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

근래 통상임금 논쟁이 불거지게 된 연유에는 노동자 임금을 착취해 자신들의 이윤을 높이려는 부도덕한 자본가와 또 이들을 비호해 온 정치권력의 짬짜미가 있다. 통상임금은 법적 용어 이전에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대한 공정한 가치의 기준이다. 노동력에 대한 공정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결국 모든 노동자의 잠재적 임금수준을 떨어뜨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정상적인 임금을 지급하기보다는 편법적으로 갖은 명목의 수당과 보너스·성과급 등의 명목으로 임금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시간당 임금률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시간당 임금률 저하는 결국 노동자 임금수준을 저하시키고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하는 구조적인 요인이 됐다. 따지고 보면 통상임금에 대한 법적 논쟁은 사실 오래전부터 결론이 나 있다.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동자 임금에 대해 그동안 정의돼 온 임금이분법설, 즉 노동자이기 때문에 보장되는 임금과 노동력의 대가로부터 받는 교환적 임금이 있다는 이론을 폐기하고, 임금은 오직 근로의 대가라는 노동력대가설을 확실히 했다. 당시 판결은 파업시 노동자들의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확인한 법원의 판단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연장근로 등 직접적인 성과에 지급하는 변동적 임금이 아닌 고정적·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모든 수당과 상여금은 노동의 대가, 즉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법적 근거를 확실히 한 계기가 됐다.

고용률 70% 노사정 협약 폐기부터

최근 급속하게 사회적으로 확산된 통상임금 논쟁은 한국지엠에 대한 통상임금 판결과 올해 5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엠 사장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부터다. 개별 노사문제·법적문제였던 사안이 대통령이 개입하면서 사실상 국가 간 외교문제·정치문제·경제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이 된 것이다.

당시 보도내용을 되짚어 보면 박 대통령이 방미 중이던 5월8일 미국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 자리에 지엠 사장이 참석해 투자확대의 전제로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통상임금에 대해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며 "지엠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갖는 문제니까 이 문제를 확실히 풀어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이 투자확대를 미끼로 대통령을 압박해 법적 판단을 뒤집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통상임금 문제를 제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자세다. 한국경제가 갖는 ‘문제’니까 ‘확실히 풀어 가겠다’는 것은 결국 통상임금에 관한 문제를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하기보다는 경제문제로 인식하는 것이고, 문제 해결 또한 법적 판단보다는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5월30일 한국노총과 한국경총, 정부가 합의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 협약’에서 대통령이 말한 ‘문제 해결’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여부에도 불구하고 임금구조가 연공서열형에서 직무급으로 전환되고, 상여금이 성과급으로 둔갑되는 현실을 눈앞에 둘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통상임금 문제의 해법은 노사정 일자리 협약을 파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사 간 자율적 교섭과 온전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직무급·성과급 운운하는 노사정 대타협의 결과를 과감히 폐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공부문 경험, 상여금·수당 기본급화가 해법

공공부문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지만 직무급과 성과급을 전제로 한 임금체계 개편은 결국 노동자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약화시킨다. 상시적인 임금축소와 구조조정으로 대다수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된다. 통상임금은 이미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노동의 가치, 임금률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따라서 현재 개별 노사 임금체계에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모든 수당과 보너스는 통상임금으로 인정돼야 한다. 필자는 2007년 한국전력의 연봉제 도입을 위한 교섭을 하면서 해당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사회적으로 제공한 바 있다. 개별연봉제를 통해 성과주의를 극대화하려는 정부의 지침을 어기기 힘든 사측으로서는 수당과 상여금, 그리고 인정근로로 지급해 온 시간외수당과 연차수당의 일부까지 기본급화하자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자는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공기업 임금구조의 문제를 직접 설명하고 예산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그해 11월 노사는 전격적으로 연공서열형 연봉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하고 상여금과 주식보조비·교통보조비·난방보조비 등 제 수당을 기본급으로 하며, 연차수당과 일부 시간외수당을 인정근로로 해서 기본급을 확대하는 것에 합의했다. 한전은 경영평가 성과급을 제외한 전체 급여의 90% 이상을 기본급으로 지급할 수 있게 됐다.

통상임금 논쟁이 사회적 쟁점으로 커진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기본급 확대 및 연공서열형 연봉제가 문제 해결을 위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박근혜 정부가 통상임금 문제 해소를 위해 요구하고 있는 임금체계 개편도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하는 등 기본급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를 통해 실질임금이 저하되지 않는 실근로시간 단축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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