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을 흔적 없이 떠도는 유령이 있다. 바로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음지에서 학교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 실체가 가려져 있다.

5일 교육부에 따르면 대표적인 학교비정규직인 학교회계직이 일하는 직종은 27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15만2천여명이 있다. 노동계는 야간당직·청소노동자를 비롯한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파견·외주·도급 노동자들까지 합할 경우 80개 직종, 4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말 기준 공공부문 전체 비정규직 36만여명을 웃돈다. 전국 초·중·고 교원(7만1천449명)보다 5배나 많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2008년 8만8천여명이던 학교회계직은 지난해 두 배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교육공무원은 6만5천602에서 6만3천2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정부가 늘어나는 교육수요를 비정규직으로 메꾸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교비정규직은 수치상으로 이미 교육현장을 뒤덮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막 뒤에 숨은 존재다. ‘보조’나 ‘실무’ 등의 꼬리표가 붙어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일하는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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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고령의 학교당직 기사들이 추석을 앞둔 지난 9월12일 청와대 앞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6박7일' 감금노동에 대한 서러움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기훈 기자


한 끼 밥 먹이기 위한 극한의 육체노동

충북 제천 ㅁ초등학교 조리원 이아무개(50)씨. 이씨는 학교 급식노동자로 10년을 일했다. 허리·어깨·손목 등 온몸에 성한 곳이 없다. 지금은 학생수가 적은 학교라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하지만 2008년부터 4년간 근무했던 같은 지역 내 다른 초등학교를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하다.

“11명의 급식노동자들이 1천600명 아이들의 점심을 준비했어요. 돼지고기를 볶을 때 고기와 야채 무게만 130킬로그램입니다. 두 명이 이걸 제대로 익을 때까지 볶는다고 생각해 봐요. 여기에 촉박한 급식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거운 식판·식자재를 수도 없이 번쩍번쩍 들어야 합니다. 몇 년간 일하면 온몸에 골병이 듭니다.”

이씨는 장기간 반복한 육체노동 탓에 지난해 팔꿈치에 염증이 생겼다. 방학기간에 두 달간 입원치료까지 받았지만 한번 찾아온 고통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올해 다시 통증이 도져 아직도 입원과 통원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이씨는 “쉬면 그만큼 임금이 깎이기 때문에 방학이나 연차를 이용해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며 “근육과 뼈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한 급식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힘든 노동을 하는데도 금전적인 보상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이씨의 월급은 100만원 정도다.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기본급이 같다. 전체 급여에는 거의 변동이 없다.

“학교에 위생원이라는 정규직 급식노동자들이 있는데요. 하는 일은 저희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연봉을 보니 800만원에서 900만원을 많이 받더라고요.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아도 경력을 인정해 주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않을까요.”

위험수당이 없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급식실은 습기와 고열에 노출돼 있다. 미끄러지고 데는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때문에 강원·경북·경기·인천 등 전국 10개 이상 시·도 교육청이 월 5만원의 급식실 위험수당을 도입했거나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충북교육청은 예외다.

“학생이 줄어들면 1순위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우리 같은 비정규직 조리원들입니다. 대다수가 애를 키우는 엄마들이에요. 일한 만큼 대가를 주고, 고용도 보장해 주면 얼마나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아이들을 먹이는 일인데요. 충북교육청이 착한 엄마들의 마음을 반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빨간 날'이 두려운 고령의 노동자들

서울 구로구의 한 중학교에서 8년 동안 학교당직 기사로 일하고 있는 이아무개(74)씨는 남들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추석과 설날이 두렵다. 명절에는 학교가 문을 닫는 시간부터 문을 여는 시간까지 꼬박 혼자서 학교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앞뒤로 주말이 낀 올해 추석에는 6박7일간 이른바 '감금노동'에 시달렸다. 고령의 노동자가 혼자서 장시간 일하다 보면 아찔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지난해 5월 이씨와 가까이 지내던 강아무개(79)씨가 근무 중 쓰러졌다. 강씨는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당직 기사로 일했다. 당시 금요일 오후 4시30분에 출근해 월요일 아침 8시30분까지 근무하는 일정이었다. 강씨는 그러나 일요일 새벽 우연히 당직실 앞을 지나던 조기축구 회원에게 발견됐다. 급성 뇌졸중이었다.

“저야 몸이 건강한 편이라 버티고 있지만, 강씨는 정말 큰일 날 뻔했죠. 아직도 회복이 덜 돼 정신이 흐릿한 상태예요. 학교당직 기사 대다수가 70세 이상 노인인데도 끔찍하게 긴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무슨 일이 나면 어떡합니까. 너무 비인간적이죠.”

이씨는 하루 16시간, 주말이면 24시간 일한다. 휴일이 아예 없는 것을 감안하면 한 달에 최소 512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씨가 용역회사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시간이 월 200시간으로 적혀 있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휴게시간으로 잡혀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학교당직 기사는 감시·단속 노동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을 감액당하고, 연장근로·휴일근로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도 누리지 못한다. 이씨처럼 서울지역 학교당직 기사들의 평균임금은 월 78만원이다. 이씨의 경우 최근 학교장에게 항의해 월 5일의 휴무를 보장받고 휴무일에 일하면 5만원의 ‘대근비’를 받기로 해서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다.

“근로기준법만 지켰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학교장이나 용역회사가 어떻게든 고용노동부에 적용제외 신청을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법을 피해 가는 일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떡셔틀·수박셔틀'에 무너지는 자존심

서울시 노원구 ㄷ초등학교에서 교무실무사로 일하는 손혜진(46·가명)씨. 손씨는 교사실무사로 일한 지 올해로 12년째인데 아직도 일이 낯설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온갖 잡무와 교사들의 사적인 업무까지 맡겨질 때면 특히 그렇다.

“매년 3월과 9월이면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새로 온 선생님이 가져온 떡을 전체 50명 이상의 선생님들에게 혼자서 배달해야 합니다. 일명 떡셔틀이죠. 여름이면 학부모들이 가져온 수박이랑 포도를 씻고 나누고 배달하는 것도 저 혼자만의 일이죠.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듯이 '여기 커피 몇 잔' 하고 외치면 기분이 너무 상해요.”

호칭도 문제다. 지금은 손씨가 몇 번 정색을 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그런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는 학교에서 ‘언니’ 혹은 ‘손양’으로 불렸다.

“예전에 교장선생님이 저를 '언니'라고 부르는 거예요. 10살짜리 애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지금은 제가 누구씨 라고 부르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아직도 불쾌한 호칭으로 불린다고 들었어요.”

손씨는 서울시교육청이 2년 전부터 교원 행정업무 절감을 위해 교무행정지원사를 각급 학급에 배치하면서 일터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안이나 품위서, 각종 교육통계를 작성하는 것은 그의 일이었는데, 이젠 행정업무 대부분이 그의 손을 떠났다.

그러자 학교의 허드렛일이 주어지고 있다는 게 손씨의 설명이다. 가장 언짢은 것은 교원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동원되는 경우다. 예컨대 당뇨환자를 위한 현미밥 짓기·청청잡 라벨 붙이기·세탁소에 옷 맡기기 등이다.

“학교라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잖아요. 학교나 교육청이 기준에 따라 교무실무사를 채용했으면 업무영역을 정하고, 연수 등을 통해 전문성을 길러 줘야죠. 행정업무를 보조한다고 사람까지 보조는 아닌데 말이죠.”

'겨울나기'가 두려운 10개월 노동자들

서울 ㅆ초등학교에서 스포츠강사로 일하는 정아무개(39)씨는 벌써부터 올겨울이 걱정이다. 고용과 해고가 반복되는 ‘10개월’ 단기고용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정씨를 본격적인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1월에 해고했다가, 3월에 재고용하는 일을 6년째 반복하고 있다.

“스포츠강사들은 매년 겨울을 실업급여로 지냅니다. 그것으로는 모자라니까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동안 편의점 알바·신문배달 등 안 해 본 일이 없네요. 요즘 세상에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겁니다.”

정씨가 스포츠강사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손에 쥔 월급은 140만원이었다. 그런데 6년이 흐른 지금 지난달 그가 받은 월급은 130만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교육부의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처우개선 대책 탓이다. 교육부는 올해 초 각 학교에 스포츠강사 퇴직금을 적립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학교들은 퇴직금을 쌓기 위해 스포츠강사들의 월급을 줄여 버렸다.

대가 없는 초과노동도 정씨를 힘들게 한다.

“정식 출근시간은 오전 8시40분이지만 아이들 스포츠클럽 수업을 하려면 8시까지는 출근해야 합니다. 학교장은 그만큼 일찍 퇴근하라고 하는데요. 행정업무에다 다음날 수업준비까지 하면 퇴근시간인 오후 4시40분을 훌쩍 넘깁니다. 학교 대항 시합이라도 하면 주말에도 일합니다. 그래도 아무런 대가가 없어요. 무료노동이죠.”

스포츠강사들에게는 다른 학교비정규직에게 주어지는 명절상여금·대중교통비·가족수당·맞춤형복지포인트가 지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스포츠강사의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을 줄이면서 정씨처럼 서울지역에서 일하는 스포츠강사 584명 중 152명이 '10개월 계약'도 모자라 영원한 해고를 앞두고 있다.

“교원자격증과 전공을 살릴 수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좋아 힘든 줄 모르고 일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로 못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많이 서글픕니다. 10개월짜리 고용을 없애고, 다른 비정규직만큼 처우해 달라는 것이 그렇게 큰 요구인지 모르겠네요.”

오락가락 교육행정, 불안에 떠는 학교비정규직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은 각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부의 '조삼모사 정책'에 따라 고용과 근로조건이 크게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2009년 8월부터 학생들의 실용적 영어구사능력 향상을 위해 영어회화전문강사 제도를 도입하고 2011년 2월까지 6천100여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교육부는 당초 4년이었던 계약기간을 연장하고, 장기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법제처가 "다른 비정규직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자 이를 없던 일로 되돌렸다.

잘나가던 학원강사를 그만두고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37)씨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 심정이라고 했다.

“월급은 줄었지만 학교에서 일한다는 보람도 있고, 정부가 선발 과정에서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해서 덜컥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신세가 돼 버렸어요. 사기당한 기분입니다.”

교육당국의 재계약 불가 방침으로 이달 말 해고 위기에 놓인 전북지역 116명의 전문상담사들도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교육정책의 희생양이다. 전북교육청은 그러나 "교육부의 장려로 일몰제를 전제로 시작한 일인 만큼 해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경북지역에서 일하는 돌봄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경북교육청은 올해 2월 예산과 수요부족을 이유로 지난해 학급당 주 25시간이던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12.5시간으로 축소했다.

김천에서 3년째 돌봄교사로 일하고 있는 서아무개(39)씨는 이로 인해 지난해 29시간이던 주당 근무시간이 올해 14.5시간으로 줄었다. 학교가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주휴수당·연장근로수당 등에서 제외되는 것을 감안해 여기에 맞춰 근로시간을 줄인 것이다.

“직장맘이라서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돌봄교실에 맡겨야 하는데 항상 자리가 꽉 차 못 보내고 있어요. 제가 운영하는 교실도 늘 정원 20명을 넘겨요. 경북교육청이 수요가 여전한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사업을 축소하겠다고 하니 황당할 뿐입니다.”

“교육수요 비정규직으로 감당, 혼란 불러”

노동계는 국민의 늘어나는 교육서비스 요구에 대한 교육당국의 땜질식 대응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전국여성노조·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호봉제 도입 등 학교비정규직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지난달 두 차례의 파업을 벌였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정책국장은 “학교라는 기관의 특성상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정부가 그때그때 교육수요를 정규인력 대신 비정규직으로 감당하려고 해서 문제가 커졌다”며 “시·도 교육청별로 학교비정규직 운영과 복지에 편차가 발생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이를 통합하려 하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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