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희 기자

“노조의 판단이 맞았어요. 준비 안 된 사업구조개편의 문제점이 현장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허권(50·사진) 금융노조 NH농협지부 위원장의 농협 신용·경제사업 분리(신경분리)에 대한 평가는 단호했다. <매일노동뉴스>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지부사무실에서 허 위원장을 만났다.

개정 농협법에 따라 지난해 3월 시행된 신경분리는 줄곧 논란을 낳았다. 원인은 돈이다. 당초 정부는 신경분리에 들어갈 12조원 중 절반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다 공기업 주식 1조원 현물출자로 뒷걸음질했다. 대신 4조원 규모의 농협금융채권 발행에 들어가는 연 1천600억원의 이자비용을 5년간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자금지원도 경영구조개선 이행약정서(MOU)를 체결해야 지급하겠다고 했다.

허 위원장은 MOU 체결에 반대하며 그해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7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결국 11조원의 빚은 농협이 떠안았고, 허 위원장은 신경분리를 “11조원의 빚잔치”라고 꼬집었다.

시행 1년8개월이 훌쩍 지난 신경분리에 대해 허 위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도 정부의 행태를 보면 억울하고 분하다”는 허 위원장은 “정부의 사기지원책 때문에 2~3년 뒤에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업구조개편의 목적은 농업인 실익을 위한 것인데 뚜껑을 열어 보니까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요. 농업인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기에도 급급한 형편입니다. 11조원 빚잔치 탓에 원금 상환하려면 자본금을 확충해야 합니다. 게다가 보험은 변액보험상품을 팔지도 못하게 묶여 있고, 서울에 점포를 추가로 개설하는 것조차 막혀 있어요. 겹겹이 쌓인 문제를 어떻게 풉니까. 여건이 안 돼 있어요. 농협이 다 알아서 하라고 해 놓고, 나중에 정부나 국회가 더 큰 성과를 요구하면서 책임을 묻겠죠. 너무 무책임합니다.”

- MOU와 관련해 농성을 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싸움이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일부 조합원들은 농협법 재개정 투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런데 신경분리 법안을 만들었던 정부 관계자들과 국회의원들이 현직에 있다. 안타깝지만 되돌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때문에 사업구조개편 뒤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지부의 역할이라고 본다. 정부 관계자와 국회를 설득하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다.”

-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농협금융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변액보험 판매를 허용하고 수도권 점포 개설과 관련해 제약을 풀어 줘야 경쟁할 수 있다. 2017년 2월로 예고된 경제사업의 경제지주회사 이관시기도 조정해야 한다. 경제사업을 이관했을 때 농어민에게 실익을 줘야 하는데 오히려 나타나는 문제가 너무 많다. 당장 수천억원의 세금을 또다시 내야 한다. 검토해 보니 경제사업 이관이 농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시기를 조정하거나 연기를 검토해야 한다.”

- 지난해 6월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했다. 소통은 잘되나.

“취임할 때 현장을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경영진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것 같다. 과거보다 소통이 강화되고 있다. 직원들의 입장과 요구사항이 잘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충식 농협은행장도 현장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대하고 있다.”

- 지부교섭 중인데 핵심 이슈가 무엇인가.

“사업구조개편 이후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돼 있다. 직원들의 사기진작책이 필요하다. 직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내년에 임기가 마무리된다. 신경분리로 인한 문제점과 관련해 대책을 강구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조합원들의 고용안정, 특히 별정직 처우개선이 중요한 관심사다. 별정직은 지난해 MOU 폐기투쟁을 마무리하면서 7급으로 신규채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 적다. 규모를 확대하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사측과 인식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측에서 문제 삼는 승진고시제의 경우 TF를 구성한 상태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바람직한 방안을 만들 것이다. 지부안은 조합원 공청회를 거쳐 확정된다. 그런 다음 사측과 논의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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