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주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올해 6월 이촌역사 4미터 높이의 창틀에서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매달려 걸레질을 하는 청소노동자의 사진이 한 시민에 의해 SNS에 공유됐다. ‘청소노동자의 위험한 현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많은 시민들이 이에 공분하면서 탄식했다. 현실이 ‘현실’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후 필자는 업무지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대량징계를 당한 환경미화원분들의 사건을 맡게 됐다. 그 과정에서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변함이 없다는 것과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여지없이 대면하게 됐다.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담당업무가 아닌 일을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이것이 한 지자체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이자 그들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두 가지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던 이유는 이렇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위험에 노출된 채 업무를 수행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차량에 탑승해 거리를 돌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노동자들은 늘 긴장상태로 일을 해야 한다. 청소차량 옆에 설치된 얇은 철판에 몸을 싣고 두 팔로 봉 하나를 잡은 채 달리는 차량에 매달려 일을 한다. 차량의 발판은 일반 성인 남자의 발 폭보다 좁아 미끄러지기 일쑤다. 심지어 처음에는 동그란 파이프로 만들어져 있어 그 위험도가 더더욱 높았다. 이를 평평한 발판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장기간 시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실제 환경미화원들의 몸은 성한 곳이 거의 없다. 2011년에는 한 노동자가 달리던 수거차량에서 떨어져 무릎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안전대책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담당자로부터 누가 죽기라도 했냐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지난해에는 제주도에서 비슷한 사고로 환경미화원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사업장에서는 발판을 떼내어 차량에 매달리지 않도록 하거나 다른 안전대책을 수립했지만 그 사업장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올해 임금협상 때 노조가 ‘위험수당’을 요구하자 사용자는 신속히 발판을 떼내면서 “이젠 위험하지 않지?”라는 의미를 전달했고, 결국 위험수당 요구안은 삭제됐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필자가 맡은 사업장에서 쓰레기 차량 탑승업무 중 떨어지거나 기타 부상으로 치료받은 환경미화원이 9명이나 된다. 그동안은 부상을 당해도 주로 공상처리로 마무리됐다.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산재처리 요구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한다. 군청에 속해 있었던 노동자들이 이 정도였으니, 민간위탁 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처우는 어떨지 상상 가능하리라.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 행해지는 부당한 업무지시 내용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지자체의 ‘무기계약근로자 관리규정’에는 “환경미화원 : 도로·가로·공원청소, 생활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수거·처리 등 환경미화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그 사업장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수년간 이와 다른 업무를 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받아 왔다. 예를 들어 뱀잡기·고구마 심기·잡초제거·보일러 수리 등 군청의 각종 잡일을 하도록 지시받거나, 업무의 담당부서가 불분명한 일, 몸을 쓰거나 지저분한 일에 동원됐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 교섭을 통해 고유업무 외 부당한 업무지시 금지 및 안전대책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사용자는 또다시 사전에 정해진 업무지시서의 내용과 다른 오후 차량탑승 수거업무 지시를 내렸고,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징계가 이뤄졌다.

TV의 공익광고나 기업광고 중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가 환경미화 노동자의 모습이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생활하는 서민의 대표격으로 나온다. 광고 속 환경미화원분들은 환한 웃음을 띠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 단언컨대,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물론 광고가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사는 게 힘들더라도 불평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것일 테지만.

언젠가 한 환경미화 노동자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개그맨이 우스운 사람이 아니듯 우리들의 삶 자체가 쓰레기인 것은 아닙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며 힘내서 더 열심히 살라고 독려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노동하면서 그 노동 때문에 다치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모순된 일은 없게 만들자. 이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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