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상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삶)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등 분쟁이 발생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사장님들의 모습은 창피함이라곤 전혀 없이 사뭇 당당한 모습이다. 자신이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거나, 그것이 업계 관행이므로 잘못된 행동은 아니라거나, 노동자가 염치없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모습들만 보면 일부에서 말하는 ‘나쁜 사장님’에 대한 선입견이 일견 이해된다.

그런데 분쟁현장이 아닌 일상에서 만나 보면, 실상은 노동법에 어떤 규정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업을 벌여 가족을 부양하려다 보니 사람을 쓰는 데에는 지켜야 할 여러 규정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하소연한다.

아이러니한 건 그런 사장님들이 세무사를 통해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고, 더욱이 노동법 전문자격사도 아닌 세무사에게 세무대리에 부속해 임금정산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이분들은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알아도 모른 척했던 것일까.

사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옆집 사장은 노동법을 지키지 않고도 장사 잘하는데, 구태여 혼자만 노동법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나둘 지키지 않게 되면 어느 순간 노동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 혹은 ‘구색 맞추기 위해 있는 장식’ 정도에 불과해진다.

누구의 잘못일까. 고용노동부는 사장님들이 노동자를 쓸 때 지켜야 할 법이 무엇이 있는지 알려 주고, 그것을 위반했을 때는 처벌해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나는 사장님들은 고용노동부의 그런 역할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이었다. 사업을 개시할 때 사람을 쓸 경우 어떤 법을 준수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고, 설령 법을 위반하고 있더라도 누군가가 신고하기 전까지는 처벌받지 않았다.

노동부의 감독업무는 근로감독관에 의해 이뤄지는데, 근로감독관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예방·점검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뿐 아니라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딱한 사정은 또 있다. 정작 권리주체인 노동자들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어떤 권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도 있고, 임금을 못 받는 것이 억울하지만 막상 찾아가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냉소하는 노동자도 있다. 심지어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위로금 몇 만원 받으면 신고하지 않겠다는 노동자도 있다.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데 어떤 사업주가 나서 ‘시혜적’으로 보장해 주려 할까.

그 사이에서 일하는 노무사로서는 협잡꾼이나 무뢰한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신고를 당하는 사업주로서는 별말 없던 노동자를 꼬여서 영문도 모르는 돈을 내놓으라는 걸로 보일 테니 노무사가 달갑지 않은 것이 당연할 것이다. 신고를 받는 근로감독관 입장에서는 잠잠하던 벌집을 쑤시고 다니며 일을 만드는 골칫거리로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신고를 접수해서 조사를 진행하려고 하면 하나하나 따져 들고, 근로계약서 미작성처럼 뻔히 보이는 위법이지만 근로자가 굳이 고소하지 않는 것까지 처벌해 달라고 고소장을 넣기 시작하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사업주가 노동법을 인지해서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예방했다면, 혹은 알면서도 위법을 저지른 것에 대해 옳게 골라내어 처벌을 했다면, 사장님들의 위법사례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이런 현실 개선에 무조건적인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어린이 경제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경제교육에는 돈 잘 버는 재테크만 있을 뿐, 그 돈을 버는 과정에서 생활인으로서 알아야 하는 규칙인 노동법과 노동관계에 대한 교육은 없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들의 경우 정규교육으로 노동교육을 한다고 한다. 근로계약부터 단체교섭까지, 서로 역할을 바꿔 가며 각자 처한 입장까지 학습한다. 그들의 '노동'과 우리의 '노동'은 무엇이 다른 걸까.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를 지지하면서 "스승은 노동자가 아니다", "우리 아이를 노동자에게 배우도록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노동’을 터부시하기보단, 그 아이가 사장님이 되든 노동자가 되든 ‘노동관계’라는 살아가는 방법과 ‘노동법’이라는 일에 대한 규범을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문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