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투쟁의 포문이 열렸다. 지난 10일 노동자대회를 연 민주노총의 바통을 이어 받아 한국노총도 1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투쟁을 결의한다. 양 노총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비장하다. 민주노총은 '선을 넘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자본과 정부가 그어 놓은 합법의 선에 머물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민주노총은 설립신고증 원본을 찢어 버리는 퍼포먼스로 이를 표현했다. 정부의 전국공무원노조 설립신고서 반려와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에 위축되지 않고 맞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대정부투쟁을 선언한 셈이다. 오는 16일 노동자대회를 여는 한국노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 대선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노동기본권 쟁취와 노동법 개악 저지를 결의한다. 한국노총은 노동자대회의 여세를 몰아 연말 국회에서 노동관련 법·제도개선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양 노총이 잇따라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처음이다. 그만큼 노동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새 정부 출범 후 노사관계는 여느 때와 달리 갈등의 곡선을 그리지 않았다. 최근 노사분규건수를 보면 지난해에 비해 40% 줄었고, 노동손실일수도 절반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출범 첫 해 노사갈등이 심했던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되돌아볼 때 박근혜 정부에선 다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혹자는 노사관계보다 노동시장 이슈가 부각되면서 개별 기업의 노사 간 다툼이 줄었다고 분석한다. 고용률 70%·정년연장·노동시간단축·통상임금 등 노동시장 이슈가 부각됐는데 이는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자연스레 그 공이 국회로 넘어가 제도개선 논의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비해 경제성장률이 반토막이 날 정도로 경기조차 좋지 않아 임금·근로조건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줄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선 기업에선 이른바 '양보교섭' 분위기가 팽배해 노사분규가 줄었다는 것이다. 첨예한 쟁점이었던 통상임금도 노사 모두 법원 판결로 미뤘다. 노사 간 다툼의 소재가 이월된 것이다.

물론 이런 시각에 대한 반론도 있다. 노사갈등이 잠복돼 있을 뿐 언제든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 양 노총이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연 데 이어 파업 경고음이 잇따라 터져 나오기 있기 때문이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11월 말 12월 초 동시파업을 결의한 데 이어 전국철도노조도 이달 20일부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철도공사 이사회에서 수서발KTX주식회사 출자를 승인할 경우 철도노조는 단체행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와 철도공사는 연내에 수서발 KTX주식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철도노조는 이를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연말로 예정돼 있으며, 정부도 이에 맞춰 제도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양 노총은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안을 저지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연말 노사관계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렇듯 노사관계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엇갈린다. 어디로 흘러갈 지는 겨울투쟁을 선언한 노동계에 달렸다. 43년 전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구호만 난무하던 시절, 전태일의 외침은 성공 신화를 쫓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노동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 사회에 경종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양 노총은 말로만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해선 안 된다. 현안으로 부각된 노동시장 이슈에 적극 개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나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안이 발표되기 전에 노동계가 대안적 임금체계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상급단체라면 반대나 저지에만 머물지 말라는 얘기다. 의제를 선점하는 것도 선을 넘는 방법 중에 하나다. 이젠 양 노총이 의제를 선점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는 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