도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다."

-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노조의 요구는 진화해 왔다. 반면 사측은 진화가 아닌 역행하는 방향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접을 수 있는 명분이 단 한 치도 없다. 국회는 소위를 구성하고, 국토부는 면허발급을 중단해야 한다. 솔직히 지금 노조는 이사회 결정 철회를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의 포인트는 면허발급이다. 노조의 5가지 요구를 보면 무게중심에 차이가 있다. 노사관계를 안 다뤄 봐서 그런지 우리가 보내는 메시지를 못 읽는 것 같다. 노조의 메시지를 읽고 거기에 부응해 준다면 사태가 풀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도 노조와 교섭하지 말고, 언론과 접촉하지 말고, 국회의원 만나지 말라는 오더가 최연혜 사장에게 내려간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답답하다. 털끝 하나도 노조에 밀리지 않겠다는 태도다. 파업을 계속하라는 뜻 아니겠나. 그렇다면 파국의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겠나. 노조인가?"

- 정부에 19일까지 시간을 줬는데.

"19일 국민촛불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국회도 더 이상 분탕질을 해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도 책임을 져야 한다."

- 19일 이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고민 중이다. 전면파업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민 정서상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금 국민과 함께 파업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진인사 대천명이다. 19일 자정까지 한두 시간 사이에도 무엇인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애초에 잡은 기조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파업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보나.

"모든 직종과 지역이 파업에 돌입하면 대오 이탈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직종과 지역이 서로 손가락질하지 않고 함께 갔다가 함께 오는 파업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부 비판이나 문제제기는 오로지 위원장이 책임지겠다고 밝혀 왔다. 많은 분들이 '멋진 마무리'를 말하는데, 욕심이라고 본다. 과거 파업을 마무리할 때도 대부분 우당탕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후유증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그런 복이 나한테까지 올까 싶기도 하다. 되레 담대하게 판단해 책임 있게 결단하고 동지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게 위원장으로서 가질 수 있는 복이라면 복일 것이다."

- 정부는 당장이라도 지도부를 체포할 기세다.

"우리는 공권력에 대항할 물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담담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생각이다. 사법처리가 되면 법정에 가서 정말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법적인 부분은 사법당국이 전문가일 수 있지만, 철도산업에서는 나도 나름 20년간 기름밥 먹고 정책에도 관여해 왔다. 사법담당자들도 KTX는 탈 거 아닌가. 공공부문 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은 공공노동자들의 밥그릇 지키기 싸움이 아니다. 국민의 밥그릇을 지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투쟁하는 것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